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음아픈 당신을 위해.
<매그놀리아>

by 영화요원

누구나 현실의 어려움에 처하다 보면 지난 세월들을 돌아보면서 자책하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취업이 안 되는 건 작년에 캐나다에 갔다 왔기 때문인가 봐. 좋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 보니 지난날동안 난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 인적이 없었던 거야.' 하며 후회하고 절망한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이러한 불운한 상황들이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빚어진 결과물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폴 토마스 앤더슨이 29세에 제작해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매그놀리아>는 서로 다른 9명의 인물들을 엮어가면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경계에 대해 여러 플롯을 교차하면서 신선한 시선으로 설명해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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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얼(제이슨 로바즈)은 오랜 투병 끝에 죽음과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간병인 필(필립 세이프 호프만)에게 자신의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여성을 꼬시는 방법에 대한 책과 강연으로 하면서 유명해진 프랭크(톰 크루즈)는 어린 시절 암에 걸린 엄마를 두고 떠난 아빠 얼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고 간병인 필의 연락을 받아 그의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한편 고통스러워하는 얼을 보는 그의 아내 린다(줄리안 무어)는 그동안 바람을 폈던 것을 자책하고 이제야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는다.


또 한 명의 암 환자 지미(필립 베이커 홀)는 아이들과 어른들과의 퀴즈대결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딸과 절연하고 아내와 단둘이 살아가다 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다. 격한 거부반응을 일으킨 딸 클라우디아(멜로라 월터스)와 지미가 소란을 피우고 떠나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짐(존 C 라일리)이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한편 퀴즈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한 때 어린 스타였던 도니(윌리암 H 머시)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아 별 볼 일 없는 생활을 이어오다 직장에서 해고되자 돈을 훔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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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짜리 절망의 연속들을 보고 있으면 감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구간이 생긴다. 아마 이들의 사연을 세밀히 알 수 없다는 것도 있고 인물과의 갈등 장면들과 이해할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가다 보면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신이 안 선다. 그렇게 흘러가다 마지막 즈음에 개구리가 쏟아지는 영화적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띵 하고 멈춰 버릴 것 같기도 하다. 수미상관을 이루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면서 이 작품에 대해 쭉 정리하면 좀 더 이 영화가 현실로 다가온다.


주인공들의 사건들을 영화 속 흐름과 관계없이 이야기해도 무방한데 이는 여러 플롯을 겹쳐 보여주기 때문과 동시에 이들의 삶이 무언가에 의해 엮이고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할 써 내려갈 이야기는 과연 현재 이들을 있게 한 과거의 사건과 선택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아님 단순한 우연이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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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너무나 우연적으로 인과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강렬한 이야기는 건물 꼭대기에서 자살시도를 한 청소년이 떨어지는 와중에 창밖으로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다. 그 소년은 총에 맞지 않았으면 1층 해먹에 걸려 죽지 않았을 운명이 었지만 우연적으로 3층 아래의 사람이 쏜 총에 마자아 총살을 당한다. 또 우연적으로 여기서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 소년의 엄마다.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부모님의 계속되는 싸움에 본인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낀 소년은 부모가 종종 장전이 되지 않은 엽총으로 서로를 위협하는 걸 보고 언젠가 그들이 서로를 진짜 죽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전을 한다. 그 후 옥상에 올라가 유서를 남기고 아래로 뛰어든다. 당시 말싸움을 하던 부모들은 늘 그랬다시피 총으로 서로를 겨누다 총을 진짜로 발사하게 되고 그 총에 떨어지던 아들이 맞아 사망하는 것이다. 그의 부모 중 한 명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죄로, 또 죽은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공모한 죄로 경찰서에 가게 된다. 아물론 그 소년은 이미 죽었지만.


이렇듯 우리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에 어떠한 인과관계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를 싱크로니시티라고 한다. 이는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가지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연속적을 발행했고 이 둘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없지만 실제로는 우연이 아닌 비인과적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를 인간의 마음과 현실세계 사이에 싱크로니시티가 발생하면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다. (나무 위키 출처)


