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많은 나라

우리는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가?!

by 안개꽃 눈송이

대한민국은 지금, 화가 많은 나라다. 젊은이들도, 노인들도, 기자들도, 정치인들도— 모두가 무언가에 분노하고 있다.

그 분노는 때로는 정의를 향한 열망이고, 때로는 이해받지 못한 감정의 표출이다. 하지만 그 분노가 공정하지 않을 때, 그것은 또 다른 불균형을 낳는다.

조국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낸다. 그가 했던 일, 그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관행들— 그것은 분명히 문제였다. 그 자신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수사 방식은 너무 잔혹했다. 그의 가족까지 끌어들여 마치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집단적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경원이나 한동훈 같은 인물에게는 그런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도 논란이 있었고, 그들도 의혹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한 분노는 조국에게 향했던 그것과는 온도가 다르다.

왜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기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애초에 그런 사람들이니까”라고.

하지만 그 말은 기준을 포기한 말이다. 기준이 없다면, 비판은 감정의 배설일 뿐이다.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흐리는 데 기자들의 역할도 크다. 그들은 사실을 전달하는 대신, 갈등을 키우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감정을 부추긴다.

마치 불화를 조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인 양 행동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정말 생각이 있는가?” “당신들이 던진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노인들도 분노한다. 하지만 그 분노는 서로를 향하고 있다. 이해하려는 마음은 사라지고, 이기려는 태도만 남았다.

조국을 향한 분노, 나경원을 향한 침묵, 한동훈을 향한 기대— 그 모든 감정은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기준 속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대화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경청은 약함으로 여겨지고, 공감은 시간 낭비로 치부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우리가 다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화보다 먼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해는 누구를 향하든, 공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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