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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떠나보내면서 마주하는 것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

by 영화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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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연, 새로운 가족 등 갑자기 나타난 것들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이별 또한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홀연히 마주하게 된다. 지난 9월에 국내 개봉한 미아 한세-러브감독의 프랑스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한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사회,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때론 살아가고 있다는 말보다 죽어간다는 말이 더 와닿는 시기가 있다. 자기 자신이 역동적으로 숨쉬고 있고 내 안에 생명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뿜어져나오는 시기가 있는 반면 모든 것이 나의 곁에서 멀어지고 앞에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되고 희미해져가는 때는 아마 대부분 인생의 마지막, 황혼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나탈리는 주변에서 멀어지는 것들과 다시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다른 태도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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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탈리는 파리의 한 고등학교 철학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생각과 사상을 펼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다. 가정에서는 지적인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이제는 돌봐야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늙은 엄마를 챙기기도 한다. 헌신과 사랑, 희생으로 지내온 길고 긴 시간에 끝에는 일평생을 동행할 줄로만 알았던 배우자와의 이별이 있었다.

지적이고 자기 사상에 심취되어 있는 여자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지 남편은 나탈리에게 담담하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통보한다. 여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그 사람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저 그렇게 보내주는 것만이 오로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나탈리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라는 제자 파비앵의 말에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보이며 수년간 참아왔던 담배 한모금을 깊게 빨아드리고는 아쉬움과 함께 내뱉는다.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없는 나이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그녀의 마음이 누군가를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만든다. 영원히 자신만을 사랑할 줄 알았던 남편의 마음이, 아니 사랑이라 믿었던 그녀의 25년간의 세월이 사실은 서로 다른 크기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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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가 맞이한 두 번째 이별은 부모라면, 자식이라면 누구나 겪게 될 가족과의 이별이다.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우는 엄마는 더 이상 나탈리를 지켜줄 보호자가 아니다. 부모를 떠나보내면서 나탈리는 남편에 외도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보이게 되고 꾹 눌러왔던 증오가 표출된다. 그녀가 떠나보낸 것은 단순한 부모가 아니라 자신을 있게 한 존재이자 자식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랐던 또 하나의 자신이였을 것이다.

아마 그녀에게 가장 가슴아픈 이별은 제자 파비앵과의 사상적 단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탈리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시위에 침묵을 유지하고자 했고 실제로 그 생각에 충실했다. 그녀가 어쩌면 자신의 아들보다 더 사랑했다고도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서적, 사상적 교감을 나눴던 파비앵과의 사제지간에 미세한 금이 그어져 나간 이유는 어쩌면 시간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그녀를 나이 들게 했고 그녀를 변화시켰다. 시간이 파비앵을 변화하게 만들었고 그 둘 사이의 균열을 만들었다.

사상적으로 묶여있었던 둘 사이의 풀려버린 끈은 누가 먼저 놓친 것이라고 할 것 없이 자연스레 느슨해졌고 그렇게 나탈리는 많은 것들과의 안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떠나보냄과 동시에 그녀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자신의 변화한 모습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 지에 직면하게 된다. 모든 것이 희미해져가고 암흑뿐인 그 때,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요소를 얻기 위해서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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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골목 어귀마다 발견 되는 희망의 동아줄과 그 길가에서 마주치게 되는 인연들, 지나가는 관계들을 통해 행복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우리 주변에 있지만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공기와도 같은 행복이라는 요소는 우리가 늘 들이마시는 숨으로, 온몸에 짜릿한 쾌감을 주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떠나보내야 할 것을 직시할 때. 또 다가오는 것에 대해 수긍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하게 된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관계 속에 둘러싸여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선생님으로, 누군가의 엄마 또는 자식으로 남기보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앞길을 향해 나아가는, 또 그 앞길을 규정되지 않는 희망으로 채우는 홀로 걷는 인격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삶의 마지막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 시간들을 담담히 마주하는 것, 또 그렇게 웃음지어보이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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