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법무사협회 법무사지 3월호 드라마 온 넷플릭스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 1, 2, 3, 4, 5(2011~2019, 영국 Channel 4, 넷플릭스)
SF(Science Fiction)장르는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언제나 사랑받는 소재이면서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영국의 방송사 채널 4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서 작용하는 시스템과 미디어를 주제로 옴니버스 드라마를 제작했고, 많은 시청자들이 매 회마다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하는 시리즈에 흠뻑 매료됐다. 바로 「블랙 미러(Black Mirror)」라는 작품이다. 시즌 1로 호평을 받아 차후 시리즈를 제작했고 시즌3, 4, 5는 기존제작사가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넘어왔다. 발달된 시스템과 미디어, 여러 가지 정보기술의 발전에 대한 부작용을 조명하는 이 시리즈는 단순히 비현실적인 설정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할법한 수준과 그 기술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이슈들을 다룬다.
개인의 존엄성과 직업윤리 사이의 딜레마
가장 인상 깊었던 시리즈의 첫 시작, 첫 번째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공주와 돼지(The National Anthem)’이다.
영국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왕실의 공주 ‘수잔나’가 누군가에게 납치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납치범의 요구는 다름 아닌 ‘영국 수상이 모든 방송사와 인터넷이 생중계하는 앞에서 돼지와 성관계를 갖는 것.’ 이 비인간적인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인터넷과 언론사에 퍼지게 되고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의 방송국에서도 납치범과의 협상을 주목하게 된다.
여론은 ‘납치범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공주를 구할 수 없다고 해도 그건 수상의 잘못이 아니다’가 대부분이었지만 수상을 보호하기 위한 포르노 배우 섭외와 수상의 얼굴 합성 계획이 한 트위터 포스트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납치범은 수잔나의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신체의 일부를 방송사에 보내 속임수를 쓰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다. 이로 인해 여론은 다시 ‘수상은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납치범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라고 바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눈살 찌푸리게 되는 역겨운 상황에도 약속한 생중계 시간이 될 때까지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공주를 구해야 하는 수상 자신의 위치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사이 딜레마에 빠진 그는 약속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주위 사람들의 말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원제목 ‘The National Anthem’의 뜻은 국가(國歌)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영국 국가는 ‘여왕을 지켜주소서’라는 구절의 반복임을 미루어보아 결국 여기서 말하는 여왕은 납치된 공주 ‘수잔나’를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국가에 헌신을 해야 하는 수상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된다.
「블랙 미러」는 시청자들이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데에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품이다. 가끔은 친절하지 못한 전개 또는 마지막 장면을 향한 긴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지만 아마 미디어 콘텐츠에서, 특히 SF 장르에서 이와 같은 감정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편의를 위해 매시간 매 초마다 사용하는 발전된 기술들에 의심을 품을 수도, 안일했던 일상에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즌 1의 제작자 찰리 브루커는 인터뷰를 통해 시리즈의 제목 「블랙 미러」가 가진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는 “만약 기술이 마약과 마찬가지이면서 기술이 마약같이 사용된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무엇인가? 불안함과 즐거움 사이의 모호한 존재가 바로 ‘블랙 미러’다. ‘블랙 미러(검은 거울)’는 모든 벽과 책상에 있고 모든 사람들의 손바닥에 있다. 차갑고 번쩍거리는 텔레비전 화면, 모니터, 스마트폰이 바로 ‘검은 거울’이다.”라고 전했다. 우리가 가진 전자기기를 껐을 때 검은 화면에 보고 있던 사용자의 얼굴이 비춰진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가 핵심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주제를 제목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손안에 작고 검은 거울과 우리를 비추는 진짜 거울
「블랙 미러」는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중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한 시간 내외의 러닝 타임 동안 시청자들은 가까운 미래를 간접적이지만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경험할 수 있으며, 아마 이 시리즈를 접하는 순간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그다지 반기지는 못할 것이다.
시리즈를 차근차근 밟으면서 상상력의 끝을 보여주는 기막힌 연출이 눈에 띄지만 거의 10년 전에 만들어진 첫 번째 시리즈들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지금 현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이들(제작사)이 예견하여 만들어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한 다양하고도 믿을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의 삶보다 손안에 세계에 집중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들이 기술발전에 대한 유토피아적 세계관에 종종 첨단 기술의 부작용을 언급한다. 기술로 인한 세대와 인간 교류의 단절이나, 보급형 인간의 창조, AI의 반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때론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 같이 미래를 기술들로 완전히 파괴된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블랙 미러 시리즈의 색다른 점은 철저히 미디어와 첨단 기술을 ‘악’으로 보는 데에 있다. 마치 기술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이로운 적이 없었다는 듯이 묘사함과 동시에 시리즈 속 일반 사람들은 그것에 점차 중독되어가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며, 실제로 우리도 우리가 이만큼 미디어에 중독되어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는 이러한 미디어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에 따른 비극적 결말에 대해 별다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점은 거울이 우리의 모습을 정반대 편에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결코 우리의 모습을 왜곡되게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반사하는 성질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거울을 계속 들여다볼수록 어제와 오늘의 자신의 모습이 다르듯이 ‘결국 이러한 시대는 오고야 말 것이다’라는 미래에 대한 경고와 같은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미리 전달하는 것이다.
시리즈에서 말하는 우리의 미래는 기술로 인해 도태된 윤리의식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세상이다. 만약 이 미래가 앞으로 눈앞에 다가올 우리의 ‘진짜 미래’라면 모순적이게도 현재 시청자들은 이러한 자각성 콘텐츠를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작고 검은 화면으로 보게 된다. 또 다 보고 난 후 화면을 꺼버리면서 다시 블랙 미러가 말하는 ‘암울한 시대’와 같은 현실로 빠른 회귀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시리즈의 밖과 안의 경계는 없고 현실이 이 시리즈면서 이 시리즈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라는 것이다. 미디어와 정보기술에 중독되어 벗어날 수 없는 고리에 갇힌 우리의 삶이 점차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블랙 미러」 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