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은 네가 바보지'라는 말이 있다. 왜 우리는 먼저 '믿음'과 '신뢰'라는 손을 내밀었다는 이유로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말 진심이란 없는 것일까. 믿고 속고 속이고, 다시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은 이제는 정말 배우가 되어버린 임시완과 그의 청초함과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배우 설경구와의 신선한 조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교도소에서의 최고 권력인 담배 유통권을 지닌 한재호(설경구)는 새로 들어온 신입 조현수(임시완)의 패기와 깡다구에 흥미를 느낀다. 서로의 뒤를 봐주면 의리를 다진 그들은 점점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재호의 범죄 집단에 조현수가 들어가면서 비즈니스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호형호제하는 친근한 사이로까지 발전한 그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엔 용서할 수 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된다. 누굴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버린 마지막까지 과연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죽어 마땅한지 질문하게 한다.
'속고 속이는 서로'라는 설정은 한국 영화나 외국영화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소재다. 마지막까지 속는 인물이 패자가 되고 속이는 인물이 승자가 되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선 영화 <불한당>은 누가 과연 나쁜 놈인지, 누가 누굴 속여 마땅한지를 혼란스럽게 하고, 또 나쁜 인물에게는 연민까지 갖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 속 승자는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마지막 순간에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동시에 사랑의 감정이 밀려오면서 '나쁜 놈들의 세상'이라는 서브타이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가 몰입도가 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집중하기 힘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의도된 웃긴 장면들은 그렇게 웃기진 않았고 한국 느와르에서 잘 보여주지 못했던 여러 가지 연출에서의 도전도 아직은 어색했다. 그럼에도 '믿음과 배신'이라는 설정이 관객으로 하여금 모든 캐릭터들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사실상 아무 의미 없었던 넥타이 매무새 다듬기도 무언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잘 이끌어 냈다고 본다.
극 중 혈연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과 과거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범죄조직 회장(이경영)의 사촌인 고병갑(김희원)은 자신의 가족인 회장을 배신하고, 진실일지는 모르나 재호는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회장과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 생긴 밑바탕에는 그렇지 과거에 받았던 상처와 상항 내 편일 줄 알았던 가족의 배신으로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의 부재에 대한 슬픔과 그런 누군가를 향한 욕망의 결과물인 것이다. 재호가 현수에게 '너 같은 사람이 수 없이 많이 스쳐 지나갔다'라고 말했을 때 내 귀에는 현수 너를 언제나 쉽게 버릴 수 있다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믿고 싶다고 들렸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 주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대사들은 두세 번 언급되는데 그중 하나가 '이렇게 사는 거 지겹지 않니?'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이렇다는 재호의 말은 그의 양면성을 나타낸다. 자신의 삶이 거지 같고 누구 하나 자신의 편의 서줄 사람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혐오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끄러워한다.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어라'하는 그의 말은 자기방어적이다. 나도 널 믿지 않을 테니 너도 날 믿지 말아라. 사실 재호가 하는 모든 대사는 이면성을 지니고 자기방어적이면 자기혐오적이다.
언제나 뒤통수 맞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영화의 설정은 사랑에는 이별이, 믿음에는 배신이 있다는 야누스를 이야기한다. 한때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연애를 함에 있어서 사랑과 이별이 패키지라는 표현을 했고, 이동진 평론가는 우정에는 배신이 함께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리고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고립된 섬 야누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아지트에서 누가 누굴 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장면에 다다르기까지 현수의 마음의 변화를 여러 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물이 의리와 배신 사이에서 갈등할 때 카메라 앵글이 흔들린 설정을 주었는데 현수가 포대자루에 씌워져 여형사에게 끌려갔을 때도 어느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카메라 앵글의 흔들림으로 잘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결전에서 현수와 재호가 대화를 나눌 때 이미 엄마의 죽음으로 결정을 내린 현수를 비추는 카메라는 미동도 없었고 그런 현수를 바라보는 재호를 향한 카메라 앵글은 역시 흔들렸다.
'넌 이렇게 살지 마라'라는 재호의 말을 들을 리도 없지만 역시 현수도 재호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잘 나타난다. 뒤늦게 출소한 현수를 빨간 오픈 스포츠카에 누워서 기다리던 재호의 모습과 마지막에 모든 것을 다 청산한 현수가 혼이 나간 표정으로 빨간 스포츠카에 누워있는 장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게 또 누굴 믿을 수 없는 캐릭터가 누군가와의 믿음을 갈구하게 된다.
후반부에 갈수록 임시완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이미 영화 <변호인>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에게 눈물 연기, 오열 연기, 맞는 연기는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너무나도 청순한 얼굴에 풋풋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가진 그가 액션 연기며, 능글맞은 연기를 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본인도 힘들었을 것이고 보는 나도 조금 힘들었다. 그런 미약한 부분을 설경구가 강렬한 연기로 채우고자 했지만 조금 과했다고 생각한다. 야비해 보이고 호탕해 보이는 척하는 그의 웃음소리는 처음부터 비공감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임시완도, 설경구도 아닌 김희원이었다. 아마 이 영화 속 가장 솔직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영화 <아저씨>에서 끊임없이 폭주하던 기관차의 모습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고 (실제로 체중도 늘려서 인간적으로 보였다) 자신에게 내리는 판단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도 재호를 향한 원망이 아니었고, 현수의 뒤통수에 대한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이 누구를 믿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실에, 내가 믿었던 재호의 행동에 대한 슬픔으로 보였다. 빗속에서 무릎을 꿇고 칼부림 한 번 제대로 못한 그의 모습이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는 캐릭터 정승필(김성오)을 향한 병갑의 대사는 총의 거리가 있어서 죄책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수도 없이 죽여봤을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은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전혜진의 연기를 보면서 우리나라 영화 속 여형사 캐릭터들은 왜 항상 엉뚱하거나 나쁠까 생각하게 됐다. 이전에 <표적>이란 영화 속 김성령의 연기가 떠올려졌고 여러 코믹 영화에 등장하는 여형사들이 생각났다. 그들의 연기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좀 더 세심한 설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게 꼭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전반부에는 개그로 후반부에는 느와르로 흘러가는 느낌인데 감독이 시도한 여러 연출들이 신선하기만 할 뿐 장면에 녹여내지 못한 점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특히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장면을 비롯해서 비교적 허술한 개연성, 그리고 주연의 연기력이 아쉬운 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나쁜 놈이 누구냐. 글쎄 나쁘다고 하면 전부이고, 아니라고 해도 전부라고 보인다. 그런데 작품을 감상한 관객으로서, 그리고 개인적인 도덕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바라보자면 모두가 나쁘다. 어디가 어떻게 나쁘다는 걸 일목요연하게 말하기엔 복잡한 면이 있지만 과정으로 보나 결과로 보나 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은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다.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개인이 내린다. 상황이 내리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사실 변명이다. 그러니까 여기 나온 모두가 나쁘다. 그중에 그럼 누가 제일 나쁘냐. 천형사를 향해 현수 6발의 총알을 모두 날리고도 발사되지 않는 총을 계속해서 당겼던 장면에서 느꼈다. 천형사가 제일 나쁘다고.
그러니까 착하게 삽시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