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태어난 것에 대한 무력감
<그린 북>

by 영화요원

최근 코로나로 국내외 영화산업이 직격타를 맞아 수많은 작품들이 개봉 연기를 하면서 현재 평일 영화관을 찾는 국내 관람객 수가 3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형 영화관 3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영화관들이 '명작 리플레이'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91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그린 북>이 다시 한번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 <그린 북>의 내용을 두고 사실 미화라는 의견들이 분분했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좋은 영화란 이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든 좋은 영화에 담긴 인종차별 이슈는 무엇인가?


두 남자의 우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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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뉴욕에서 주먹의 힘만 믿고 살아가던 토니는 일하던 클럽이 잠시 문을 닫게 되어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평소에 흑인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토니는 면접에서도 한 성격 하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아직까지도 차별이 남아있는 남부지역에서 투어를 하기로 한 돈 박사는 자신을 보호해줄 보디가드로서 토니가 적합하다고 생각해 그와 함께 2달간의 남부 공연 투어를 시작하게 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통점이 단 한 가지도 없었던 그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몰랐던 서로에 대해 알게 된다.


노예제도에 대한 상반된 의견으로 시작된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100년 후, 미국 사회와 그리고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린 북>의 제목은 1930년대 [흑인 운전자를 위한 가이드 북]을 의미한다.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이면서, 흑인이 사용할 수 있는 모텔, 음식점 등을 표기한 이 책은 그 당시 수많은 공공장소가 '백인 전용'이라는 관습을 유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여전히 흑인에 대한 대우가 특히 좋지 않았던 남부를 여행하기 위해선 이 가이드북은 필수였다. 돈 셜리 박사 또한 백안관에 초정되어 연주를 할 만큼의 유명인사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저 한 명의 흑인이라는 대우를 받았기에 그에겐 적절한 시기에 힘을 써줄 사람인 토니가 필요했다.


이탈이라 이주민이었던 토니 또한 '이탈리아 마피아'라는 선입견에 대한 반항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듯한 캐릭터로 클럽에 오는 부자들에게 가벼운 사기를 치거나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토니는 공격적으로 흑인들을 혐오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반기지도 않았다. 그들이 사용했던 컵을 자신의 입에 대긴 싫었지만 그들이 주는 큰돈은 받으면서 일할 의향이 있었기 때문에 돈 박사의 운전기사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성공한 돈 박사는 자신이 뮤지션이기 이전에 흑인이라는 걸 인생 전반에 걸쳐서 경험했기에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힘 좀 쓸 줄 아는 백인 토니를 선택한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과 정반대인 돈 박사는 그 어느 누구보다 매너 있고 교양 있으며 높은 수준의 교육까지 받은 '클래식' 연주자이지만 백인들이 흑인 뮤지션들에게 기대하는 '재즈음악'투어를 자청한다.


유쾌한 시작과 감동적인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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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시작으로 돈 박사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켄터키 후라이트 치킨을 씻지도 않은 손으로 먹어보고, 평소 애정표현을 잘하지 않던 토니는 떠나 있는 동안 아내에게 정성스러운 연애편지를 쓰게 된다. 서로의 다른 점을 알아가고 도와주고 그동안 서로를 오해했던 부분들을 차 안에서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로 자연스럽게 풀어나간다. 한밤중에 흑인이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가고, 마지막 공연장소인 호텔 레스토랑에서 연주는 할 수 있어도 식사를 할 수 없다는 모순적인 상황들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돈이 향한 곳은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 그곳에서 이방인 시선을 받는 건 백인인 토니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백인에게 물러서라고 말하지 않고 다 함께 즐거운 저녁을 보내게 된다. 함부로 그곳이 돈 박사의 고향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그냥 흑인으로 태어났을 뿐이고 이러한 자유분방한 문화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곳이 돈 박사를 존재 자체로 반겨주는 유일한 곳이었기에 그가 그토록 원하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된 것이다. 남부로 내려오는 길은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였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는 사건들이 있었지만 반대로 다시 뉴욕으로 올라가는 길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내려 운전대를 온전히 잡기도 힘들었지만 따스한 경험을 맛보게 된다.


이 투어가 한 사람의 인생이라면 좋은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나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길이 자신의 존재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친구와 함께라면 꽤 살만하지 않은가 하는 유쾌한 감동을 전한다. 마지막까지 격식을 차려 선물을 들고 토니의 집에 찾아간 장면 또한 다 지나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아주 충분하다.


민족융합을 위한 재즈, 클래식 그리고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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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문화로의 민족 융합이다. 문화의 경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명시하고 클래식, 재즈, 음식들이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문화를 향유하는 우리들 또한 경계선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두 남자가 전하는 유쾌한 감동 뒤에 어딘가 모르게 밀려오는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서 시작된다. 분명히 좋은 영화이고 좋은 결말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해오면서 화가 축척된 거 같다. 어떤 사람들은 필자와 같은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도,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본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사실에 기반했고 이것들이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세상에 만연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다.


유색인종이라는 단어가 또 다른 차별을 낳는 말이기에 사용하고 싶진 않으나... 유색인종이 부자나 왕, 권력자, 최근에 들어서야 원탑 주연을 연기할 순 있어도 이러한 인종차별적 영화에서는 우리의 오랜 과거의 모습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 피부색으로 이미 역할이 정해지는 것이다. 유색인종 역할을 맡는 것 자체 싫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라는 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백인이라는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닿으려 해도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게 아직까지 존재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화를 내는 게 아니다.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너무 잘 안다. 다만 내가 슬픈 건 이런 영화들에 열광하고, 작품상을 수여하고,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너무 가슴 벅차면서도 이런 감정을 애초에 느끼지 않아도 될 세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종종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왜 이들은 백인이 유색인종들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영화에 열광할까, 우리에겐 일상이고 두려움인데. 필자는 영화배우를 꿈꾼 적도 없고 아직까지 유리천장을 실감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 영화로 태어나자마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 사실이 이토록 비참한 줄 몰랐다.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멋진 피아노 연주 장면이나 마지막 크리스마스 장면도 아닌, 잠깐 스쳐 지나간 동양인 운전기사 면접자인 것처럼 아직도 우리는 이렇게 외진 곳에 서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듯 이 글을 초반에 썼을 땐 굉장히 무기력했지만 또 다른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곤 한다. 사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라는 것은 없다. 그저 한없이 우울할 때 누군가 당신의 손을 억지로 끌고 나올 수 없는 것처럼 그냥 다가오는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또 가끔 이겨내는 것도 괜찮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될꺼같다. 어쩔 수 없이 비는 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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