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가 뭘까?

갑자기 다시 정의하는 엄마표

by 휘연

지난 글에서 아이 한글 공부 글을 쓰다 문득

‘엄마표’라는 말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엄마표’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브런치에서 ‘애미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하며

지속적으로 ‘엄마표’라고 쓰고 있는데,

문득 이 엄마표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고민된다.


그리고 이 넘쳐나는 엄마표 세상에서,

엄마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에서,

‘엄마표’라는 단어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을까?


그래서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표는 무엇이고,

그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엄마표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각자가 생각하는 의미가 모두 다를 것이다.

엄마표로 해줘야 하는 영역에 대한 입장도

모두 다를 테고.

(시중에 유행하는 모든 엄마표를 다 해주기엔,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그런 대단한 분이 있을까?)

중요한 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이다.



네이버 사전에서 뜻은

‘엄마가 만든 것’

정의로 단순하다.


좀 더 뒤적거리니 서울신문 글에서

김혜영 중앙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엄마표를 ‘엄마의 정성이 담긴’이라거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엄마가 직접 하는’이라는 의미로

정의 내렸다.

(출처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514030014)


어떤 블로거는

엄마표=엄가다

라는 공식으로

엄마가 직접 노가다 해서 자료 준비해서 만들고

아이에게 직접 해주는 모든 활동을 포함했다.



종합해보면 결국 엄마표는,

엄마가 만든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우리 아이를 위해서

스스로 직접 아이를 위해 해주는 모든 행위

엄마표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럼 이 엄마표는 뭘 만들어야 할까?

그리고 만들더라도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엄마이기에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이나 주변 정리 등과 같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영역이 지금은 무한으로 뻗어 나가는 것 같다.

기존의 엄마의 역할이 아닌,

수퍼맘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엄마표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그래서 대상과 제한선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닥치는 대로 휩쓸렸다가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아이의 기질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시기에 따라 지금 당장 적기일 수도 있고,

너무 이른 시기일 수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직접 해야 하니

언제 엄마가 손을 뗄 지도 고민한다.



그래, 지금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건

나라는 사람이 내 아이를 위해

무엇을 언제 어디까지만 해 줄지를 고민해야 하는 거구나.




엄마표라고 했을 때,

요즘 부모들은 엄마표 밥이 아닌,

학습 부분을 먼저 떠 올린다.

나 또한 어느 순간 그러고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그런 학습 이전에 내가 해줘야 하는 건 없을까?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밥을 해줘야 하고,

좋은 습관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줘야 하고,

지금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응원하고 격려해야 하고.

좋아하는 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실컷 듣게 해주어야 하고,

읽어 달라는 책을 잔뜩 읽어주어야 한다.


엄마표 밥

엄마표 습관

엄마표 응원

엄마표 놀이

엄마표 독서

와 같이 '엄마표'라는 거창한 이름 필요 없이,



자신이 뭘 좋아하고, 즐기는지 알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그저 잘 먹고 잘 클 수 있도록,

스스로 잘 놀고 있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좋아하는 것들을 실컷 즐길 수 있도록,

해롭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배제할 수 있도록,

아이표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내 아이를 위한 아이표가

엄마표가 아닐까.


이렇게 쓰고 보니 내용이 너무 추상적인 듯하다.


적어도 나의 엄마표는

나와 아이의 관계가 더 중요함을,

우리 아이가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중심으로 두고 싶다.



손끝에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탓에, 우리는 점점 정보에 압도되고 스트레스받는다. 여기에서 생존 본능이 가동하면, 우리는 모르는 모든 것에 확실하고 재빠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명확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데이터가 너무 많다. 우리는 부정확한 데이터라도 탐욕스럽게 소비하고, 알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없애려 한다. 이런 데이터는 정확하든 아니든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레베카 하이스, <본능의 과학>, 윌북, 199)



너무나도 많이 넘쳐나는 정보 탓에

나도 휘둘린다.

팔랑팔랑 귀가 이 정보 저 정보에 휩쓸려 다닌다.



그래서 내게 육아서 읽기와

이런 관련 글을 쓰는 게

생명줄과 같다.

우리 아이와 내 정신을 지키는 생명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여러 글을 찾아보고,

육아서를 뒤적거리며

나를 다잡아 본다.


내가 바라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다시 돌아가자.

아무것도 쥐려고 하지 않았던 시기로.

그저 내 아이의 손만 꼭 쥐고 있으면 되는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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