그러니까 이 소년이 총에 맞아 죽음과 부모들의 싸움이 철저하게 개별의 사건이지만 우연의 일치가 아닌 어떠한 법칙에 의해 결말을 맞았다는 이야기다. 감독을 이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영화 속에 9명의 각기 다른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더 자세히 이 현상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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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이야기할 사람들은 퀴즈쇼 'What do kids know?'에 어린 시절 출연해 이제는 성인이 된 도니, 30년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유명인 지미, 그의 딸 클라우디아, 지금 현재 이 퀴즈쇼에 출연 중인 소년 스탠리(제레미 블랙맨) 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라우디아에게 반한 경찰관 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이 프로그램에 진행을 맡은 지미는 암에 걸리면서 오랜 시간 동안 사이가 멀어져 연락조차 하지 않는 딸을 찾아간다. 그러나 딸은 몸서리를 치며 대화조차 거부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가 어렸을 때 지미에게 성적으로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녀는 현재 마약중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지미는 과거의 일을 추궁하는 아내에게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대답을 회피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망가진 삶이 아버지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면적으로 볼 땐 그렇다고 할 수 있으나 영화에서 던지는 주제들을 생각해보면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라우디아가 짐을 만나서 데이트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짐에게 솔직할 것을 요구한다. 누구한테도 말 못 한 것들을 털어놓고 감정에 솔직해지자고. 그렇다면 그녀의 솔직한 모습이 아빠를 원망하다 만신창이가 된 삶일까 아님 오히려 마약중독과 실패한 인생에 대한 원인을 어디서든 찾으려 하는 모습인 걸까.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도니는 한 때 퀴즈쇼로 잘 나갔지만 이제는 평범한 전자기기 상점에 직원이고 이제는 그마저 해고돼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는 자신의 현실을 어린 시절 자신이 벌었던 수많은 돈을 낭비하고 도니를 무시했던 부모 때문이라고 하면서 슬퍼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서 필요 없는 교정기까지 했던 순수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또 잠깐의 잘못된 선택을 하고 다시 되돌려놓는 모습을 보면 그는 겉모습만 어른이지 한없이 작고 여린 아이 같다. 그의 성격이 어린 시절의 명성과 부모로부터 초래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우연히 퀴즈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어서, 우연히 상금을 탔고 부모가 그 돈을 썼을 수도 있다. 그가 가난하고 멍청했어도 그가 현재 이런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도니의 어린 시절을 꼭 닮은 소년 스탠리는 좋지 못한 가정에서 홀로 영리하게 자라 퀴즈쇼 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우기 직전이었다. 스탠리가 질문에 답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계속 어른들이 하는 말만 들어오다가 바지에 오줌을 싸는 민망한 경험을 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 영리하단 이유로 학교에서 수업도 안 듣고 책만 보게 하고 큰 상금이 걸려있으니 하기 싫은 일에도 억지로 부추기던 아빠를 보면 도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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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무리들은 얼네 가족이다. 얼은 아내와 아들 잭이 있었지만 아내가 암에 걸리자 처자식을 버린다. 이후 사업에 크게 성공해 자신보다 훨씬 젊은 아내를 새로 맞이하고 살아가다 암에 걸려 진통제가 없으면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얼을 간병하는 필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얼을 그의 본분 이상으로 보살핀다. 그러다 얼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그를 위해서 아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어린 잭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분노로 이름과 성을 모두 외가 쪽으로 바꾸고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여성을 제어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썼고 크게 히트를 치면서 강연까지 다니고 전화서비스까지 뻗어나간다. 픽업아티스트로 스타 반열에 온 그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와 숨겨왔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분노를 느낀 그는 곧 필의 전화를 받고 얼을 만나러 가게 된다. 그토록 원망하던 아빠를 만나서 아무리 욕을 해대도 힘없이 죽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영화 속 여성을 장악하려는 프랭크(잭)의 모습이 어디서 왔는지 의문이다. 그의 엄마는 암으로 죽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고 거짓말을 치는 것 보면 그에게 여성, 엄마가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부재로 인한 슬픔이 분노로 변화되면서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여성이라는 계층에서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반면 얼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더 큰 마음의 아픔을 느낀 아내 린다는 의사를 찾아가 그의 고통을 없애주고 싶다고 호소하면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모르핀, 진통제들을 처방받는다. 변호사에게 찾아가 얼의 유언장에서 자신을 상속에서 제외시켜달라고 말하며 그녀는 그녀 스스로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처방받은 약 중 그에게 꼭 필요한 약 한 가지 만을 두고 그녀는 집을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곳에 주차를 하고 흐느끼면서 나머지 약을 한꺼번에 삼켜버린다. 약을 먹었던 존재가 린다 말고 하나 더 있는데 그건 필이 실수로 떨어뜨린 약들을 주워먹은 개다. 마지막에 알다시피 린다는 그 많은 약을 먹었음에도 죽지 않았지만 개는 얼과 함께 죽게 된다. 린다의 극적인 회생이 기적이라고하긴 뭐하고 개의 죽음이 필연이라긴에 좀 부족한 이 개별적 상황들을 보면 또 우연의 일치인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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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절망의 사건들에 마지막에는 갑자기 개구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자살 시도를 했던 지미가 머리에 겨누고 있던 총에 개구리가 떨어져 빗나가게 되고 도니는 개구리를 맞아 이가 부러지면서 짐의 도움을 받아 훔쳤던 돈을 제자리도 돌려놓게 된다. 다 죽어가던 얼도 개구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조금 차려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약중독에 빠진 클라우디아도 개 구리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갑자기 찾아온 엄마를 부둥켜안으며 극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던 스탠리도 창밖에 떨어지는 수많은 개구리를 보면서 미소를 짓게 된다.


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일인 줄 알았던 그들의 삶의 뜬금없이 개구리가 떨어지면서 다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스탠리가 자는 아빠를 깨워 '나에게 좀 더 잘해줘야 해요'라고 말하면서 도니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을 스스로에게 제시한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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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작은 우연들이 겹쳐 만들어낸 필연과도 같은 이 이야기들은 '우리는 과거를 잊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과거에 내가 만들었던 모든 선택들과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는 우리가 다 기억할 순 없지만 그들은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기에 계속해서 나를 만들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한 순간들이 비록 우연일지라도 또 그게 어쩔 수 없는 필연일지라도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하더라고 개구리가 떨어질 만큼 황당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그 새로운 것들로 다시 삶을 되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잊혀질 과거가 될지라도!





이 글을 쓰면서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관계도를 손으로 직접 그리면서까지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 며칠 전에 본 영화지만 거의 모든 장면들이 생생히 기억나서 적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처음으로 이런 사족을 붙이네요. 가볍게 읽어주시고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고 제 글이 좋은 기억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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