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봄이었다. 날벌레들이 기승을 부리며 방충망을 뚫어버리려는 집착적 괴력을 보이기 전이었으니 말이다.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했고 늘 하듯이 오전 일과를 진행하는 중 잠깐의 커피 타임을 가질 때였다. 머신이 추출하는 다크 로스팅한 커피의 향이 유독 오래 나는 듯도 하고, 유난히 커피 향이 많이 나는가 싶은 생각도 들던 참에 뭔가 역한 냄새가 훅 맡아졌다. 고무 타는 냄새인가? 휘발성 물질이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설탕을 태웠나 싶은 냄새 같기도 한 엄청나게 많은 냄새들이 뒤섞여 결국 탄내인가? 싶은 그런 냄새. 순간적으로 인덕션을 봤으나 불에 올려 놓은 건 없었고, 혹시 전기가 과열되면서 전선의 피복이 탔는가 싶어서 주변 콘센트부터 살펴보다가 냄새가 2층에서 난다는 생각에 계단을 오르면서 2층에는 이미 이 괴이한 냄새가 꽉 찼다는 것을 확인했다. 청소하며 환기 차 열어 놓은 창문으로 외부 공기가 순식간에 들어왔구나 싶어 급하게 창문을 닫았고, 가장 걱정이 된 앵무새들 방으로 갔는데 다행히 한쪽 방향의 창문만 열어 놓은 상태여서 냄새의 유입이 덜했다. 대형 공기 청정기는 자기의 소임을 다 하느라 평소에는 잘 내지도 않는 굉음과 붉은 빛을 쏘아내며 열심히 가동 중이었다. 앵무새들의 상태는 괜찮아 보여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이 괴이한 냄새의 진원을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기세 등등하게 뿜어 나오는 회색 연기가 상승기류를 타고 공중에서 휘돌아 우리 집 쪽으로 퍼져나가 단지 내 도로 쪽 산에 막혀 안개가 고이듯 단지에 고여 있는 실로 괴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힘 좋은 연기는 다름 아닌 우리 집 앞집에서 박력있게 생산 중이었다. 뭉게뭉게 풍성하게, 아주 쫀쫀하고 밀도 높은 연기가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소나기라고 내릴 기세였다고 하면 너무 심한 과장이라고 할까? 나 역시도 보지 못하고 누군가 그런 말을 전했다면 너무 뻥을 친다고 했을거다.
"미친 거 아냐?"
그 광경 속에서는 그저 황당함과 분노를 함께 표현하는 혼잣말 혹은 감탄사 혹은 질문 혹은 독백 같은 소리만 의미없이 지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고 잠시 뒤 정신을 잡고서는 카메라를 찾아 박력있게 생산되는 연기를 촬영했다. 이런 진귀한 장면을 나혼자 볼 수 없고, 내가 말로만 전했을 경우 나의 신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정도희 희귀 장면이므로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증거 우선 주의에 입각한 참으로 스마트한 행동이었다.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도 온갖 추측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뭘 태우는 거지, 왜 태우는 거지, 주택가에서 저렇게 연기가 펑펑 나는 걸 태워도 되는 건가, 나 말고 이 동네 사는 다른 사람들도 지금 저 광경을 보고 있겠지, 단순 소각 행위인가, 이게 처음 있는 일인가? 처음 하는 일을 이렇게 백주대낮에 당연한 듯 할 수 있는건가? 수시로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여태 아무도 이런 행위에 대해서 불편을 말하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면 불편을 표현해도 그냥 무시하고 하는 건가?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데 아,.... 망했구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싸워야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겠구나 하는 피로감이랄까 이런 것이 느껴지며 순간 기운이 쭉 빠지는 듯 했다.
