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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은퇴하지 마세요

사진작가의 꿈

사진가에게 있어 호리(호리존트 horizont의 준말. 바닥과 벽 사이를 둥글게 굴려 만든 세트. 여기에 주로 흰색 페인트칠을 하여 조명을 비추게 되면 이음새가 없어 무한 공간처럼 보인다)는 스모 선수에게 도효처럼 신성하다.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며칠 걸러 흰색 페인트를 칠한다. 이걸 '호리칠'이라고 부르는데, 이 작업을 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이들도 몇 있다. 이게 몇 년 쌓이면 두께가 수 센티가 된다. 그러면 덧칠이 점점 어렵게 돼서 그라인더로 갈아내야 한다. 엄청난 분진은 그야말로 필수 옵션. 맨발로만 밟게 하는 데도 있다.


그런 호리는 당연히 평탄화가 잘 되어야 상급이다. 둥글게 굴린 모서리는 삼각형에서 한 변만 둥근 합판 조각 여러 개를 대고 그 위에 또 합판을 휘게 하여 붙여 만드는데, 바닥과의 경계, 벽체와의 경계에 금이 안 보이면 최상급이다. 울퉁불퉁한 부분이 있거나, 경계에 금이 보이면 사진 찍을 때마다 그걸 일일이 포토샵으로 지워야 한다. 호리가 잘 빠져야 그만큼 품이 줄어드니, 호리에 한 충분한 투자는 큰 득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모든 사진가는 안다.


"사장님, 아직 저기 금이 좀 보여요."


지속광(순간광처럼 번쩍번쩍 빛이 터지는 광원 말고, 계속 불빛이 켜져 있게 설계된 광원) 헤드(사진 조명의 광원이 되는 기계 덩어리의 한 단위. 조명 셋업에 몇 개의 광원을 썼냐에 따라 원 헤드 세팅, 투 헤드 세팅 따위로 부르기도 한다) 하나를 들고 측광으로 비춰보며 사장님을 귀찮게 한다. 정사장님이 스튜디오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호리존트 제작 과정에서도 마무리 도장 작업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실내조명으로는 잘 안 보이는 굴곡도 이렇게 측광으로 비추면 그림자가 생겨 잘 보여서, 그걸 사악하게 이용해서 지적한다.


"어유, 이거 나중에 빠데(핸디코트, 메꿈제)로 잡으면 금방인 거 아시잖아유."


헤라(칠을 벗겨 내거나 반죽을 얇게 바르기 위해 사용하는 펼친 주걱 모양의 도구)를 본인 의수(義手)처럼 사용하는 그이는 끝내 완벽한 호리를 완성해 준다. 이제는 그러리란 걸 알면서도 못된 지적질을 하는 나는 노파심 중증이다.


첫 만남에 페인트통 가득 실은 트럭 몰고 도착한 정사장님. 도장 사장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이가 하는 일은 도장만이 아니다. 목수, 전기 설비, 타일, 용접, 유리, 새시, 커튼 기술자들을 모두 어레인지 해 주는 역할까지 한다. 내가 인테리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구역을 어떻게 나누고 어디에 뭘 발라야 할지는 머릿속에 다 있으니까, 그걸 말도 안 되는 그림과 치수로 전달한다. 그러면 귀신같이 알아서 뚝딱 만들어 주신다. 말하자면 이젠 내게 도장 사장님이 아니라 인테리어 사장님인 건데, 보통 한 번 정한 호칭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사진가가 작업 공간으로 사용할 스튜디오를 구하면 주로 지하를 얻는다. 사진 작업 공간으로 용이하려면 넓이도 넓어야 하지만 그보다도 높이가 중요하다. 특히 인물을 찍는 경우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 조명 헤드를 설치해 두고 때려야(조명을 비춘다는 의미로, 사진가들이 자주 쓰는 용어, 친다고도 한다) 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진가는 스튜디오를 얻을 때 층고가 4.5미터 이상은 되어야 한다느니, 5.5미터라서 쾌적하다느니 하는 말들을 한다. 층고가 그렇게 높게 빠진 층을 지상층으로 얻자면 잘 없기도 하거니와 월세가 무척 비싸다. 1층은 엄두도 못 낸다. 높은 층고를 가진 스튜디오를 1층에다가 차려 장사하는 사진가를 안다면, 친하게 지내시라. 실력이 좋을 확률이 높다. 그런 스튜디오를 유지한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검증되는 셈이다. 자동차 판매 매장을 가면 대충 봐도 7-8미터 이상 되는 층고에, 그 넓은 넓이에 감탄한다. 거기다 1층! 이런 데를 사진 스튜디오로 사용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가 월세가 수천이란 말에 황급히 상상을 접는다.


