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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Jul 20. 2018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해야하는 직업이 있다. 나는 못 하는 직업이다. 소리꾼이라던가 만담가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붙임성이 좋아야 하는 사람들로, 예를 들면 미용사, 운전면허학원 강사, 교사 등이 있다. 쓰다보니 거의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다. 역시 '사'자 직업은 어렵다.
 
  나는 이 사람들이 조금은 두렵다. 자꾸 나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나는 썩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우선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어차피 그 얼굴도, 이름도 나는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보통 나는 그들의 말에 재치있게 대꾸하는 대신, 말 없이 웃어보인다. 그럼 그들은 내 성향을 눈치채고, 침묵을 유지하도록 배려해준다. 그 침묵을 견디지 못 해서 자꾸 실 없는 말을 거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두려운 이유는 별 거 없다. '말'이라는 것은 나를 나타내는 것과 같다. 내 흔적을 남기고, 내 이미지를 만든다. 나는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남들 앞에 나를 내보이는 것을 잘 못 한다. 이 연장선상으로, 말을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두려운 동시에 신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얘기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물론 본인이 정해둔 선 안의 얘기겠지만, 자신을 보이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럽기도 하다.
 
  또한 말을 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졌을 때,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기분이 풀리는 것처럼, 말은 감정을 해소시킨다. 속의 이야기를 정리해주기도 하지만, 사라지게도 만든다. 사라져버리면, 나는 쓸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더 안 하게 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속에 담아둔 어떤 것들은, 적당한 때에 해소시켜 주지 않으면 눌러붙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절반은 나와 동화되고, 절반은 딱딱하게 굳어서, 떼어낼 방법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나는 이것을 꽤 오래 이고 가야 했는데, 이것은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당한 족쇄가 되었다. 나의 사고방식의 방향을 틀었고,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몇 년이나 지나서야, 나는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새삼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내가 이 사람들에게 잘 대응하고 있구나, 라고 문득 깨닫게 되어서였다. 어제와 오늘, 이틀동안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우선 기능교육을 받았다. 내 담당 강사는 30대 중반의 남자로, 비교적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내 나이를 묻고, 이름의 뜻을 묻고, 여행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대학 이야기를 하고, 애인상담을 했다. 나는 담담하게 이름의 한자 뜻을 말해주고, 여행 갔던 이야기를 했다. 또 그의 대학시절에 공감하고, 애인 이야기를 들어줬다. 남들이 보기엔 사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항상 곤란하게 웃기만 했던 나로선 상당한 발전이었다. 그러니까 보통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1년 반 정도, 나는 고등학생 네댓명의 관현악 중주 지도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참 고등학생이 어려웠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극복하지 못 해서도 있고, 그들은 아이도 어른도 아니기 때문에 대하기 애매하기도 해서였다. 친근하게 대하고도 싶고, 때로 엄하게 혼내고도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 같다. 내 머리를 만지며 집안 얘기를 했던 미용사처럼, 운전을 가르치며 애인 얘기를 했던 강사처럼, 아이들을 지도하며 무언가 그들이 나를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모두 할 수는 없어서, 나는 그냥 '지도하던 선생님'으로 밖에 남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실 많이 아쉽다.

 
  이건 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위에서 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건 '모든사람'이라는 범주에서다. 하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계기는 별거 아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바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눈에 띄는 것이다.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일을 나왔는지, 지금은 약간 화장이 지워져 있다. 하지만 바 안에서 토핑을 채우랴, 음료를 만들랴 정신 없어서 신경쓰지 못 한다. 그녀는 왜 이 일을 하는 걸까. 내 관심은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궁금한건 그녀의 이름이나 나이가 아니다. 지켜보니 그녀는 일이 능숙하고 손이 빠르고 친절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경력이 많은 걸까, 초기에는 많이 혼났을까, 천성인 걸까. 경력이 많다면 부지런한 사람일거고, 천성이라면 가족 분위기가 좋은 걸까. 내가 궁금해지는 건 이런 종류다. 아마 평생 알지 못 할, 그리고 굳이 알려고까지는 하지 않는. 그저 계속 궁금해하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게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그 이미지가 쌓이면,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어느새 그녀는 내게 친숙한 사람이 된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쉽지 않다. 그리고 잘 대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내가 만났던 이러한 사람들은 뛰어난 위인도, 성공한 유명인도 아니지만,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비유하는 작은 톱니바퀴 하나는 훌륭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하나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야만 훌륭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안다. 아마 평소에 그들을 대단치 않게 지나치는 이유는, 그들이 훌륭히 잘 맞물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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