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

| 도착, 그전에 준비

by 영화요원

| 도착, 그전에 준비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2018년 1월 22일이 왔고, 아침 9시에 난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아빠와 같이 올랐다. 전날 편안한 숙면을 위한 나의 낮은 배게를 챙기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캐나다의 큰 도시 토론토로 도착해 약 7일을 보낸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먼저 워홀을 경험한 지에의 빼곡한 카톡을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내 일상이 될 일들에 간질간질해가며 버스에서 잠이 들었고 별무리 없이 버스는 공항에 왔다.


내가 출국하자마자 한국이 엄청추워졌다.

졸업준비와 어학원을 다니느라 출국 일주일 전부터 부리나케 보험 들고, 유심과 캐리어를 샀다. 28인치 캐리어와 24인치 캐리어에 겨울옷들과 생활용품을 담아내니 미니멀 라이프와 거리가 먼 23킬로 22.5킬로가 나왔다. 급히 산 백팩에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담고 기내에서 사용할 물건들을 넣다 보니 저 가방 또한 무거워졌다.

정리하자면 내가 캐나다에 가기 전에 끝내야 하는 준비들은 크게 이 정도였다.


1. 졸업 - 4년 힘들게 다니고 지긋지긋한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2. 돈 - 약 1년 동안 750을 모아 200으로 놀고 250으로 준비(신체검사, 비자, 항공권, 여러 소비 등) 300 출국

3. 영어 -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종로에 EDB라는 어학원을 약 2달 동안 다녔다 결론적으로 좋았다.

4. 마음가짐 - 이게 가장 중요한 듯싶은데 잘 안된다. 낯선 곳에선 쉽게 조급해지기도 하고 덜컥 겁이 나기 쉽다.


1. 졸업

사실 졸업을 하고 워홀을 갈 생각은 없었다. 친한 친구 지에가 2017년 3월에 워홀을 먼저 떠나고 나도 그 해 8월 방학에 휴학을 하고 토론토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주변 사람들의 교환학생 경험이나 워홀 경험들을 들으니 '학교를 이유로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졸업생 반열에 올랐고 헬게이트가 오픈됐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졸업유예로 학교에 발 담고 있기 싫었던 나는 곧이어 졸업을 결심한 걸 후회했다.


문화콘텐츠와 철학을 복수전공으로 했다.

졸업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4년 동안 수업을 듣고, 꽤 괜찮은 성적을 받으면서, 적당히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면 저절로 나오는 게 졸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복수전공자에게는 두 개의 논문이 기다리고 있었고 토익을 한 번도 제 돈 주고 본 적 없는 나는 토익이나 토스로 점수를 내야 했고, 컴퓨터 관련 전산자격증을 두 개나 따야 했다. 근데 이걸 한 달 안에 끝내야 하는 게 문제였다.


가장 먼저 논문을 하나 썼다. 그것도 제출 바로 직전에 밤을 새 가며 20시간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약 20장을 채웠다. 물론 미리 준비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백번 잘못했다. 그런데 또 사람이 막상 일에 직면하니까 초인적인 힘이 나와서 짧은 시간 동안 글을 마무리하고 기념으로 술을 먹고 전사했다. 약간의 성취감과 해냈다는 자신감이 넘쳐서 또 다른 논문을 미루기 시작했다. 사실 핑계라면 3주 동안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했었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시즌이어서 정신이 없기도 했다.


사실 논문은 내 욕심이었다. 굳이 논문을 쓰지 않고 예전에 작성한 콘텐츠 문서를 보완해서 제출해도 됐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논문을 쓰겠다고 책을 빌리고 하루 종일 논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논문 이외의 다른 글을 쓸 수 없어서 '브런치 무비 패스'도 한동안 참석하지 못했다. 내가 그때 쓴 글이라곤 한글 프로그램에 서론, 본론, 결론과 각주, 참 고문 헌 뿐이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마무리짓고 싶은 마음에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미련은 없다.


