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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화 Sep 18. 2016

가면 놀이

최악의 하루

사회에 나오면서 큰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나는 어제부터 계속 나였는데 오늘의 나는 너무 비겁해 보이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예의를 차린 것도 아니고, 신중한 것도 아닌 모습이었다. 나 스스로는 나에게 낯선 상황을 알아가기 위한 탐색전 중이라고 이해를 시켰지만 결론적으로 낯선 상황에 대한 적응은 이미 끝났어도 낯선 나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선배나 상사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도 발언과 행동의 신중함도 아닌 나는 그저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단언컨대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항상 도전적이면서도 정도를 지켰고, 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어서 발언이나 행동도 거침이 없었다. 고민이 많은 편인만큼 행동에 대한 실수도 적어 주변에서도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으며 집안에서나 학교에서나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에게도 내 이름만으로 보증이 되는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때 불심검문처럼 소지품 검사가 있을 때면 내게 화장품이나 담배를 맡기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러다가 운이 나쁘게(?) 걸리는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생님이나 선배들은 이것이 누구의 것이냐고 추궁했을 뿐 절대 내 것이라고 믿지 않을 정도였다. 여하튼 나는 그런 애였다. 

그런데 회사라는 곳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나는 이상해졌다. 면접 때도 그러지 않았다. 나를 안 뽑으면 니들이 손해라고 굳게 믿었다. 대졸 여성들의 대기업 취업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때였고,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은 여러 장의 이력서를 썼다. 나는 황송하게도 이력서 단 한 장을 쓰고 단박에 대기업 입사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입사를 해서 본 선배들도 뭐 그다지 비범해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내 태도가 이상했다. 우선 나는 내 목구멍에서 낭창한 비음이 섞인 소리가 나올 줄 몰랐다.


김종관 감독은 홍상수 키즈인가 싶을 정도로 영화 전반적인 색깔이 홍상수 풍이다. 카메라 워킹이나 배우들의 연기나 대사의 성격과 역할 등이 홍상수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김종관 감독은 홍상수보다 친절하고, 서정적이며 캐릭터를 보는 입장이 홍상수와 다르게 3인칭의 시선을 유지한다. 홍상수가 1인칭의 시점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 속에 숨겨 놓았던 지질한 자아를 불현듯 보게 해서 뜨끔하게 한다면 김종관은 그저 관전하는 입장에서 대상을 객관화시킨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작품 속의 웃음 코드는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데 홍상수 영화에서의 웃음 말 그대로 웃프다. 스크린 속 모자라고, 덜 떨어진 인간에 대한 조롱은 어느 순간 자조로 바뀌어 키득거리며 웃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이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내 민낯을 들킬까 싶을 정도의 의식적인 웃음이 섞여있는 것과 다르게 김종관의 웃음 코드는 대상에 대한 답답함과 한심함을 겨냥한 너털웃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발화의 차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홍상수는 개인의 문제를 보편적 문제로 확장시켜 이야기하는 홍상수와 보편적인 문제를 특별한 상황으로 연출해 이야기하는 김종관의 문제의식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며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은희는 연극 대사를 읊는다. 영화 처음에는 레슨을 받는 장면 맥없이 외운 글자를 나열하듯 소리를 내 선생님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영화의 끝 같은 대사를 처음과는 다르게 맛깔나게 뱉는 은희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약 2년 정도 힘든 나날을 보낸 후 회사 생활은 내게 맡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업무가 힘든 건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나 같지 않은 날의 연속으로 나는 껍데기를 사는 것 같았고 이것은 시간이 흘러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체중이 10kg 넘게 가까이 줄었고, 위염이 심해 위경련이 자주 왔고, 장의 기능도 안 좋아져서 전체적으로 순환계의 이상이 왔다. 신경이 전보다 날카로워져 짜증이 심해지기도 했고 세상을 보는 시선은 스무 살 때보다 냉소적이 되었다. 퇴사를 하고 내가 잘 하겠다 싶은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는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은희는 배우다. 그리고 최악의 하루 동안 은희는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을 모두 들켜버리고 만다. 

