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맑음]
아이를 낳고, 육아서를 읽고, 심리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육아서 자체가 충격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이 점점 더 어려워지더군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궁금해지고, 알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리서로 손이 가는 게 당연했습니다. 살아오면서 언제나 문제에 부딪히고, 그 문제를 내 안에서 찾으면서도 변화가 없어 수렁으로 빠지기를 반복하였기에 심리서를 읽을 수 밖에 없었죠.
책과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나누어야 한다는 여러 사람의 말을 들으며, 책과 일치하는 삶은 어떤 삶이며, 가능하기는 한지, 어떤 책과 일치해야 하는 걸까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생각을 나누기 위해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구요.
책을 읽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사는 데 유용한 책은 두 가지가 있어요. (안 그런 책이 있겠느냐만은.) 첫 번째는 단연코 자기개발서. 이 분야의 책은 애초에 사람들을 행동하게 만들기 위한 책이자, 움직여야만 가치가 있는 장르에요. 마음에 든다면 벽에 붙여놓고라도 책에서 말하는 바를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책이죠. 잘만 활용하면 쉽고 명료하고, 유용하고 효과적입니다.
다른 맥락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행동하게 하는 종류에는 심리서가 있어요. 책을 내 삶으로 녹여내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분야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단지, 자기개발서와 차이점은 당장 눈에 보이는 움직임과 행동을 이끌어 내느냐 아니냐일 것 같아요. 오롯이 나만 알 수 있는 잔잔한 파동에서부터 내 장기마저 다 뒤틀어 버릴 것 같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게 바로 심리서거든요.
그렇다 보니 그 둘의 작용 방향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자기개발서는 위로 끌고 올라와요.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없이 무조건 우상향해야 함을 강조하며 끌고 나오죠. 게다가 그 아귀의 힘이 얼마나 쎈지 종종 자신이 끌려 나왔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에요. 그래서 마음은 이미 끌려 나왔는데 몸이 안 움직이는 사람이 많을지도. Pull, pull. 그 강제성이 자기개발서의 매력입니다. 밝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어야만 하도록 말이죠.
예외적인 현상은 용납하지 않아요. 그래프상 아래쪽도 왼쪽도 안 되요. 무조건 오른쪽이거나 위쪽으로만 움직여야만 하죠. 밝아야만 하고, 긍정적이어야 하고, 희망차야 해요. 반드시,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하는 자기개발서. 우리는 이미 가치 있고, 귀중한 존재이며, 성장하는 것이 당연함을 강조하다 못해 세뇌시키다 시피해요. 그래서 자기개발서는 약간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죠. 읽을 때마다 정말 기운도 얻고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기거든요. 긍정의 말과 힘을 주는 말을 온몸 안에 차곡차곡 쏟아붓는 기분이라 무기력할 때, 뭘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 읽으면 좋아요.
물론 그 마저도 곱게 들리지 않고, 매번 같은 말을 듣는 거 같아 지겨운 사람들도 있겠지만요.
(저자가 읽기 편하게 혹은 마음을 잘 어루만지기 위해 엮어서 부드럽게 쓴 책들이 아닌) 심리서는 나를 구덩이에다가 패대기치는 책 같아요. 힐링, 위로, 위안 같은 단어들과는 일절 관계없는 책들이죠. 내 현실을 직시하게 해 얼굴을 그대로 흙구덩이에 매다 꽂는 느낌이에요. 방향이 무조건 아래쪽이에요. 놀라고, 숨 막히고, 더러움에 눈물 콧물 질식할 것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게 심리서인 것 같아요.
종종 책을 펼치기는커녕 표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는 경우도 있어요. 그 속에서 살아남으면, 살아남기만 하면, 그 과정을 버티고, 버티고, 아니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 점점 꾸역꾸역 밀려 내려나게 되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온 몸으로 받아내며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밀리는 느낌이에요. '왜 이런 구덩이에 나를 밀어 넣었을까?'로 시작해 언제 끝이 날지 아니면 끝이 나기는 할지 초조하고 불안하고, 결국은 공포에 사로잡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물이 스며들기 시작해요. 태아가 산도를 빠져나오듯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를 옥죄는 고통 속을 지나 어느 순간 탁 트이는 순간이 와요. 자궁 속 양수에 빠진 듯 나를 감싸 안아주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거죠. 깊은 물속으로, 태초에 내가 있던 곳인양 나를 안아주는 시공간을 마주합니다. 이것이 제가 심리서를 읽는 이유에요.끝끝내 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느낌과 감각.
나를 움직이게 하고 유용하게 하고,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점에서 두 분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요.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 방향성이 다르기에 주의해야 해요. 서로 보완해줄 수 있어요. 깊고 깊은 우리의 삶을 쉽게 다룰 수는 없어요. 가끔은 밝고 가볍게 희망적으로 나아간다면 만들어서 확장해야 할 '주 도로'는 내 안으로 좁고 깊은 길일 거에요. 그 도로를 통해 온전히 나를 만나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심리서를 읽는 이유는 많아요. 내가 궁금하고, 다른 사람이 궁금하고, 관계가 궁금하니까.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로 관계를 들었죠. 많은 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관계이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으니 심리서를 읽는 것은 당연해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나를 잃지 않는 중심을 잡으려는 나의 노력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게 바로 심리서랍니다.
[마음맑음]은 그 과정을 온전히 내보이고자 해요. 내가 어떻게 흙구덩이에 패대기 쳐지고 있는지, 수렁에 빠지고 마는지, 어떻게 기어 나오려고 아등바등하는지, 그럼에도 계속 아래로 눌려 내려가게 되는 그 모든 상황들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물론 중간 중간 자기개발서와 다른 종류의 책이나 상황으로 여러 방향의 시선을 그려낼 수도 있을 거에요. 매주 만나게 될 글을 통해 풀어 나가는 시간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에요. 그 깊이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에요. 이토록 견고한 강철벽을 두르고 있는 나를 꺼내 저 깊은 곳까지 밀어내는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하나하나 천천히 짚고 이야기하고, 풀어 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