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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사냥꾼 사이. <더 헌트>

by 영화요원

왓챠 플레이라는 어플을 통해 영화를 보면 내가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장점과 단점이 잘 나타난다. 장점은 언제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나를 위한 추천작을 볼 수 있다는 것, 다운로드와 한글자막을 찾는 번거로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겠다. 단점으로는 영화를 쉽게 보다가 그만두게 되는 것, 한 영화를 이틀에 걸쳐서 보는 것, 다른 사람의 평을 보고 영화를 평가하는 것. 정말 보고 싶다는 열망이 없는 작품을 보는 것.


<더 헌트>라는 덴마크 영화는 왓챠 플레이의 장점인 나는 위한 추천작이었다. 김요원 님에게 예상 별점이 높을 것 같은 영화. 더 헌트 라는 제목이 그다지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한국영화 사냥 떠오름)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의 슬프면서도 증오스러움이 담긴 포스터와 썸네일이 인상적이어서 재생하기를 눌렀다. 오랜만에 이런 밀도 높은 영화를 보게 된 거 같아서, 주말을 뭔가 '했었다'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줄거리를 짧게 잘 못쓰는 편인데(말이 많고 생략을 잘 못함) 노력해보자면 이렇다. 한 마을에 사는 루카스는 학교의 선생이었다가 학교가 폐교를 하는 바람에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들을 몸과 마음으로 대하는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루카스에게는 이혼한 전 처와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었고 아내와 이혼한 후 아들과 전처가 같이 살게 되었고 루카스는 혼자 살게 된다. 루카스는 돌싱으로 사냥을 하는 모임에서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지며 친구들의 가족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딸인 클라라가 유치원 원장에게 루카스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것처럼 상황을 묘사하게 된다. 그로 인해 유치원에서 해고를 당하고 당시 만나고 있었던 여자와도 헤어지게 된다. 대다수의 친구들은 루카스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고 몇 안 남은 사람들이 루카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혐의에서 벗어나지만 사람들에게 이미 낙인이 찍힌 그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끝으로 클라라의 아빠이자 친구와의 화해를 통해 다시 일상생활을 찾는 듯했으나 그 낙인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너무 좋은 영화다. 약 2시간 되는 러닝타임 동안 화면에는 루카스의 그 침통하고도 허망한 눈빛이 계속해서 비춰진다. 사실 클라라는 여기서 잘못이 있는 인물이 아니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루카스를 향한 클라라의 사랑(셀제로 클라라의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확이 언급되거나 보여지지는 않지만 영화에서 꼭 밝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이 루카스의, 클라라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클라라가 한 그 거짓된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이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클라라의 말 때문에 루카스가 인생에 있어서의 절망에 이르렀지만 사실 루카스의 목을 조르는 것은 성범죄자라는 것보다. 루카스를 향한 어른들의 시선과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믿음, 성인의 추악함에 대한 상상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영악함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클라라의 행동이 매우 불쾌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새삼 깨달았다.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분명 나쁘다고 할 수 있으나 모르고 잘못을 저지른 것은 내각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데도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래도 여러 가지 방법 중 자신의 신변보호와 혹시 틀켰을 때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최소한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러나 모르고 저지르는 나쁜 행동들은 정말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이게 틀린 일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내손이 움직이는 대로, 내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하기에 훨씬 잔인하고 손쓸 수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 클라라 또한 그랬다. 후반부에 자신의 바보 같은 말 때문에 이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클라라의 말은 루카스에 대한 연민이 아니다. 자신의 아빠가 슬퍼하는 것 때문이고, 루카스의 개가 다른 사람들의 악행으로 인해 죽어서 자신과 놀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을 쫓아가다가 그 선을 혼선했고 그 선만 따라가다가 길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에 대해 적대감과 모욕감을 선사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클라라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옆에서 같이 눈물 흘린 가족의 영향으로 비춘다. 클라라는 무심코 던진 친오빠의 말을 기억해 내뱉었고 어른들은 클라라에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해석했고 확대했다. 원장은 클라라와 같은 피해자를 찾기 위해 학무보 회의를 열어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전한다. "두통, 어지럼증, 악몽...". 어린아이라면 힘든 일을 겪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성장통을 후유증이라고 단정 지었다. 클라라의 말을 확대하고 클라라에게 해석한 문장을 되물었을 때부터 루카스는 이 한 마을이라는 무리에서 낙오된 사슴이 되었고 그렇게 무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루카스가 무리로부터 떨어져서 그 주변을 맴돌고 있을 때 그를 향한 비윤리적인 차별이 시작된다. 아무 상관없는 아들까지 폭력을 당하고 공공장소에서 쫓겨나며 부자의 아끼는 강아지를 죽인다. 이 장면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의 엄마인 에바가 당한 일들과 많이 겹친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집이 훼손되는 등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 (아들의 활부림)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루카스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루카스가 마지막으로 간 크리스마스 예배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일 것이다. 클라라를 원망할 수도 있었지만 그가 원망한 것은 자신을 그런 아동 성학대범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고 마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사람들이다. 루카스는 예배당에서 그들과 직면으로 눈 맞추며 결백을 호소한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클라라 아빠)에게 자신의 처절하고도 진실된 슬픔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마지막에 있다. 그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루카스가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는 아직도 사냥감이며 사람들은 사냥감이 혼자가 되길 기다린다. 한번 사냥감으로, 낙오자로 전락한 루카스는 무리로 다시 되돌아오기 힘들다. 아마 루카스는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힘든 일을 겪게 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그의 눈빛은 그 어려움 속에서 살려달라는 애절함이 아니라 언젠가 올 거라는 걸 안 듯한 눈빛이었다. 아마 그는 그 총성들을 언제나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향한 총구에 맞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사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가족 간의 미스터리와 동시에 인간의 본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어떻게든 살아갈 에바를 나타낸다. 반면 <더 헌트>는 루카스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총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냥 공간에 노출된 홀로 남겨진 사슴일 뿐이고 이 세상에는 사슴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루카스 본인처럼. 사실 사슴과 사냥꾼은 한 끗 차이다. 뒤돌아서면 사슴이 되고 다시 뒤돌아 서면 다른 사슴을 노리는 사냥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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