소설가를 만난 은희는 대번에 묻는다.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일까요? 소설가는 그가 만든 가상의 세상 속에서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하며 세상의 진실을 말한다. 배우는 실제 자기의 모습을 뒤에 두고 다른 인물을 연기하며 관객을 대한다. 배우는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 극 속 인물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소설가와 배우는 거짓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은희의 입을 빌려 감독은 처음보다 친절하게 다시 한번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한국 방문이 처음인 일본 소설가에게 은희는 낯선 나라에서 만난 청순하고, 친절한 여자다. 그가 하루 동안 겪었던 정신없고, 당황스러운 일과와는 다른 안심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그가 겪은 현실과는 다른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배우 애인에게 은희는 이처럼 헌신적일 수 없다. 이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듯한 애인의 기도 안 차는 주접을 보면서도 귀엽게 이해한다. 그냥 걷기에도 힘든 남산 산책길을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약속 장소를 정확히 얘기해 주지 않아 조금 더 내게로 오라며 재촉하는 애인의 요구를 토라진 듯 불평하면서도 기꺼이 그의 요구대로 움직여준다. 은희 자신은 이름 없는 배우지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애인의 성공에 질투를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기특할 뿐이고, 대낮에 그의 얼굴을 선글라스와 모자와 마스크 없이 보는 것이 그에게 바라는 전부다.


 

외도의 상대였던 운철을 대하는 은희는 어떤가? 시종일관 운철을 조바심 나게 하는 은희는 일본 작가가 아는 은희도 철없는 애인의 주접을 귀엽게 받아주는 너그러운 은희도 아니다. 운철과 함께 있는 은희는 그냥 도망치고만 싶다. 쉴 새 없이 다그치며 전진해 오는 운철에게 은희는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던 친절과 이해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너지만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재결합하겠다는 운철에게 너는 내게 왜 그러냐며 서러운 눈물을 폭발시키는 은희의 눈물은 과연 저것이 진짜일까 싶을 정도로 연극적이다. 은희의 입장에서도 운철의 입장에서도 서로는 서로에게 단지 순간적인 외도 상대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진실로 사랑했다는, 한 번도 거짓으로 상대를 대한적 없이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운철은 은희의 눈물을, 은희는 운철의 고백을 진실이라 생각했을까?


내가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 갖고 있는 절대 변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다. 사람은 물과 같다. 즉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사람은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간 종의 특징을 얼마큼 잘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이것을 얼마큼 유연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가치는 달라진다. 이것을 멋없는 말로 흔히들 처세술이라고 한다. 내가 어떤 상대와 어떤 상황을 만나느냐에 따라 때에 맞는 가면을 골라 쓰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영화 속 은희는 마치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나의 모습과 비슷하다.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온 나의 여러 가지 가면들 중 어떤 것이 진짜 나란 말이냐? 진한 커피를 여러 번 마셔 날카로운 각성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아마도 그것을 구분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절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무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 모습도 나고, 지금이 이 모습도 나다. 과거의 영광 속의 모습도 나고, 현실의 쭉정이 같은 모습도 나다. 나란 존재는, 확장시켜서 인간이란 존재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엉켜 살면서 때에 맞춰 쓸 다양한 가면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환경이 넓어지고, 다양해질수록 가면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섬세해질 것이다. 


아직 젊고 어린 은희는 서로 다른 가면들이 한꺼번에 만나 충돌하는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눈을 감고 주저앉아 절규해버리지만 아마도 은희가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더 많은 가면을 보유하게 되었다면 서로 다른 가면이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지도, 설사 그런 상황이 왔다고 할지라도 조금 더 느물 느물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영악한 새로운 가면을 급히 썼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인사처럼 하는 얘기는 사실 단 두 가지로 압축된다. 내가 전에 알던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르지 않는구나와 너는 그때 내가 알던 너와는 다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바탕으로 묵은 이야기들은 시작된다. 사실 나는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고. 그때도 나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주어진 상황에 애정을 다했고, 지금도 그럴 뿐이다. 

홍상수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하지만 속내는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고 하는 것처럼 김종관이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너는 알고 있냐고 묻는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있다. 그것도 진실이고, 이것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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