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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요원 Dec 04. 2020

비열한 수요일

산문집  [해파리]

일주일 중 알람을 듣고 일어나야 할 날이 없어졌다.


일월화수목금토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목요일도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요일, 날짜, 계절이라는 게 시간의 무의미함에 사회가 약속으로 만들어놓은 기준이라고들 하는데, 그중 수요일은 분명 뭔가가 있는 날인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요일이 이렇게 느리게 갈 리가 없잖아.


회사에 다닐 적에도 늘 그랬다.

수요일 오후 3시는 누가 테이프를 꺼내 길게 느려 뜨려 놓은 것처럼 멈춰 있었다.

일이 있던 없던 그때 그 시각은 무심코 쳐다본 시간과 날짜가 언제나 그대로였다.


일주일 중 가장 가운데 있는 이 요일은 내게 무료함을 두배로 준다.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인터넷 세상의 권태로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없는 정적, 그저 의식 없이 쳐다볼 무언가를 찾는 바쁜 손.


그래서 그런지 수요일만 되면 아찔하다. 내가 지금 뭐하나 싶다.


내 인내심이 이것밖에 안됐나 싶고 내 속에 의지라는 게 수도꼭지를 잃어버린 욕조처럼 차올랐다가 그냥 흘러가버린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신호면 별말 안 할 텐데 그냥 일주일에 꼭 한번 날 아프게 찌르곤 홀연히 가버리는 날이다.


다시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마음은 다음 주 수요일에도 들을 수 있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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