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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Dec 02. 2020

필요없는 글

산문집 [해파리]

철학전공생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아마 '뭐 배워요?'가 아닐까 싶다. 또 그걸 잘 설명못하는게 학부생인거 같기도 하다. 나는 대학원에 가지도 않았고, 철학과 관련된 소재의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아서 내가 뭘 배웠나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미소와 함께 눈을 굴려야하는 아득한 부분이 많다.


그래도 저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면 나는 철학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눈 앞에 놓여진 문제나 상황을 관찰,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이 메뉴얼처럼 정해져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철학을 통해 더 괜찮은 사유 방법을 얻었달까.


4년간의 대학생활에서 몇개 기억나는 강의가 있는데 내가 얼마나 영어를 잘하고 싶었는지를 깨달았던 원어민 영어수업과 인식론, 방법론, 그리고 1학년 철학개론 수업이다. 


모든 1학년의 수업이 그렇듯 앞으로 전공을 어떻게 바라보고 공부해야하는 지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철학개론수업은 내 머릿속에 딱 두가지의 주제로 정리 된다. 


1. 소크라테스의 철학

2. 철학은 정말 쓸데 없는 학문인가


교수님 스타일은 위 주제에 대한 나의 에세이를 써오는 것이었고 뭣도 모르는 나 역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내가 보았던 모든 영화, 드라마, 책, 사상을 종합하여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글을 썼다. 

(아마 옜날 노트북에 있을 텐데 나중에 한번 깨내보면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하고 또 '저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을 것 같다)


동기 중 한 명은 2번 주제에 대해 정확히 [쓸데 없는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썼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했었다. 물론 내용은 정반대였다. 기억하기로는 나도 철학이라는 학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글을 썼고 그 생각에 대한 나의 의견은 아직 변함 없다.


그러다 문득 내 브런치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워낙 글쓰는 주기가 없기도 했고, 심할 땐 몇달에 한번씩 글을 쓰기도 했다. 내 글들은 내가 봐고 너무나 주관적인 경험에 의존해있었고, 영화 글을 제외한 것들은 워낙 감정적이여서 누군가의 공감은 얻기 힘들겠구나 싶었다. 


초반에는 100정도 써보고 재능없다고 판단되면 그 때 미련없이 관두자라는 생각을 했다. 불행중 다행인지 나는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았고 현생에 치여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가끔씩 생각나서 글을 쓰러왔다. 

얼마전에 그 100개를 채웠다. 온전히 영화에 대한 글 100개는 아니였지만 내 마음이 깃들지 않은 글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무 아쉬운거다. 재능이 없는건 그래 인정. 근데 100라니, 너무 적지 않나? 좀 더 써봐도 되지않을까. 재능있는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글이라면 있는편이 났지 않겠나.


철학이 아무리 뜬구름 잡는 듯한 소리만 한다고 해도 분명 쓸데가 있다. 내가 마음을 다해 쓰는 글들도 필요없는 글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에 꼭 필요한 글이라기 보다는 언젠가 쓸데가 있는 글로 말이다.

보통 같은 때면 내 브런치는 왜이렇게 구독자가 안오르나.. 알고리즘의 선택이라도 받아야하나 하고 약간의 회의에 빠지겠지만, 이제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 일어나 달려야 겠다. 200까지는 뛰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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