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물음
문명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우리는 피를 흘려야 하는가?” “왜 인간이 인간을 제물로 삼아야 하는가?” 이 질문이 없었다면, ‘혈(血)’이라는 글자는 단지 생물학적 현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제단 위에서, 인간은 피를 통해 신을 이해하려 했고, 그 피를 통해 질서를 세우려 했다.
‘민(民)’이라는 글자 역시 질문을 품고 있다. “백성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단지 지배의 대상인가, 아니면 주체인가?” 눈을 찔린 포로의 형상에서 시작된 이 글자는, 시간이 흐르며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질문 없이는 불가능했다.
유교는 그런 질문에서 태어났다. “무력이 아닌 덕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가?” “신분이 아닌 인격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가?” 공자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문명을 흔들었다. 유교는 혁신이었다. 그것은 피로 물든 문명에 덕이라는 물길을 낸 사상이었다.
그러나 혁신은 영원하지 않다. 질문이 멈추면, 사상은 규범이 되고, 규범은 관습이 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자유란 무엇인가?” “다수의 뜻이 항상 옳은가?” 이 질문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다수결의 이름으로 소수가 침묵당하고, 자유의 이름으로 공동체가 파괴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런 질문을 다시 던졌다. “교회는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가?” “신앙은 권위가 아니라 공감이 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교회를 바꾸었고, 신앙을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가?” “기술과 성장 너머에, 인간의 존엄을 묻고 있는가?” “다음 세대를 위한 정치, 교육, 문화는 어떤 질문에서 시작되는가?”
질문 없는 사회는 정체된다. 질문 없는 문명은 반복된다. 질문 없는 인간은 침묵한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질문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문명을 움직인다. 질문은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이 사상을 낳는다. 질문은 위험하지만, 그 위험이 혁신을 만든다.
피로 쓰인 문명은 질문으로 다시 써야 한다. 대한민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물음이야말로, 다음 시대의 물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