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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에 대해 <컨택트>

by 영화요원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뛴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심장이 쿵쿵대는 걸 오랜만에 느낀 영화다. sf 영화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정말 인문학적이고 사회적인 영화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앞으로의 과거와 미래를 명확히 보여준다. 외계인과의 만남, 교신을 통해 인간이 가지게 되는 사회적이면서도 또는 개인적인 변화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말 신선한 영화다.


이 영화의 중점적 키워드는 언어, 관계, 마지막으로 삶이다. sf 영화의 탈을 쓴 이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영화는 언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언어는 인류의 기록과 동시에 미래에 발견하게 될 과거다. 즉 미래에도 과거에도 진행되는 유일한 매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언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의적여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망치를 쥐여주면 모든 것이 내려쳐 박아버릴 못처럼 보이는 것과 같이 누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결국 주인공 루이스 박사는 그런 중의적이고 자의적인 언어를 통한 대화가 가져올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직접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그녀는 그들의 언어에서 살아가보게 된다.


두 번째는 관계이다. 12개의 ufo가 각 나라에 나타나고 각 나라들은 저들만의 방법으로 외계인과의 교신을 하려고 애쓴다. 루이스가 있는 미국에서도 언어학자, 물리학자들을 모아 그들의 언어를 해독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간의 소통이다. 물론 중간에 삐긋하기도 하지만 결국 국가 간의 정보교류와 소통을 통해 그들은 외계의 언어를 배울 수 있고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12개의 다른 팀 하나의 팀이 되어 그들과의 교신을 이루고 위대한 업적을 세우는 것이다. 계속해서 각기 다른 나라들의 뉴스 영상과 시위 현장을 담아내면서 결국에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소통이고 언어를 통한 고차원적이고 지적인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은 삶이다. 이 영화가 신선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삶을 생각했을 때,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생각은 바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현재의 노력일 것이다. 미래를 바꾸려는 노력하고 미래를 보면서 나의 운명을 개척한다. 이 영화는 반대다. 미래에 대한 기억이라는 모순된 표현으로, 그 기억으로 현재에 해야 할 일들을 해낸다. 또한 루이스가 줄곧 아이를 잃은 엄마라고 생각했을 관객에게 아주 크게 한방을 날린다. 앞으로 읽나 거꾸로 읽나 같은 소리를 내는 이름을 가진 한나가 자신이 낳게 될 아이고 병으로 인해 죽을 아이임을 알고도 그녀는 아이를 낳고 자신의 남편이 어떤한 이유로 떠나는지도 알면서도 그 이유를 만들어 낸다. 루이스가 본 미래는 그녀가 바꿔야 할 미래가 아닌 것이다. 그 미래조차 그녀의 삶이고 그녀가 감수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그녀가 살아가고 기억하는 그녀의 삶은 더 이상 시작과 끝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녀에게서 남편이의 마지막이든 딸아이의 마지막이든 그녀의 한 구석에 언제나 살아있고 기억되고 그리워하게 될 테니.


컨택트라는 제목보다 arrival 이 더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서 제목이 바뀐 이유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없으나 다른 나라들이 '메시지'라는 식의 이름으로 변경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컨텍트라는 연결의 의미보다는 루이스가 도달했고 인류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과 더 잘 들어맞는다. 물론 이 영화에서 외계와의 접촉, 연결을 통해 많은 점들이 부각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 음악적인 장치가 영화에 몰입을 하는 데에 참 훌륭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웅장하지만 단조롭고 또 복잡한 것 같은 사운드가 관객을 루이스 같은 언어학자로 만들었다. 두 번째(확실하지 않음) 탐사 때 처음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이 나오는데 사실상 가사 없이 소리만 나는 음악이었다. 듣는 순간 해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고 이후에 자동차 배기음 같은 것들도 모두 신호처럼 들리게 된다. 인터스텔라와 같이 음악도 대사도 없는 순간들이 한 세 번 정도 나오는데 그 침묵도 너무나도 좋았다. 침묵은 소리가 없는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주변소리에 더 귀기울기에 되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의 섬세한 연출이 만든 신선한 영화를 접한 것 같아서 또 글을 나눌 수 있어서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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