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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28. 2022

사서자격증을 받다

한 장의 종이가 건네는 말이란

 작년에 사서자격증을 따기로 결정했다는 글을 올렸었다. 그로부터 3학기가 지났고, 학위를 받고 한국도서관협회에 자격증을 신청하는 과정을 거쳐 얼마 전에 사서자격증이 집으로 도착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격증 종이 한 장이 뭔가 싶기도 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간의 고생이 떠오르는 값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에는 과제를 했고, 휴일에는 수업을 들었다. 시험기간은 왜 그리도 자주 다가오는지, 계절학기도 들어야 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1년에 각각 4번씩 있었으니 시험 끝나면 또 시험이었다. 육아와 함께 학업도 병행하자니 매일 졸음이 그렇게 쏟아졌었다. 그래도 성적장학금 한 번 타고 싶어서 열심히도 했더랬다.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아내는 내가 노력하는 걸 알았으니 아낌없이 지원을 해줬고, 가족행사나 지인들 결혼식 같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주어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취득한 자격은 정사서 2급이다. 준사서 자격은 사서교육원에서 1년 과정으로 획득할 수 있었으나, 이왕 공부하는 거 정사서 과정을 밟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문헌정보 학사과정을 준비했다. 나는 사회복지학 전공자로 학사 학위가 있었으므로 추가로 전공 48학점만 이수하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과정은 학점은행제를 이용했는데, 문헌정보학 전공 과정을 제공하고 있는 여러 기관 중 숭의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을 통해 이수하였다. 과정을 수료하면 교육부 장관 명의의 학위가 수여된다. 정사서 2급 자격은 문헌정보학 학사나 석사학위를 소지한 사람, 교육대학원에서 도서관 교육이나 사서교육을 전공해서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 타 석사학위 수여자 중 지정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 준사서 자격증을 소지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 준사서 자격증을 가지고 도서관 근무경력이 있는 사람 중 지정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자 등 다양한 자격 발급 요건이 있다. 1급 자격은 박사학위나 오랜 도서관 근무 경력이 필요하니 2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 과정을 열심히 따라가긴 했는데, 공부할 때는 다른 걸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는데,  막상 결과물이 나오니 내 안에서 여러 가지 고민이 고개를 든다. 이걸 가지고 이제 무얼 하지. 


 어디로 갈지 방향을 모를 때는 어디서부터를 떠올려야 한다. 어디서, 그러니까 왜 시작했는지.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 명함에는 사원 김용훈이라고 써져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내 명함과 조금 달랐는데, 사서 ㅇㅇㅇ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느 날 같은 팀 동료 직원이 디스크가 터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회사에서는 그 직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시키자니 몸에 무리가 갈 것 같고, 다른 부서로 보내는 것도 애매하다고 판단했나 보다. 누군가는 지금 있는 부서에서 담당하는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태면 퇴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그 직원은 병원에 다니면서 같은 일을 계속해야 했다. 어느 날, 짐을 옮기다가 짐이 쓰러졌다. 나는 쓰러지는 짐을 붙잡고자 힘을 쓰다가 팔을 다쳤다. 한쪽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나머지 한 팔로 일을 했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다른 부서로 이동은 시켜주지 않을 것인데, 그만둬야 하는가. 다행스럽게도 약간의 시간이 지나 회복이 되긴 했지만, 앞으로 오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는 경험이었다.


 사서 선생님들은 때가 되면 부서 이동을 했다. 일을 하는 동안 문화프로그램 담당자가 자료실 근무자로, 자료실 근무자가 작은 도서관 담당자로, 작은 도서관 담당자는 다시 수서 담당자로 몇 차례 변경됐다. 그 와중에 나는 몇 년째 같은 부서에서 동일한 일을 하고 있었다. 슬슬 다른 업무를 하며 여러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신생 부서에서 나를 데려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은근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내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이가 내가 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꺼려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종이를 가지고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삼십 대 중후반에 있지만, 정규직 직원이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도서관에 있으면서 이쪽 업계의 상황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도서관계에서 정규직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민간위탁기관에서 몇 없는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둘 다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고. 


 빨간색 직인이 찍힌, 인쇄된 종이 한 장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고. 앞을 보고 가라고. 어렵더라도 도전하라고. 그래서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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