동영상 촬영은 이 정도면 됐다 싶어 현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현관을 나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에 소각 현장에서 소각범을 만나게 된다면 뭐라고 해야하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저 궁금한 척 무얼 하느냐고 물어야 하나? 주택지에서 소각 행위를 해도 되냐고 물어야 하나? 너무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단호하게 이런 행위는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줘야 하나? 아니면 연기가 집에 잔뜩 들어서 힘들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화를 버럭 내면서 당장 불을 끄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나? 집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별로 멀지도 않은 거리를 종종거리면서 가면서 머릿속은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차라리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없으면 가까이에서 소각물을 찍어야지. 차라리 나중을 위한 증거 자료로서의 가치는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종종 걸음도 빨라져서 생각이 차마 정리도 되기 전에 소각 현장에 도착해버렸다. 부지런하게 다른 소각물들을 날라 짊어지고 오는 집주인 혹은 소각범과도 마주치고야 말았다. 여유롭게 말을 해야지 했는데 이미 표정은 굳어버렸고 내 표정을 내가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어떤 눈빛으로 상대를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마 턱은 약간 당겨지고, 미간의 주름이 얕게 잡힌 상태로 불 타며 연기를 뿜어내는 악취 덩어리들과 소각범의 눈을 빤히 번갈아 가며 보고 있을 거다.
소각물들은 며칠 동안 그집 밖에 쌓여 있던 DIY 가구들과 기타 폐건축 자재, 페트병과 목장갑과 기타 알수 없는 종이 쓰레기들 등등. 마침 바람이 불면서 마치 꽃가루가 날리듯 소각 현장에서 잘 타고 남은 재들이 휘리릭 날아 올랐다. 어쩌면 이 산동네에서 봄에 부는 바람에 날리던 것은 오래전부터 꽃가루 뿐만은 아니었겠구나 내 비염의 원인이 단지 꽃가루만은 아니었겠구나 싶은 마음이 훅 들었다.
"이거 태우시면 안 되는 거 아녜요?"
대뜸 나왔다.
"바람 부는 거 모르셨어요? 지금 보시다시피 상승 기류를 타고 지금 저희 집 2층에 연기가 꽉 찼어요."
내가 생각한 두 가지 본론이 다 나와버렸다.
이젠 상대의 대답에 따라 반응할 차례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집중해야 한다. 평소 봐 온 바에 의하면 그닥 우호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바로 사과와 함께 소각 작업을 멈출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수천만 가지의 경우가 훨씬 많겠지만.
"그댁 지을 때는 매일 불 피웠어요. 현장에는 오후 늦게나 와서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불 피웠다고. 현장 사람들 점심 먹으러 가면 내가 불도 봐 주고 그랬어요."
이건 무슨 뜬금없는 반응이지?
"저의 집 지을 때 현장에서 매일 아침 쓰레기를 태웠다고요?"
우리집은 공사는 추석 연휴가 지난 뒤 11월 경에 시작을 했다. 기초 공사가 끝난 후 목재의 수급이 늦어지는 바람에 한 달 반 이상 작업이 멈춰져 있어 애를 태웠고 본격적인 공사는 12월 말 정도부터 시작을 했다. 그러니까 겨울 공사를 했다. 현장에서 작업자들은 대개 아침 7시 정도에 모여 8시 경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1시간 정도의 점심 시간을 가진 뒤 오후 4시 이후부터는 현장 정리 5시면 퇴근을 한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매일 퇴근 후 현장에 방문해 공사 상황을 확인하고 현장 주변을 살펴봤다. 공사 현장을 항상 정돈하고 주변으로 쓰레기들이 날리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는 현장 책임자에게 항상 하는 당부였고 운이 좋게도 현장 책임자와의 케미도 나쁘지 않았다. 공사 초반에는 출근 전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겨울 공사였고 산 속, 새벽 공기에 작업을 준비 중이던 작업자들이 방한용 불을 피우는 건 알고 있었다. 사람이 비는 시간에 혼자 불이 타는 일은 없게 해달라면서 소화기도 직접 전달한 것도 우리가 했다.
"겨울 공사에 작업자들이 방한용으로 불을 피우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불편하셨으면 제게 말씀을 하시거나 현장 책임자에게 말씀을 하시면 주의를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그때도 불 피워서 우리도 집에 냄새 들어오고 그랬다고요."
"그럼 그때 말씀을 하셨어야지요. 지금 말씀 하시는 이유가 뭐냐고요."