인공조명을 쓸 일이 많은 사진가는 매일 다른 컨디션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차단해야 하기도 한다. 자연광을 이용하기 위해 지상에 스튜디오를 꾸리기도 하지만, 매일 예외 없이 똑같은 컨디션의 빛을 다루려면 지상층에선 모든 창문에 다 암막 커튼을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돈을 아끼는 것이다.


사진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지상으로 올라가서 햇빛 쬐는 게 꿈입니다. 이 말인즉슨, 월세도 많이 내고, 암막 커튼도 설치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많이 벌고 싶단 말이기도 하다.


하여간 범재 사진가인 나는 그런 연유로 웬만하면 지하 스튜디오를 사용한다. 왜 스튜디오는 항상 지하에 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돈이 없어서요'라고 하긴 좀 민망하니까, '넓고 높은 공간은 주로 지하에 있어서요' 혹은 '빛을 차단해야 해서요'라고 한다. 반쯤 맞는 말이다.


스튜디오 공사는 주로 철거-설비-미장-새시-전기-목공-타일-도장-바닥-조명-가구의 순으로 진행된다. 에폭시 바닥을 깔고 양생을 할 때쯤(바닥 단계) 신나 냄새가 엄청나게 올라온다. 머리가 아파서 사장님한테 이 냄새를 어떻게 맡고 작업하냐고 묻는다.


"우린 이거 맨날 맡아서 아무렇지도 않아유. 커피 말아서 마시면 돼유."


그래서 그런지 공사 현장에 가 보면, 그 휑한 공간 가운데 커버도 안 씌워진 콘센트에 전기 포트가 덜렁 꽂혀있다. 그 옆에는 400개 들이쯤 돼 보이는 커피믹스 박스랑 종이컵 다발, 그리고 2리터짜리 생수 두세 병이 있다. 사장님은 그런 커피를 짜게 타서 하루에 못해도 열 잔은 넘게 마신다. 냉난방도 아직인 현장에서, 여름에는 공업용 선풍기 틀고 겨울에는 전기난로 틀어, 신나 냄새 맡고 커피 마시며 그렇게 작업한다. 얼마나 진행됐을까 궁금해서 현장을 들락거리다 보면, 지하 공사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담배 한 대 같이 피자고 지상으로 모시고 올라와 같이 쪼그려 앉는다. 앞으로 내가 쓸 공간의 터를 닦아 주시는 사장님. 고마운 마음에 먹먹해져서 담배를 잘 빨지 못한다.


2011년 6월. 정사장님을 처음 만났다. 인생 첫 독립이라 공사를 어떻게 시작할지 난감했다. 선배들에게 물어물어 자칭 스튜디오 공사 전문이라고 하는 인테리어 업체를 소개받았다. 견적까지는 업체 대표가 봐주고, 공사가 시작된 뒤부터는 직원 한 사람이 현장에 나와서 기술자들을 관리했다. 그런데 약속된 마감 일정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르는 내가 봐도 진행이 너무 더딘 거다. 현장을 관리해 주던 소장이란 직원은 전화도 받지 않고 잠수를 타기가 일쑤였다. 만나면 업체 대표 욕만 했다. 너무 자길 부려먹는다고. 업체와 기술자들 사이에서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내 입장에선 불안했다. 업체가 보기엔 싸게 해 줬다는 적은 돈이지만 그 당시 내겐 엄청 큰 금액이었다. 공사가 무조건 제대로 돼야 했다. 그렇게 시름시름 걱정하며 겨우 마무리 단계쯤 왔을 때 정사장님이 그 인테리어 업체와 일하는 기술자 한 사람으로 현장에 온 것이다.


그이는 일하는 게 다른 기술자 하고 달랐다. 감독하는 소장이 도망가거나 아예 안 나오는 날도 더러 있는 현장. 중간중간 들르면 기술자들이 누워서 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거친 기술자들은 나이 어린 의뢰인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이틀이면 된다는 작업도 사나흘 넘게 걸렸다. 이미 오픈하기로 한 날은 한참 지났다. 그런데 그이는 현장을 감독하는 소장이 있건 없건 간에 쉬는 법이 없었다. 본인 과정 마감을 제대로 지켜준 사람도 정사장님 한 사람뿐이고, AS를 성심껏 해준 사람도 그이 한 사람뿐이었다.


"사장님이 주위 기술자들 모시고 같이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진일을 하다 보면 공사할 일이 많다. 세트장을 지었다 부쉈다 한다. 그때마다 정사장님께 전화드렸다. 그이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흐으으으음, 아아아아아. 이게 보통일이 아니긴 한데. 어어어어. 한 번 해보쥬, 뭐."


흠, 아 같은 소리를 길게 빼며 5초 고민하는 게 다다. 적은 돈으로 까다로운 작업을 부탁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스튜디오를 하나 더 낼 일이 생겼다. 이번엔 스튜디오 공사 전체를 정사장님께 맡겼다. 그이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다섯 번째 스튜디오 공사까지 정사장님과 같이 할 때는 이미 서로 척하면 척하는 사이가 됐다.


