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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재심>

by 영화요원

브런치의 첫 번째 무비 패스로 정우, 강하늘, 김해숙 주연의 <재심>을 관람했다. 법정 관련 영화는 배우 송강호 씨의 <변호인> 이후 오랜만이었다. <변호인>은 변호사의 직업윤리와 동시에 그 당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잘 그려냈었던 작품이고 <재심>은 같은 변호사가 등장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전에 <굿 와이프>라는 법정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던 사람으로서 변호사들의 이익 추구와 의뢰인의 도덕적 문제에 대해 좀 들은 게 몇 있었다. 이번에 관람한 <재심>은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운전기사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변호사들이 가져야 할 직업윤리적 문제와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경찰과 검찰의 허점을 찌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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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한방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 (정우)는 지인의 로펌에 들어가기 위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혐의로 교도소에 있다가 나온 청년을 돕게 된다. 이 청년은 당시 살해된 택시기사의 유가족에게 준 보험금을 갚아야 했고 그 돈은 10년 이후에 갚지도 못할 만큼 커졌다. 로펌의 이미지와 자신의 취업을 위해 이 청년을 도와야 했던 정우는 청년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이 청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청년에게 필요한 건 돈도 아니고 진짜 범인은 더더욱 아니며 그저 미안하다는 말과 살인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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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건 정우의 입체적인 캐릭터다. 돈을 바라던 눈과 마음이 청년의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통해 진실을 원하는 눈으로 바뀐다. 사실 정우의 친근한 페이스가 돈돈 거리는 캐릭터와 잘 안 어울렸던 게 사실이다. 물론 누구나 돈을 원하지만 변호사로서 의로인보다 자신의 통장을 걱정하는 변호사 역할을 소화할만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치 있는 말들과 찌질하면서도 허세 가득한 연기들을 잘 소화해주어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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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인상적인 캐릭터는 강하늘이 아닌 이동휘다. 사실 처음부터 정우의 의뢰인을 도와줄 마음이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에 의뢰인에게 칼을 맞아본 적 있는 이동휘는 전적으로 의뢰인을 법적으로 구제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의뢰인을 그저 돈줄이라고 생각하고 범죄자던 법적으로 문제 있는 재벌이건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정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가 아니라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주어진 돈에 맞는 일을 했을 뿐이고 법을 만지는 사람으로서 법적으로 문제없는 결과물을 만드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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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이 연기한 청년은 사실 진범을 찾아내고 비리 형사들을 직접 찾아가 주먹을 휘두르는 게 다소 오버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미워보아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무도 없는 낭떵러지 끝에 얼마나 절박하고 힘들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청년도 변호사를 만나기 전까지 뭘 해야 하는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거라 예상된다. 앞서 말했듯이 청년이 원하는 것은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상이 아니고 어머니의 건강도 아니다. 그저 미안했다는 말, 잘못했다는 말, 너는 잘못이 없다는 말 한마디였으리라 예상된다.


영화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책임지겠다는 의미를 지녔지만 개인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항상 책임을 진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책임지지 못할 때 미안하다는 말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속에 나오는 사과는 청년의 수많은 아픔에 대해 책임지지 못한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교도소에서 보낸 그가 받을 수 있는 것들은 어떤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을 것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을 지지 못해서, 널 그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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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함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재심은 청년의 처음이자 마지막 간절하고도 길고 긴 결백이었을 것이며 변호사에겐 의뢰인 이전의 인간이 법치주의 사회에서 받은 불합리성을 직면으로 마주하게 된 사건이다. 실화라서 더욱 마음 아픈 이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 <재심>은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관한 영화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청년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 약촌오거리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기 전 변호사에게 자료를 건네는 말 한마디가 있다. 원래는 "줘봐" "뭘" "아 사건 일지"였다. 그러나 사실 10년이나 교도소에서 지내고 돌아와서는 술만 퍼먹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사건 일지'라는 단어를 내뱉는다는 건 쉽지 않다. 내 예상은 "그 종이 쪼가리"였다.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해 트집은 잡는다는 건 이 영화가 꽤 괜찮은 영화이고 좀 더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썼으면 하는 관객으로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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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사랑해'라는 어려운 말보다 더 하기 힘든 말이 '미안해'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자존심이 걸린 일이고 영화에 나온 것처럼 책임에 관한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이게 미안한 일인가?', '난 아무 잘못 없어'등의 자기 합리화를 시키기도 하고 정말 미안함에도 불구하고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지 말지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상대방은 나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 그저 그들이 원한 건 진심 어린 사과와 내 잘못에 대한 인식, 뉘우침이었다. 그렇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툭 던져 상황을 종결시키라는 것이 아님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알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심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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