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칭찬의 양날
집단상담 중 역동(인간 행동의 바닥에 있는 심리적 힘. – 네이버 사전) 중에서 ‘인정’이라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그 ‘인정’이라는 단어가 그날부터 자꾸 켕기더군요. 뭘까, 왜 저 단어가 자꾸 마음에서 걸릴까 고민했습니다. 인정이라고 하니 ‘칭찬’도 함께 생각나고요. 무조건 긍정적 요소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의도나 부분이 첨가되면서 변질될 수도 있을까요?
인정과 칭찬. 이 둘은 무엇일까요? 좋은 걸까요? 인정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기’는 걸 말하고, 칭찬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거나 그런 말’이라고 합니다. (네이버 사전) 두 요소 다 아이일 때는 물론 커서도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지배적인 요소 같아요. 그만큼 중요하고, 영향을 줍니다. 육아서를 많이 읽으신 분들도 자주 만나는 논점일 거예요.
인간은 세상의 시선을 통해 성장한다. ‘잘하고 있어’, ‘넌 충분히 해낼 수 있어’ 등과 같은 인정과 칭찬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면 우리는 그 인정과 칭찬을 부여한 상대를 신뢰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열정을 불태운다. 반대로 무관심하거나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자꾸 내놓으라고 하면 그 길을 가기도 전에 좌절하거나 무력해지기 십상이다. (이정화, 『아이의 그릇』, 포레스트북스(2021), 7)
인정과 칭찬의 기본 전제는 사랑과 관심입니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던 경험 있으신가요? 이 때는 절로 필터가 씌워져 좋은 것들만 찾게 하고, 안 좋은 것도 따뜻한 필터로 좋아 보이게 만들죠. 따뜻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인정할 것도, 칭찬할 거리들도 찾을 수 없죠. 그래서 미운 사람은 꼭 미운 짓만 한다는 말도 있죠. 이미 내 마음이 미운 감정으로 가득하니 좋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 말은 나쁜 사람이라서 나쁜 일만 한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보는 사람인 내가 이미 나쁨의 필터로 보고 있어서, 좋은 점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인 거죠.
이처럼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해주려면 그만큼 긍정적인 눈길로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거나, 애정이 담겨 있다면 굳이 찾지 않아도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동경의 대상은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것처럼요. 그렇기에 인정과 칭찬이 주는 힘은 엄청납니다. 받는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부분,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알게 되죠. 덕분에 자신이 할 수 있고, 해내야만 할 이유가 생겨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인정받는다면, 좋은 말을 듣는다면, 자신이 한 일에 고마움과 칭찬을 해 준다면 기분 좋은 건 물론이고, 더 열심히 하게 되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칭찬과 인정에는 있어요.
그렇다면 문제는 없을까요? 칭찬과 인정은 좋기만 할까요?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하니, 무조건 좋을 것 같은 인정과 칭찬도 마찬가지예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게요. 먼저 인정과 칭찬의 ‘의도’가 이미 그릇되었을 수도 있어요. 진심으로 상대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느끼고 있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인정과 칭찬이 아닌, 계획되고 의도적인 접근인 경우예요. 타인을 조정할 때 명령하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인정이나 칭찬을 활용하기도 하죠. 특히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지배하고자 할 때 많이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수치심, 죄책감, 소외감, 불안, 분노, 열등감, 슬픔, 무기력, 공포, 두려움, 후회, 적개심 등 핵심 가정이 축소되고 방임되어 억압된 감정으로 남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감정들이 자기 파괴적, 자기 패배적 행동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억압된 감정이 표면화되지 않도록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기에 정서적, 심리적, 신체적으로 점점 피폐해진다. / 참고로 핵심 강점은 생후부터 여섯 살까지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 양육자에게서 제대로 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끊임없이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발생한다. (임영주,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앤페이지(2021), 150)
여기서 방점을 둬야 하는 건, 아마 제대로 된 사랑과 인정일 것입니다. 유도하고 싶은 행동이나 방향으로 칭찬을 많이 하시죠. 여러분의 부모님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세요. 종종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면 그게 마음에 들어 많은 칭찬을 퍼붓기도 해요. 이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의도적으로 설계한 의도나 칭찬은 그 후 상대방이 알아차릴 수밖에 없고 관계에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그랬던 거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되죠. 당시에 바로 불거질 수도 있고, 그 이후에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될 수도 있고요. 칭찬과 인정도 그 의도 자체는 순수해야 한다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우리는 칭찬받을 행동을 요구당하며, 칭찬받으면 좋아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중략) 칭찬이라는 행위는 ‘좀 더 우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라고 보았고, 이는 상대를 ‘조정’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박예진,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인플루엔셜(2020), 132)
그래서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탄사 같은 것이 훨씬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죠. 타인의 행동이나 상태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나타나는 칭찬과 인정. 꼭 말로 하지 않아도 표정이나, 감탄사 등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내가 어떤 부분을 중요시하고, 어떤 가치를 알려주고 싶은지, 등을 잘 담고 있어야 해요. 그런 요소들에 기반해서 나의 반응이 나올 테니까요.
