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대체 왜 하는 거예요?
타인의 말에 상처 입은 적 있나요?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경험했을 거예요. 대인관계에서 반 이상은 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아는 이들이 많기에 자기개발서 중에서 대화의 기술을 다루는 책의 비율은 상당합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힘을 얻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사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결정에 많은 역할을 하는 건 그 사람이 하는 언어적, 비언어적인 부분이에요.
사람들이 쉽게 갈등에 휩싸이고 그 속에서 허덕이는 이유 중 하나는 ‘자동적으로 툭 떠오르는 자기만의 생각’ 때문입니다. (25, <엄마의 말하기 연습>, 박재연)
사실 우리가 하는 말 대부분은 생각 없이 하는 말입니다. 생각에 의해서가 아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뱉는 것이죠. (26, <엄마의 말하기 연습>, 박재연)
그런데 종종 말은 예쁘게 하는데, 온갖 미사여구로 꾸미고 공을 들인 것처럼 말하지만 알맹이가 없거나,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을 전혀 배려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면서요. 반면에 본인은 타인에게 좋은 말을 해줬다며 만족스러워할지도 모르죠. 자신이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긍정의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상황에 대해 겉핥기식의 긍정적인 측면만을 본다고 해서 좋은 대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일 뿐이니까요.
이런 방식의 대화에서 문제점은 뭘까요?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말투도 중요하지만 화자가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해요. 정말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고자 하는 건지,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점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그저 순간순간 떠오르는 반응일 뿐인지요.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대화의 기술을 주제로 하는 책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책도 읽었고, 아이와 잘 이야기하고 싶어서 말하기 관련 육아서도 꽤 많이 봤답니다. 이전 글에서 그중 가장 중요한 I-message에 대해 다루기도 했어요. 이런 책을 읽고 큰 도움을 받은 건 분명합니다. 당연히 같은 의도와 내용이라면 좀 더 예쁘게 말하는 게 좋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책은 책일 뿐이라는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요. 책에 나온 정제된 말들을 이용한다고 해도, 실제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답니다.
먼저, 아무리 구어체로 표현을 했다 하더라도, 지면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말’이 지니는 모든 요소를 담을 수 없습니다. 모든 개개인은 자신만의 말하는 방식이 있어요. 주로 쓰는 단어가 있고, 억양(사투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더 할 거고요)도 다르고, 어투라는 이름의 말하는 습관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표면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요. 핵심을 짚어서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돕는 건 어렵죠. 대화를 나누는 개개의 상황과 상대방이 모두 다른데, 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똑같은 반응이나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종종 긍정적이고 타인을 위한다고 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이 전혀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오히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거죠. 특히 부모들이 육아서에 나오는 따라 하라는 문장만 낭독한다면 아이들은 더 거부감을 가지기도 해요.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힘내, 괜찮아.” “그랬구나.” “그런 게 아닐 거야.” “이 상황의 이런 점들은 좋은 점이야.” 와 같은 말은 오히려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니까요. ‘작은 친절 큰 민폐’인 경우입니다.
그렇다고 대화를 다루는 책들이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에요. 분명 저도 도움을 받았어요. 아예 안하무인, 막무가내로 사는 것보다야 하나라도 보고 더 나아지려고 하는 노력을 무시할 순 없죠. 분명 도움이 되는 순간순간들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제대로 활용하여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까요? 핵심은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하는 모습이에요. 바로 그 대화에 임하는 나의 태도입니다. 내가 지금 상대방과 대화를 하며 심정을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싶다는 기본 태도가 필요한 거죠.
‘나는 그 사람들이 ~했기 때문에 화가 난다.’를 ‘나는 ~이 필요/중요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로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248, <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
많은 말하기 책은 이런 방식으로 서술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건 틀렸으니, 저렇게 말하라. 정작 입 밖으로 내어 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어요. 이 책은 영어 말투 그대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더 그럴 수도 있죠.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 고려해야 할 건 ‘이런 식으로 상황을 보려고 의도한 적이 있는가’에요. 단순히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앵무새처럼 표면적인 음소만 소리 내는 것이 아닌, 실제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알고 입 밖으로 내뱉는지가 중요해요. 위의 언어 전환의 밑바탕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 있어요.
