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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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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Apr 09. 2017

난꽃


  한 보름정도, 엄마는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가기 전 날, 엄마는 내게 끝까지 신신당부를 했다.

  ‘베란다 애들 죽이면, 니도 죽는다.’

  강압에 못 이겨, 나는 보름동안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어야 했다. 

  엄마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뒤, 이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딸, 이리 와 봐!’

  엄마의 큰소리에 나는 곧장 베란다로 달려갔다.

  ‘이거 봐, 꽃대 올라온다.’

  손가락 두 개 굵기의 꽃봉오리는 잎이 돋는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였다.

  ‘지난 몇 년간 피는 일은 없었는데...’

  ‘내 덕이지? 내가 물 줘서 그래.’

  ‘니 때문이지, 니가 물을 얼마나 안 줬으면 살라고 꽃을 피우겄냐.’

  ‘......’



  며칠 동안 엄마는 간간히 꽃봉오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 날, 또 다시 큰소리를 나를 불렀다.

  ‘딸! 꽃폈어!’

  나는 후다닥 베란다로 달려갔다. 연한 분홍빛이 도는 흰 꽃이었고, 손바닥 보다 조금 컸다.

  ‘내 덕이지? 꽃도 다 보고.’

  ‘니 때문이야, 이년아.’

  엄마는 꽃에서 눈을 뗄 줄 모르면서 말했다.



  ‘딸!’

  근 반 년 만에 베란다에서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베란다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거 썩었붓서.’

  엄마는 머리끄덩이를 잡아 올리듯, 난의 몸통 끝 가지를 잡고 들어올렸다. 별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난은 순순히 끌려나왔다. 난의 밑동에는 뿌리가 하나도 없었고, 까맸다.

  ‘얘 버리고, 새로 심을까?’

  ‘씨, 있어?’

  ‘응, 저번에 꽃 폈잖아.’

  엄마는 신문지를 깔아 그 위에 난을 내려놓고, 냉동실에서 씨앗을 가져왔다. 신문지에 누워있는 난은 무청까지 뜯긴 무 같았다. 엄마는 손으로 까만 흙을 조금 뒤집은 뒤, 씨앗을 심었다.

  ‘싹 언제나?’

  ‘글쎄, 있어봐야지.’



  난은 삶에 위협을 느낄 때 꽃을 피운다고 했다. 난꽃은 영구치에게 자리를 빼앗긴 유치처럼 떨어졌고, 어미와 완전히 분리되었던 태아는 잠시 시간이 멈춘 삶을 살고 흙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오늘도 씨앗을 품고 있는 흙에 물을 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내가 꽃을 피우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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