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맑음]
육아서를 읽으며 자주 접하는 내용에 ‘I-message’라는 게 있어요. 이는 한국어로 ‘나 전달법’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문장을 ‘I, 나’로 시작하여 아이에게 말을 하는 방식이에요. 좀 더 정확히는, ‘먼저 상황에 대해 중립으로 말한 뒤, 그 때의 자신의 감정을 묘사하고, 원하는 바를 요청'하는 방식입니다.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84) 일이 발생했을 때 부모가 ‘너’로 말을 시작할 경우, 그 내용은 비난이나 꾸중이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너’가 주체가 되는 화법은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면서 자신이 비난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너를 지칭하는 메시지 대신 ‘나-메시지’로 바꿔 보자. 나-메시지는 ‘원인 – 나 – 결론’의 순서대로 표현하면 된다. 예를 들어 “네가 늦잠을 자서(원인) / 엄마가 아침마다 허둥대게 돼.(나) / 10분만 일찍 깨면 훨씬 수월할거야.(결론)”하는 식으로 말한다. (273, <언어 발달의 수수께끼>, EBS 언어발달의 수수께끼 제작팀)
상대방이 했던 행동이나 문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놓여 있는 나를 기준으로 말을 하는 거죠. 언뜻 들으면 별 거 아닌 것 같고,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입을 떼려고 하면 이런 말들이 쉽사리 나오지 않고, 무척 어색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인생의 긴 시간 동안 그런 방식으로 하는 말을 들어본 적도 해 본 적도 없다는 거죠. 경험이 없다는 건 그만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내용물이 없다는 거에요. 그러니 책을 보고 강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무척 공감해 실천하려고 해도 입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떻게든 꺼낸 그 말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불편하죠. 심지어 듣는 상대방도 불편해 할 만큼. 내가 뭐라고 내뱉은 건지 놀라울 정도로 말이에요. 표면만 훑어 본질에 닿지 못해 겉도는 느낌의 말들이에요. 결국 무의미하다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에게 좋다고 하니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부모도 있어요. 어떻게든 더 좋은 관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자 노력하는 부모들이 있죠. 저 스스로도 엄마이면서 많은 육아서와 여러 엄마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는 지라,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그저 ‘어려울 수 있지, 우리가 안 해봐서 그래, 처음에는 다 그럴 수 있어’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천하며 적응하면서도 뭔가 빠져 있는, 자꾸만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을 ‘나’로 시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단지 주어를 ‘나’로 놓고 말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왜 주어를 ‘나’로 두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너’가 아니라 ‘나’일까요? 나름으로 생각해본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를 주어로 가진다는 것은 그 뒤 서술을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 내가 가지는 생각과 바라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봐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먼저 나 자신을 관찰해야 함을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내가 바라는 게 뭐지? 어떤 점이 내 안에서 문제가 되어 이 상황이 불편할까?’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전달법’으로 말할 수 있어요. 나 스스로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며 그걸 알아야 말에 그 내용들을 녹여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당장 내뱉는 ‘나-전달법’은 어색할 수 밖에요. 평소에 내가 느끼는 감정에도, 내가 바라는 바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이 말만 ‘나’로 시작한다고 해서 당장의 변화를 느낄 순 없어요. ‘나-전달법’을 사용할 때는 무엇보다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깨어 있는 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뿐이며, 현상이 여러 개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깨어 있지 못하면 현상들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평화롭지 못한 이유입니다. (<스스로 행복하라>, 법정, 28)
자칫 잘못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아니면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여길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화가 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상대방에게 “엄마 짜증나니까, 가만히 있어.” “나 기분 나쁘니까 집에 갈래.”라고 말합니다. 이런 맥락은 정말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주어를 나로 사용하였지만 내용만으로 보자면 상대방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는 거죠. 전자는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너는 거슬리는 존재야. 눈에 띄지마.’라고 상대방은 느낄 수 있어요. 이는 나 자신을 전혀 관찰하지 않고, 현 상황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바를 특히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해 하는 말들입니다. 짜증이 났으면 왜 짜증이 났는지를 생각하지 않죠. 마찬가지로 후자에서 집에 가겠다는 건, 정말 혼자 있고 싶은 건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협박하는 건지 등 다양한 면모를 관찰하는 것이 ‘나 전달법’의 핵심입니다. 제대로 들여다보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리 나로 시작하더라도 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고,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없어요.
자기개발서에는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 바꿀 수 있는 건 나 하나 뿐이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등과 같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이런 내용에 ‘잘못한 건 상대방인데 왜 내가 바뀌어야 하지’하는 반감이 들 수도 있고, ‘결국 내가 문젠가’ 하는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문구들의 핵심은 인간은 모두 자신이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압박은 주로 튕겨내죠.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단순한 타인의 지시와 명령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건 불가능해요. 이는 조금만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했지만 결코 우리는 타인을 바꿀 수 없었을 거에요.
결국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죠. 타인은 타인으로 그 상황에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타인까지 그 상황 안에 포함되어 있고 그 안에서 오롯이 존재하는 건 나 하나입니다. 그러니 나를 살펴야 해요.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보고, 나와 어떤 관계가 생긴 것이며, 그로 인해 나의 심경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고,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전달법’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죠. 그 순간에 상황을 내 맘대로 조정하기 위해 압박을 가하는 게 아니라, 나를 파악해 내가 어떠한지를 전달하는 것뿐입니다.물론 그걸 수용하여 변하는 건 상황에 달려있죠.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봐주는 엄청난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나만 온전히 생각하고, 내 입장에서 대변해줄 수 없습니다. 종종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알 수 있을까요? 본인 스스로도 무던히 노력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다 보면 진짜 나 자신, 나의 속 마음, 내 안에 있는 작은 아이가 어떠한지까지도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아이가 밥을 먹다가 바닥에 흘리는 상황에 불 같이 화가 올라옵니다. 단지 식사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바닥 청소가 힘들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어릴 적 그렇게 흘리며 먹다가 무척 혼났던 내 모습이 투영되어서 일 수도 있어요. 어떤 생각이냐에 따라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 지가 달라지죠. 일단 내 기분이 달라지니까요. 단지 식사 예절을 알려주는 시간으로 끝날 것이냐, 청소하는 게 힘드니 조심해 달라고 이야기 할 것인가, 혹은 아이가 아닌 나 자신의 문제로 스스로를 끌어 안아 줘야 할 시간을 가질 것이냐로 달라집니다.
불쾌감은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신호입니다. 지금 이 지점에서 나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힌트를 준 것이죠. 그리고 ‘나-전달법’을 통해 그 감정과 내가 이 순간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를 반복적으로 깨닫고 정리할 수 있어요. 제대로 나를 알리고 요청하는 전달법을 사용하여 불쾌감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상대방과 더 긍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죠.
‘나-전달법’은 단지 주어만 나로 써서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걸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부분이자, 이런 방식으로 말을 해도 관계에 변화가 없거나, 더 악화되는 건 그러한 이유에요. 나를 돌아보고 생각하며 내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고 바라는 점을 생각해 전달함으로써 그 자체로 나 자신을 존중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타인이 받아 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나를 알아준 누군가(나 자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자아존중감이 조금씩 쌓여갈 겁니다. '나-전달법'은 상대방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무척 중요한 말하기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