내용에 대해서도 짚어볼게요. 어떤 부분을 주로 칭찬하시나요? 타인의 어떤 부분이 주로 눈에 들어와 인정하시나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칭찬이든 인정이든 긍정적인 요소들마저 다루기가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저의 지난 글에서 being과 doing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칭찬과 인정의 내용 또한 이 부분과 관련 있답니다. Being가 doing의 이야기는 다음 글을 참고해주세요 � https://brunch.co.kr/@grayemilio/11 )
칭찬과 인정에서도 이 둘을 구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행위에 대한 칭찬은 갈증만 증가시키기 때문이에요. 칭찬과 인정이라는 달디 단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하려면 간단한 행위에서 시작해 계속해서 행위에 행위를 더해야만 떨어지거든요. 게다가 종종 이전과 같은 정도로는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러니 더 매달리고 매달려요. 그 좋다는 칭찬과 인정을 주었지만 좋은 음식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그 내용물은 그렇지 않아서 체내에 독만 쌓고 있을지도 몰라요. 자꾸만 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게 되고, 인정받을 만한 행위인지를 재단하게 되죠. 심지어 칭찬이나 인정이 오지 않으면 그 결과물이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doing에 집중하는 삶을 살 게 된 건 칭찬과 인정에 너무 크게 영향을 받아서 일지도 몰라요.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만 인정받고 칭찬받았기에, 그게 당연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텅 비어있는, 완벽주의 성향을 만들기에 좋은 상황입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성공을 향해 달리다 보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꾸 일을 벌이게 됩니다. (중략) 정작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필요한 때에 몰입할 수가 없게 됩니다. 점점 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을 하다 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누적됩니다. (박예진,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인플루엔셜(2020), 93)
그렇다면 being을 언급하는 건 어떨까요? 일단 기본 전제가, 아 그래 ‘너’가 거기 있구나,를 알아주는 거예요. 뭘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너의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음을 이야기하는 거죠. ‘너’라는 존재가 있음을 알아주는 거예요. 우리는 종종 뭔가를 해야, 자신이 살아 있음을, 쓸모 있음을 입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곤 해요. 이게 정말 무서운 생각이거든요. 저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칭찬을 하려거든 아이들이 노력하였거나 도움을 주었거나, 배려를 하였거나, 새로운 것을 해냈거나, 성취한 일에 대해서 어떤 점이 마음에 들고,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는가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칭찬의 표현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품에 대해서 실제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을 수 없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부모의 칭찬은 요술 캔버스와 같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임 G. 기너트, 『부모와 아이 사이』, 양철북(2003), 66)
인용문을 육아서에서 가져오긴 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을 채워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을 더 큰 영향으로 반응할 뿐, 어른들에게도 그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양육환경이었는지에 따라 칭찬과 인정에 반응하는 크기가 다를 뿐, 영향이 없을 수는 없죠. 존재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생각을 알아주고, 감정을 알아주죠. 이를 당연하게 만들고 살아있음을 가치 있게 만들어줘요.
이때 가장 큰 장점은 칭찬을 받는 사람만 그 수혜를 받는 게 아니에요.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자신을 돌아보게 돼요. 존재 자체를 칭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우리는 존재를 인식하는 게 익숙하지 않거든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나 결과물을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가 어떠한지 알아보기는 어려워요.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도 낯선 우리가 타인의 존재를 생각한다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이들을 칭찬할 때도 주춤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나? 이걸 이야기해도 되는 건가?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괜히 관련 이야기 한마디 들었더니 아이를 칭찬할 때 어색해져 버리기도 하지요.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바라볼 때 단순히 결과물이 아닌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그 시작점이니까요. 진정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상대방이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게 만드는 인정과 칭찬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반대로 인정과 칭찬을 받는 존재가 되어볼까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어떤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셨나요?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내 존재의 의미가 타인의 인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니까요. (박예진,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인플루엔셜(2020), 38)
나는 어떤 인정과 칭찬에 목말랐는지 알고 계신가요? 잠시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지, 그게 나의 행위에 대한 이야기인지,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인지.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갖고 있어야 줄 수 있어요. 존재 자체를 인정받아보고, 칭찬받아봤어야 타인에게도 줄 수 있어요. 내 존재 자체에 집중해서 어떤 인정을 받고 싶은지, 어떤 부분에서 칭찬을 받고 싶은지 살펴보세요. 너무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과정 안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지워지진 않았는지도 알아봐 주세요.
인정과 칭찬으로 깊은 내면에서부터 충족감이 차오르는 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이기에 내가 온전히 느껴보지 못했다면, 공허할 수밖에 없어요. 텅 비어 있는 내면으로 타인을 봐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그 느낌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 줄 수 있죠.
마리오네트를 움직이는 끈처럼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어떤 끈인가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정말 고래는 춤추고 싶었던 걸까요?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유도한 건 아닐까요? 고래는 그저 바닷속을 유영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그 칭찬은 나에게 뭘 바라는 걸까요? 나는 어떻게 있고 싶으신가요? 질문이 많아지는 화두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