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너머의 기억

by 안개꽃 눈송이

초현리 앞에는 남한강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곡수에서부터 흘러나오니, 사람들은 그 개울을 곡수천이라 불렀다. 그 물줄기는 마을의 숨결처럼 조용히 흘렀고, 그 위로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오래된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다리를 볼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셨다. “저놈의 다리... 일본 놈들이 마을 사람들 끌고 가서 공사시켰지. 맨손으로 돌 나르고 흙 퍼 날랐어. 시멘트를 얼마나 부어서 만들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멀쩡하잖아. 근데 요즘 다리는 비만 오면 무너져.” 그 말에는 억울함과 씁쓸함, 그리고 시대를 견뎌온 자의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다리 양쪽으로는 논둑들이 이어졌고, 마을 쪽으로는 개울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있었다. 제법 무겁고 둥글며 평평한 돌들이 개울을 가로질러 논둑으로 올라갔다. 그 길은 신작로를 따라 걷는 길보다 더 가까워 마을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징검다리를 건너 읍내로 가기도 했고, 근처 빨래터로 향하기도 했다.

빨래터에는 커다랗고 넓적한 바위가 두어 개 있었고, 그곳은 마을 아주머니들의 이바구 장소였다. 봄이면 논둑 위로 제비꽃들이 피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비누 거품이 개울물에 흘러가면, 아이들은 텀벙거리며 그 거품을 손으로 휘저으며 웃었다. 추워지면 근처 바위 위에서 햇살에 몸을 말렸다.

마을 아낙네들은 집에서 댕댕이덩굴로 만든 커다란 소쿠리에 빨랫감과 네모난 비누, 그리고 빨래방망이를 가져와 그 돌에다 빨래를 했다. 방망이 소리는 마치 삶의 리듬처럼 천천히 이어지며, 남편이나 마을사람들의 험담과 온갖 이야기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다리 위로는 소달구지가 지나가고, 가끔 청량리와 여주를 오가는 버스나 군용 차량이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 징검다리를 따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 다리를 지나 읍내 쪽으로 언덕을 오르면, 학교가 있었다. 창명여자중고등학교. 어느 날 창명종고라 바뀌더니 요즘은 경기관광고등학교로 바뀌었다. 아무튼 그 학교는 작은 이모가 하얀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웃고 떠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언덕길은 학생들의 꿈이 오르던 길이었다.

지금은 다리도, 징검다리도, 빨래터도 많이 변했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 그 모든 풍경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마을의 역사와 아픔, 삶과 희망을 함께 건너온 우리의 기억의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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