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위하여 수단이 정당화되느냐, 올바른 방법으로 이룩한 목적이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는 인류가 오랫동안 고뇌해온 논제이다. <미스슬로운>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비스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개인의 신념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화두로 남아있는 수정헌법 2조, 총기 규제에 대한 법안 제정을 로비스트라는 생소한 인물들이 다룬 작품이다.
악명 높은 여성 로비스트 '리즈'가 총기 구입에서의 자유로운 규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와 정면으로 맞붙게 되는데, 그녀의 행동에는 함부로 접근 불가능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라는 것이 바탕이 된다. 이 영화가 시작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노출시킨 키워드는 바로 '신념'이다. 신념과 승리, 신념에 대한 믿음과 도덕적, 윤리적 허용범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리즈가 승리하기 위해서 썼던 방법들에는 도덕적 결함이 있었고 상대방의 의사와 인권을 존중해주지 않을뿐더러 위험한 순간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리즈를 믿었던 팀원 에즈미가 팀장인 리즈의 비윤리적 행동들과 사고방식에 대해 상처받았을 때 에즈미는 리즈를 향해 상대방을 존중해 주지 못할 때 선을 넘게 된다고 말하지만 리즈의 머릿속엔 온통 신념뿐이었다. 여기서 보여지는 신념은 가치관과 달라서 상대방을 존중해 주지 못한다. 한번 뿌리박힌 신념은 다른 의견들을 차단하고 개인의 사유를 방해하며 쉽게 변화를 꿈꾸지 못하게 한다. 아마 리즈도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기에 에즈미의 상처도 이후 받게 될 위험한 상황도 그저 신념을 향한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신념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비영리단체를 고객으로 하는 회사가 성공을 위해서 평판 좋지 않은 로비스트를 스카우트한다는 점. 이기기 위해 팀을 구성했지만 사실 이길 가능성에 대해 회사 스스로 자신이 없는 것. 여성들을 무기로 삼고자 했던 전 회사의 전략을 차용해 리즈(여성) 스스로가 무기가 된 것. 흑인 여성을 테러 사건의 피해자로 설정하고 이후 이 총기 규제에 대한 법안의 승리를 여성이 거머쥐게 한 것 등 모순적인 것들을 대치하여 간접적으로 여성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의 사람들이 판을 뒤집는 전개로 더욱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반부에는 다소 전문적이고 은어적인 표현들과 대사들이 스크린에 두 줄을 꽉 채우고 있어서 자막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나 목소리에 전념할 수 없었다. 후반부에 가서 필요한 대사이긴 했지만 그 정도의 정신 빼놓는 대사들을 나열했어야만 했는지, 그 정도의 가치 있는 대사들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반면 후반부에는 위트 있는 대사들이 큰 활약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청문회가 어떻게 흘러갈지 안 리즈는 온갖 감정적 증인 진술에도 let it play라는 표현을 쓰면서 손바닥 안임을 표현하기도 하고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기기 힘들다는 표현을 사용해 'earthquake'라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청문회 주최측들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청문회에 증인 심문과 과거를 오가며 불필요한 대사들을 최소화 시키고 질문에 대한 배우들의 감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구성을 만들어서 두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했고 이미 큰 그림을 그린 리즈의 이해불가한 행동들과 팀원들을 믿지 못했던 이유도 후반부에 큰 반전을 주면서 막이 내린다. 리즈는 스스로 무기가 되고자 했고, 개인플레이를 한 것도 그녀의 신념에 따라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서 이 영화가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선택한 길에 대한 그만큼의 보상이라던가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고는 볼 수 없는 리즈의 모습이 그러했다.(이마저도 그녀의 신념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정치적인 정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과 정치제도가 달라서 영화 속 의원 한 명 한 명의 중요성에 대해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낯선 총기 규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정치적인 것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절대적으로 손댈 수 없는 헌법에 신념과 상식을 더하고자 했던 이 영화의 싸움은 여성의 능력이 어디까지 인기를 보여줌과 동시에 신념을 향한 집착과 목적을 향한 수단의 불합리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념이 개인의 경험의 바탕이 아니라는 대사를 통해서 리즈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신념 하나가 불가능했던 일을 해내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비윤리적인 행동들을 수반한다는 내용들을 통해 시사하는 바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나에겐 인터스텔라의 머피로 마션의 대장으로 다소 큰 비중이 없었던 제시카 차스테인이 수많은 대사들을 소화하고 매력적인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이 영화의 '미스'라는 여성이라는 설정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연기에 비해 치밀하지 못했던 부분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번 만큼은 제시카 차스테인이 큰 무기로서 제 역할을 다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