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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Nov 11. 2020

안녕 나야, 또 왔어

산문집 [해파리]

거기 날씨는 어때, 여기는 점점 추워지는데 거긴 벌써 봄이 오고 있겠다.

여러 농장도 점점 활기를 찾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거 같아.

거기 하늘은 좀 다르다고 종종 말햇었자나, 정말 그래? 서울과 다르게 하늘이 낮다며?

여름에 듣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어떨지 궁금해, 해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라...


아 네가 여길 정리하고 가고 난 후 별 다른 일은 없었어. 나야 늘 똑같이 일어나고 회사에가고

집에 돌아와서 좀 쉬다가 잠들어버리지. 요즘은 책도 읽고 있어.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진짜 심심하다는 얘기거든. 진짜야 너무 심심해.


그렇게 훌쩍 가버리다니. 솔직히 조금은 서운해. 돌아온지 일년만에 다시 나가는게 어딨어.

가족들은 안 보고 싶어? 어머님, 아버님이 걱정많이 하실거 같아. 전화 자주드려.

가까이 있을 땐 모르다가도 멀리가면 제일 애틋해지더라. 

아 요즘 읽는 책에도 딸이 미국에 가버린 가족이 나오는데, 거기서 일년에 한 번만 딸을 본다는거야.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30년이라면 딸을 볼 수 있는 기회가 30번 남은거라고 하더라고

네가 거기에 계속있을지 모르겠지만 새삼 30번이라고 하니까 떨어져 있는게 실감이 나더라고.

그래도 거기에서 지내는 너는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내 행복까지 가져가버린건 아니지?


재미있는 얘기 있으면 꼭 들려줘 궁금해. 꼭 썬글라스 쓰고 다니고. 사진 많이 찍어놔.


다음에 또 생각나면 편지할게. 잘 지내 내 몫까지.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지 일년도 안돼서 다시 호주로 나갔다. 한번 나가더니 더 무서울게 없어진게 분명하다.

이번엔 캐리어도 두개가 아닌 하나만 들고 갔고. 처음 떠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들고 갔다. 좀 더 즐기고 놀거라나 뭐라나. 영화 <싱글라이더> 보고 호주 워홀이 무섭다고 했으면서 떠날 땐 세상에서 제일 신난 사람처럼 날아갔다. 세컨 비자를 꼭 받겠다고 가자마자 딸기 농장에 들어갈거라고 했고 딸기 농장 대신에 체리 농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수백 수만개의 체리를 포장하면서 공허함에 다시 돌아올까 생각도 했었다는데, 용케도 농장생활을 끝내고 시티잡을 구했다. 그렇게 배우고 싶다던 커피를 배웠고 이제는 하트모양의 라떼아트까지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호주의 겨울은 그가 싫어하는 비가 쏟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장화를 사신고 매일 출근을 한다고 한다. 눈을 좋아하던 그인데 눈이 안오는게 살짝 아쉽긴 한가보다. 여기가 이제 가을을 끝내고 겨울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호주는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사실 날씨가 나쁜 날보다 좋은 날이 많아서 안그래도 까무잡잡한 피부가 더 건강해졌다고 불평이다. 작년 크리스마스땐 체리농장에서 보내더니 이번년도엔 꼭 외국인 친구들과 보낼거라고 자랑을 해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비록 눈이 내리고 반짝이는 장식이 있는 날은 아니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도 분명 멋질 것 같다. 


많이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다. 그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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