‘의로운 분노’에 동참하는 대신, 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욕구에 공감으로 연결하라고 권한다. 그렇게 하려면 다음과 같은 연습을 거듭해야 할지도 모른다. (248, <비폭력대화>, 마셜 B. 로젠버그)
저자가 위의 예시처럼 말을 바꿔 말하라는 건 ‘나와 다른 사람의 욕구에 공감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자는 상대방과 ‘공감’을 통해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라는 거죠.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말만 따라 한다면 상대방도 나도 겉도는 대화를 하게 돼요. 이렇게 말하는 게 책에서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하며, 그냥 하기만 하는 것보다 그 의미를 헤아려 보는 거죠.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왜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말해야 하는지 등. 그래야 그 효과를 누릴 수 있어요. 물론 일단 따라 말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런 의도를 찾아낼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깨닫는 시기도 올 거예요. 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면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어요.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어려운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상대가 누구인지와 상대가 비치는 반응이 있어요. 이제껏 아주 오랜 시간을 걸쳐 굳어진 대화 방식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게 어려울 수 있죠. 처음에는 입도 떨어지지 않다가 하던 대로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오히려 처음부터 관계를 쌓아가야 하는 낯선 사람에게는 대화의 기술이 잘 통할 수 있어요. 애초에 어떤 말투를 사용하고, 어떤 마음 자세로 임할 건지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이미 쌓이고 쌓인 벽을 뚫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언제나 어려워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겨우 용기 내 책에서 배운 대로 말을 던져보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오면 책과 달라 당황하여 움츠러들게 되기도 하지요. 나도 익숙하지 않은 말에 상대방이 부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 같다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요.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점점 더 고착화되고 어려워집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건 표면적인 부분만을 고려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내가 정말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야 해요. 어떤 마음자세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좋은 관계를 쌓고 싶다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는 편이 좋아요. 단순 말하기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 적어도 나의 감정을 헤아려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려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좀 일찍 올 수 없어?!”라는 말 대신 “당신이 늦게 오니까 자꾸 내가 불안해.”라는 말은 어떨까요? 말투나 톤을 바꾸어 말했다 할지라도 후자의 말은 상대방에게 나의 불안의 원인을 떠넘기고 있어요.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I-message와의 문제점과도 닿아 있죠. 주어를 나로 한다 해도 상대방을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문장이 될 수 있어요.
더 중요하게 본마음을 생각해볼까요? 어떤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나요? 당신이 늦게 오는 게 날 불안하게 하니까, 그게 문제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일찍 좀 다녀!라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상대방도 바로 알아차릴 거예요.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 때문에 듣는 사람에게 명령하고 요구를 강요하고 있다는 걸요. ‘불안한 사람은 상대방인데 왜 내가 빨리 와야 하지? 게다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데? 나만 맞춰야 하는 거야?’라는 반응이 저절로 떠오르는 거예요. 물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의 대화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진행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반응을 탁구공처럼 주고받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기에 기껏 책을 보며 순화시켜서 말 한 내 입장에서도 황당해지는 겁니다. 결국 책이 쓸모없다고 여기게 되는 거죠.
언제나 우리가 의식해야 하는 건 마음가짐입니다. 상대방이 늦는 게 자신의 불안 요소이고, 당장 늦지 못하게 해서 해결해버리겠다는 마음자세는 나의 불안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해결을 강요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마음은 말하는 사람도 상대방이 원망스럽고, 듣는 사람도 당연히 편하고 좋을 리도 없습니다. 그럼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 걸까요?
이런 마음이 나의 말에 드러나야 하는 거죠. 핵심은 내 마음 알기와 그 마음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내가 지기. 그런 태도로 대화에 임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화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서로에게 문제 해결 명령만 지시하여,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만 쌓아가게 될 뿐입니다.
책이 쓸모없는 게 아니에요. 책이 전달할 수 있는 바를 모두 전달했을 뿐이지만,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하는 내용을 전달할 방법이 없을 뿐이에요.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를 배워 나를 잘 알고, 나 스스로의 감정을 헤아려 그 몫을 내가 지는 기본 전제를 갖고 의식하면 되는 거예요. 사실 말이 거창하지만, 결국 나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내가 모르는 나를 다른 사람이 책임져 줄 수 없으니까요. 대화를 잘하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도 나 자신을 알아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