상가 인테리어 할 일이 있다는 지인에게 소개해주면 욕먹는 법이 없었다. 여러 군데 비교해보고 있을 거라, 확실한 건은 아닐 거예요. 그러고 까먹고 있으면, 몇 달 뒤 으레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덕분에 공사 너무 잘했다고. 사장님 너무 좋다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이는 소개해준 사람 어깨도 올라가게 만들어줬다.


"이제 이 일 그만하고 지방 내려가서 살까 봐유."


안된다고, 사장님 없으면 큰일 난다고 말렸다. 그이가 공사하다 부상을 크게 당한 직후였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장님은 중요한 사람'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속으로는 안다. 그이가 은퇴한다면 짐 싸들고 가서 축하할 일이란 것을. 내게 보여준 모습만 봐도 그간 어떻게 살아왔을지 눈에 훤하다. 우리한테는, 이 업계에 남아주는 게 더 이득인 사장님. 그런데 또 은퇴를 결심한다면, 그 길에 꽃은 뿌려야 할 것 같고.


좋다, 고맙다 같은 감정 표현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 슬쩍 웃어 보이는 게 다인 그이는 내 결혼식에 엄청 뚱뚱한 봉투를 냈다. 먼저 연락하기도 전에 소식을 전해 듣고 와서 청첩장 내놓으라 했다. 그날도 공사가 있어 축의금만 전달하고 못 가 미안하단 사람. 은퇴한다면서 아직도 일 들어오면 거절 못하고 현장 나가는 사람. 신나 냄새 잡숴가며 번 돈이라 그런지 더 따뜻한 돈이었다.


척척 죽이 잘 맞아, 나도 이제는 주위 도움으로 도면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한 직원 신랑이 인테리어 쪽에서 일해서 치수를 쭉쭉 뽑아왔다. 90이니 120이니, 나도 제도 학원을 다녀서 사람 다니는 통로가 최소 몇이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그리고 스튜디오 공사도 무려 다섯 번째니 동선에 관한 노하우도 쌓였다. 직원들도 스튜디오 오픈에는 도가 텄다. 집단지성이 모이니, 제일 미려하고 효율적인 스튜디오가 나왔다. 나도 지상 스튜디오 오픈이 꿈인 사진가 중 하나였는데, 다섯 번째 스튜디오를 드디어 번쩍번쩍한 고층 건물의 7층에 얻었다.


오래가진 않았다. 공 들이고 정 들인 그 스튜디오는 운영 2년 만에 문 닫게 됐다. 아직 새것들로 가득한 스튜디오를 정리하는 데 가슴이 아팠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공사했던 자재나 '당근'하지 못한 폐물이 철거 현장 한가운데 수북이 쌓였다. 돈도 돈이지만 오픈부터 사용 기간까지 집단지성의 마음과 연결된 물건들이어서 더 찡했다. 많은 이들에게 미안했다.


"아쉽게 됐네유. 아직 새 건데 아깝긴 허구만유. 경기 안 좋아서 나오시는 걸 텐데, 철거 비용 또 쓰시려니까 죽겄쥬. 제가 어떻게 나쁘지 않은 가격에 잘해볼게유."


정사장님은 스튜디오 오픈 공사 말고, 접는 공사도 해 줬다. 나를 대신해서 여기저기 전화 하더니 철거 비용을 줄이고 또 줄여줬다. 깨끗하게 비워진 공실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건물주 엄청 까다롭던데 트집 안 잡히게 마무리 잘했슈. 고생 많었슈.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그런데 우리 같은 자영업자는 잘 되면 언제까지 잘 될래나 걱정, 또 안 되면 큰일 났네 하고 걱정. 여러 차례 오픈도 해 보고 접기도 해 보고. 벌어도 보고 날려도 보고. 뜨거웠던 꿈은 슬쩍 식고, 아파서 망연자실해보기도 한다. 그런 세월을 정사장님 같은 사람하고 십수 년을 함께하다 보니까 알게 됐다. 한결같은 사람. 은퇴 조금만 더 늦추고 업계에 좀 더 있어주었음 싶은 사람. 이제 지상층에다가 스튜디오 오픈하는 걸 꿈꿀 게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업계 은퇴를 조금만 늦춰달란 소릴 듣는 사진작가가 되는 걸 꿈꿔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참고로, 2011년에 만날 도망치고 잠수 타던 현장 소장과 정사장님은 성부터 이름까지 똑같다. 사람 차이는 극과 극인데, 신기한 일이다.

정사장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초    .    심"이라고 적혀있다. 말할 때 뜸 들이기 좋아하는 그이는 초심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와중에도 초오오오오오, 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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