"나는 그때 하나도 안 불편했어요. 불도 봐주고 했다니까요. 현장 소장하고도 친해서 간식도 나눠 먹고, 철수할 때는 섭섭해서 양말이랑 옷가지들도 챙겨주고 그랬어요."
상대의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던 바다. 이런 걸 어떻게 받아쳐야 하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과거의 얘기를 매우 진지하게 하고 있고, 내가 불편하다고 하는 건에 대해서는 반응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나와 상대를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불만이 없고,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사람이예요."
"......"
"그댁 공사하는 사람들은 프로니까 머리 좋게 공사 하면서 나오는 나무들, 그댁은 목조 주택을 지어서 나무를 많이 쓰잖아요. 얼마나 나무가 많이 나왔는지 몰라요. 그걸 태우고."
침착하게 정리는 해 보자.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일단 너도 태웠으니 내가 태우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소각 행위에 대해서 불편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너 역시 불편할 수 없다. 뭐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건가? 나는 지금 쓰레기를 태우는 행위에 대한 불편 사항을 말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말하는 걸 십분 받아 들여서 사건의 진위를 위해 나는 당시 현장 소장을 소환하여 너는 당시 쓰레기 소각을 위해 매일 아침 불을 냈느냐고 물어봐야 하는 건가? 순간, 내가 상대에게 말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현재에 일어난 일로 인해 내가 불편을 느끼고 있음을 전달하려는 바와 함께 쓰레기의 소각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는데 이 두 가지 의견 모두 상대에 의해 소각되어 버렸다. 순간 나의 요구를 이 사람이 전혀 알아채지 못했는가 아니면 교묘하게 빠져 나가고 있는건가 싶은 고민이 또 한 번 스쳤고 이 두 가지 경우에 각각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에 미칠 때 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터프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라 불편한 건 잘 모르고 사는데 그댁은 딱 보니까 굉장히 예민하신 분들이고 그래서 우리도 피해를 주지 말고 조심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집사람이랑 얘기를 자주 하곤 해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모르겠는데 지금 쓰레기 소각하신 연기가 저희집 쪽으로 날아 들어서 환기 중이었던 2층에 연기가 다 찼다고요. 그리고 쓰레기는 태우시면 안 되는 거라고요."
"네, 네. 이제 태울 건 얼마 없고 지금 바로 끌게요."
대화 종료.
할 말은 다 한 것 같으나 속은 더 갑갑해진 것 같은 느낌. 공기 중으로 퍼진 쓰레기 소각 연기들이 내 속으로 꽉 차들어 숨을 쉬기 힘들었고 속이 울렁거려서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올라왔다. 풀린 것 같지 않은 대화의 내용들을 곱씹어 보면 이 사람은 현재 쓰레기 소각에 대한 정당성을 확고히 갖고 있으며, 아직도 태울 쓰레기들은 존재하고, 이후 같은 행동을 다시 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어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나를 보통 이상의 예민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고로, 오늘 이후 오늘과 같은 일은 또 일어날 여지가 분명하며 이에 대해 불편을 표현할 경우 그 사람에게 나는 시골 살이에 부적합한 예민한 여자의 히스테리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대개의 경우 한 사람이 상대에게 당신의 행위가 나는 매우 불편합니다라는 의사를 표현한 경우 그 행위의 적합성 여부를 따져 본 후 정당성이나 적합성을 서로의 입장에서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적당한 합의에 이루는 것이 여태까지의 나의 갈등 해소 방법이었다. 물론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생활의 반경이 크게 겹쳐지지 않는 매우 드문 이벤트의 경우였기에 화는 나지만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로 끝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로 끝낼 수 있는 경우는 아닌 것 같다는 강한 확신. 웬지 단순히 이 사건만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는 느낌과 더불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부인과 나누었던 그간의 대화의 내용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하며 그들이 보인 행동과 행위들이 방금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사건의 복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모든 사건들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나 사소해 당시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은 엄청난 사건의 복선이 된다. 순간, 소름이 끼치며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리고 또 의도하지 않는 한 마디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