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좋아하고 싶어
좋아하는 것들과 멀어질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사실 남들에게 매사에 그렇게 좋아하지도 그렇게 싫어하는 티를 내본 적이 없어서 '쟤가 뭘 좋아하나?'싶을 거다. 영화라는 좀 큰 것을 제외하면 딱히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 책이나 사람, 행동이나 장소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는 거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한곡 재생은 기본이고 가사를 들여다보며 내가 들은 가사(영어)가 맞는지 확인하고 어떻게 발음하는지까지 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달까. (의외로 외우지는 못함) 근데 그 좋아하는 시간이 3일도 안 간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씩, 빠르게 잃는다.
영화에 진짜 죽을 거 같이 빠진 적에도 하루에 영화 세편을 보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서 아예 영화 자체를 안 보는 시기가 찾아왔고 캐나다에서는 언젠가 책에 빠져서 한국의 이북리더기를 구매해놓고서는 지금은 서랍에 잘 처박혀 있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가수가 생겨서 뭔가 신기록처럼 1년 넘게 좋아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아마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나와서가 아닐까 싶다. 특별한 활동을 안 해도 어디에 누가 참석하고, 개인 SNS에 사진을 업로드하면 그걸 또 챙겨 보게 되고... 이런 것들이 나의 '좋아함'을 지속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모든 '좋아함'은 상대적이다. 나보다 이 가수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고 나보다 더 라이트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더 많을 거다. 이들이 주는 자극은 다른 거 같은면서도 똑같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팬이라는 이름을 걸고 해오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나는 어느 정도이지?' 싶다가도 '저렇게 까지 빠져서 좋아해야 팬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라이트한 팬을 보면 '이렇게만 좋아하는 게 현실적으로 좋지 않을까?' 하며 이른바 과몰입에 대한 경보음을 울린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그 일부를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이 어떤 대상이냐에 따라 옳게 느껴질 수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일에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투자해야 나는 잃지 않을 수 있을까. 1년을 넘게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정의 내려보니 이런 고민도 하게 된다. 멀리해야 할까 아님 질릴 때까지 가봐야 할까.
딱히 누구에게 어떠한 평을 받는 것도, 나의 좋아함의 척도를 측정받는 것도 아닌데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이제는 거리를 두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좋아함의 대상을 이해하려 할수록 스스로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내가 어디에 서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모호해진다. 멀리서, 한 발자국 뒤로 가보는 게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