실제 논문제목은 변경되었다.

토스를 봤다. 핑계를 대자면 아침이라 입이 안 풀렸고... 처음 보는 시험이라 긴장했고...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 소리가 잘 들려서 당황했다... 그저 그런 점수를 받았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은 MOS라고 마이크로 소프트 오피스 스페셜리스트를 봤다. 파워포인트와 워드를 봤는데, 확실히 대학 다니면서 발표 준비로 피피티 만져본 사람이라면 차트 빼고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12월 23일 YBM에서 파워포인트를 보고 936점을 받았다. 1000점 만점이고 커트라인은 700점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24일은 위에서 말했던 토스를 봤고 1월 4일에 워드를 보고 간신히 700점을 넘기고 논문 졸업요건 제출 마감일인 다음날에 학교에 가서 모든 걸 청산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사진은 실물과 매우 다릅니다.

사실 졸업한 이야기를 이렇게 주야장천 쓸 이유는 없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고 우울감에 휩싸여 운날도 수도 없이 많아서 아직도 그 시간이 생생하다. 내 생애 첫 번째 암울한 시기가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된다.


2. 돈

그렇다. 워홀을 가려면, 가서 돈을 벌려면 모순적이게도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알바를 했다. 워홀 계획은 2학년 말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 건 3학년 시작하면서였다. 그 당시 학교에서 온라인 홍보단이라는 일을 했었는데 시급이 9500원이었다. 당시 최저가 6470원 정도 됐던 것 같은에 정말 돈을 많이 주는 알바였다. 그렇게 약 12개월 동안을 꿀알바로 돈을 저축도 하면서 펑펑 쓰기도 하면서 놀았다. 결국 한 750만 원 정도 모았고 당시 알바를 하니까 부모님께 생활비를 15만 원 정도 받았어서 알바를 그만둘 수 없었다. 그렇게 학교에서 또 다른 근로를 했고 2017년 6월부터 일을 안 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 4학년이 되어서 방학에 두 번이나 해외여행을 갔으니 당연히 지출이 많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정신 못 차리고 마음 맞는 친구와 이틀에 한 번꼴로 술잔을 기울였다. 돈이 많이 나갔다.


비자 발급비 24만 원

신체검사비 18만 원 (흉부 엑스레이를 돈 주고 다시 찍었다)

항공권 60만 원 (키세스에서 국제학생증으로 구입함)

보험비 30만 원

캐리어 20만 원 (28인치, 24인치)

자격증 시험 응시료 24만 원 (하나에 79000원 *3개)

어학원 비 120만 원


워홀 준비를 하니까 은근 돈이 많이 나갔다. 어학원 비가 가장 컸다. 해외 어학원은 왜 그리 비싼지... 해외로 유학이나 영어 공부하는 애들은 다 부자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출국 준비를 하면서 환전도 했다.

위 환율은 써니뱅크의 우대율입니다.

환전 약 300만 원 캐나다 달러 3240달러


환전하려고 한 보름 동안 계속해서 캐나다 환율을 검색했고 다행히 내가 환전을 노린 시기가 거의 최저를 찍고 있어서 별 무리 없이 환전할 수 있었다. 환전은 신한은행 써니 뱅크 어플로 한도 100만 원에 맞춰서 3번 했고 돈 찾는 날짜를 같게 해서 한 번에 받았다.


학원을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학원비를 내려고 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3주 정도 뉴발란스에서 하루에 11시간을 서서 알바를 했다. 딱 학원비만 벌고 그만두고 지병을 얻는 건가 했는데 관두니까 말끔하게 나았다.


