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문막의 산골짜기에서 자란 아가씨는 춘향이 또래의 나이에 여주에 사는 할아버지와 혼례를 올렸다. 그 시절, 시집가기 전 쌀 한 말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쌀은 귀했고, 배부름은 꿈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여주라는 혼처 자리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자리야, 여주는 평야가 넓고 물산이 풍부하지.” 그 말에 아가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초현리로 오기 위해 강을 건넜고, 뜨락또르를 탔고, 마을 근처에서는 가마도 탔다. 가마 안에 요강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길이 멀어서였울 테고, 요강 안에는 목화씨를 넣어서 소리를 줄였다고 한다. 아무튼 외할머니가 온 경로는 새색시가 그 시절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한 셈이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에게 곳간 열쇠를 받기까지는 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열쇠는 단순한 쇠붙이가 아니었다. 그건 신뢰와 권한, 그리고 집안의 중심이 되는 자리였다.
식사 시간은 더 어려웠다. 남성들이 먼저 둘러앉아 밥을 먹고, 남은 것이 여성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밥을 남기지 않았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 일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속이 상했다. “조금은 남겨줄 줄 알았지… 그게 내 몫인 줄 분명히 알았을 텐데.”
그 원망은 밥 한 숟갈의 서러움이었고, 그 시절 여성들의 침묵 속 분노였다. 하지만 그녀는 견뎠고, 살아냈고, 결국 곳간 열쇠를 손에 쥐었다.
그 열쇠는 단지 쌀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여는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