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씨 Oct 01. 2022

아니다 이 악마야

악마의 달콤한 유혹


"여보, 우리 시골에 내려가서 살까?"


"왜?"


"그냥. 조용하고 좋잖아?"


"가서 뭐 해 먹고살게?"


"시골에서 밭이나 일구지 뭐. 돈 많이 안 쓰고 살면 그런대로 살 수 있을걸?"


"과연...?"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시골에 작은 부지를 사고, 거기다가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사는 것을 상상해본다. 서울에서 살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서울에서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대부분 돈이지만) 다른 곳에 쓰면서 살면 어떨까? 시골에 가면 거리를 걷다가 각종 가게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겠지. 집 앞 도로변에서 밤 12시가 되면 굉음을 내던 오토바이 폭주족의 낮은 자존감의 증거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그들은 밤중에 왜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걸까). 매달 나오는 공과금과 빚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낡은 집에서 살기 위해 유지하던 돈으로 시골의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참치캔 먹을 일 없이 텃밭에서 바로 딴 싱싱한 상추나 고추를 먹을 수 있겠지.


그런데 가서 진짜 뭐 해 먹고살까. 밭일만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밭일은 할 수 있을까. 뭘로 돈 벌지. 서울보다야 아낄 수 있다지만, 정말 필요한 만큼의 돈은 벌 수 있을까. 필요한 만큼의 돈이란 얼마일까. 이런저런 상념들이 떠오른다.


생각이 깊어지면서 최소한의 필요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시골에 살면 지금처럼 패션 유행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철마다 옷을 살 필요가 없으니 자주 옷을 구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먹을 것은 밭에서 기르고 논에서 나오니 어느 정도 해결될지도 모른다.  주택은 서울에서 주거지를 구하는 것과 시골에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의식주만 고려하면 시골에서 생활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일은 아닌 듯만 싶다.


자연스레 앞으로 필요할 것에서 지금 내가 소유한 것들로 시선이 옮겨진다. 결혼을 하며 혼수를 이유로 새로 마련한 것들이 많았다. 아내에게 간곡하게 부탁해 평소 가지고 싶던 콘솔 오락기를 구입했다. 오락을 밖에서도 해야 한다는 주장에  휴대용 오락기도 추가했다. 같이 운동을 하자고 자전거를 사자고 했다. 일반적인 자전거로는 성이 차지 않아 다른 곳에서는 잘 보지 못할 자전거를 두대나 샀다. TV도, 에어컨도, 냉장고도, 카메라도, 선풍기도, 오븐도, 전기레인지도... 새로 장만한 것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것 같다. 새로운 물건은 이후에도 계속 추가되었다. 옷도 철마다 늘었고, 신발은 둘 데가 부족할 지경이 됐다.  노트북은 두대요, 폰은 세대가 있다. 최소한의 필요에 대해 따져보다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소 나는 검소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여겨왔다. 그러나 객관적인 실상은 내가 어마 어마하게 사치스럽다는 것이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일이 너무 힘들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차를 사라는 말이었다. 차를 사면 다달이 할부금을 갚아야 하고, 할부금을 갚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되고 오히려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물건을 사면 돈을 내야 한다. 물건을 사고자 한다면 돈을 벌어야 한다. 내가 사치스러운 사람이고 앞으로도 계속 과소비를 하고자 한다면,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현금을 계속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 아마도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울은 소비하는 자의, 소비하고 싶은 자의 도시이다.


시골에 내려가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소망해보지만, 나의 생활은 정 반대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TV와 라디오, 신문,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는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소비하라고 속삭인다. 나는 그 속삭임에 유혹되어 사는 것을 반복한다. 소비는 나를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 나의 자유를 빼앗는다. 미디어는 소비가 자유를 불러올 것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 노예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오늘도 한참 네이버 쇼핑 페이지를 구경하다 힘겹게 닫기 버튼을 눌렀다. 이어서 바로 페이스북을 구경하다가 새로운 상품 광고가  나를 또 유혹한다. "이거 사고 싶지? 신상이야...ㅋㅋㅋ" 광고를 향하는 엄지 손가락을 재빨리 거둬들여 주먹을 쥐고 외친다. "아니다. 이 악마야."


시골 생각은 다음에나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한참은 지나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과거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브런치에 올린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서자격증을 받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