3. 영어

영어공부에 대해서는 첫째, 해외 가서 익혀라. 둘째,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하고 가라.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5월에 뉴질랜드로 워홀을 가는 친구와 함께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하는 심정으로 추천받은 종로 EDB어학원에 찾아갔다. 허름한 외관에 한번 놀라고, 운영하는 건가 싶은 건물 분위기에 마음 졸이며 들어선 상담실엔 조교 분과 원장님이 있었다. 1월에 워홀을 간다고 말하자(당시 11월 중순) 놀라시면서 '다니셔야겠는데요~'라고 하셨고 그 길로 친구와 함께 2주 동안 직장인반을 다니고 12월부터 종일반에 나가게 되었다.


직장인반 수업은 7시에 시작해서 1시간 동안 원어민 선생님과 책에 있는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프리토킹을 하고 8시부터 원장 선생님의 문법과 시트콤으로 배우는 영어강의를 들었다. 솔직히 다들 하루의 일과를 어느 정도 끝낸 분들 이어서 의욕이 넘치는 모습은 없었고 조용한 수업이었다. 12월부터 오후 12시부터 수업을 듣는 종일반에 가게 됐는데 정반대 분위기였다. 우선 연령층이 비슷하기도 했고 다들 영어로 대화하고 말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12시부터 1시까지 관용어와 표현 수업을 듣고 1시부터 2시까지 조원들과 스터디를 하거나 숙제 검사를 받는다. 2시부터 3시까지 원어민 선생님과 프리토킹 및 에세이 첨삭을 받고 3시부터 4시까지 로테이션을 돌면서 사람들과 프리토킹을 하면 모든 수업이 끝이 났다.


결론적으로 어학원에 다니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어 하는 데에 부끄러움도 줄어들고 다들 의지와 목표가 확실하니 서로 모르는 것에 대해 보완해주고 하루 종일 영어를 쓰니까 혀가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친구들이랑 술 먹기 좋아하는 나와 내 친구는 학원 사람들과 종종 술을 먹기도 하면서 친분을 쌓고 꼭 캐나다에서 만나자고 약속도 했다. 아직 제대로 영어를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실생활에 유용한 표현들을 많이 배우기도 하고 잘못된 습관이나 버릇들을 지적해주니까 영어로 말할 때 더 신경 쓰이게 됐다.


학원 사람들이랑 정도 많이 들고 캐나다 간다고 누군가 울어주기도 하니까 기분도 괜스레 좋았고 너무 고마웠다. 그러니까 2017년 12월은 정말 내면적으로 우울했으나 가장 활기차고 즐기운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원장 선생님 벤, 조교 언니 앨리스, 내 짝꿍 데이, 울어준 제니, 뉴질랜드로 간 리나, 어른스러운 캐롤라인, 재밌는 싸무, 항상 고마운 라이언까지 너무 행복했고 EDB! 고마웠다!


잉글리시 닥터 벤EDB


4. 마음가짐

출국 한 달 전에는 마냥 외국에서 사는 내 모습이 언제나 흥겹고 일상에 재밌는 일이 매일 일어날 거란 크나큰 착각에 빠져서 한 달 전부터 임시숙소를 알아보고, 네이버 카페에 있는 수많은 후기들을 읽어대면서 워홀을 환상으로 집어넣었는데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워졌다. 막상 떠나라고 하니 가기 싫고 좋은 인연, 좋은 장소들을 두고 비행기로 몸을 싣으라고 하니 무서웠다. 한국이 갑자기 좋아졌다. 근데 또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에서 할 게 없었기 때문에 가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소망하고 소망했던 정신적 휴식을 취해야 했다.


워홀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목표가 있다. 누구는 영어, 누구는 돈, 누구는 경험. 나는 그래서 내 행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몸은 피곤하겠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내자고 마음을 먹고 (완벽히 그럴 수는 없겠으나) 돈이나 영어, 인간관계에 그렇게 매달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좋다는 아빠의 말이 더 나를 잘하고 싶게 만들었다. 난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영화를 보고 간간히 글을 쓰며 내 행복과 휴식에 집중하기로 정했다. 그랬으면 좋겠다.

응...그래....

첫 번째부터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언제나 다른 길을 찾아가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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