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에는 마마토모(ママ友)라는 말이 있다.
엄마끼리 친구란 뜻으로 한국어로 얘기하면 아이 친구 엄마의 의미쯤 되겠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가장 어려운 관계는 단연 아이를 통해 연결되는 마마토모와의 관계가 아닐까.
아이를 통해 맺게 되는 관계는 아이끼리의 관계, 엄마끼리의 관계가 함께 얽히는 것은 물론이요, 보통 아이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집도 근처, 초등학교-중학교로 쭉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참으로 어려운 관계가 아닐 수가 없다.
혹시라도 얼굴 붉힐일이 생기면 그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전근족인 남편의 발령지에 따라 이곳저곳을 이사하며 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비교적 마마토모와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너무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었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6년 전, 현재의 지역으로 정주를 결정하고 집을 사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마마토모와의 관계가 어렵게 느껴졌다.
게다가 일본은 어린이 회, PTA 등 부모들이 학교 행사나 지역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레 엄마들끼리 모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INFJ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사람을 사귀기 전에 간 보는 기간이 긴 편이다.
충분한 사전 탐색을 통해 내가 친해져도 괜찮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엄마들끼리 모여서 자꾸 뭘 하고 이것저것 시키는 게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아이들 엄마라는 공통점과 공통의 역할이 있기에 짧은 시간에 급 친해야져야 하는데 나에겐 이게 참 어려웠다.
게다가 아이 얼굴을 걸고 누구 엄마의 이름으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하다 보니 아이 얼굴에 먹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으로 어려운 시간이었다.
결국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칠 때까지 이렇다 할 마마토모는 한 명도 만들지 못했고, 아니 못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무사히 마쳐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아이 한 명당 1번 이상 어머니 회와 학교 행사에서 임원을 맡아서 해야 한다. 일본에서 엄마 노릇하는 게 쉽지 않다.)
아이는 다행히 학교 생활을 즐겁게 잘해주었고 우연히 같은 맨션에 사는 아이 두 명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절친한 관계로 한 달에 몇 번씩 서로의 집을 오가며 노는 관계였는데 우리 아이가 그 무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한 친구의 엄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자신의 소개와 라인 아이디가 적혀있었고 괜찮다면 연락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그 집에 아이가 놀러를 가게 되면서 아이 엄마에게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뻤고 감사했다.
그렇게 라인을 주고받으며 형식적으로 지내며 가끔 오다가다 만나면 간단하게 대화를 하는 정도의 사이로 지내며 시간이 흘렀다.
같은 맨션에 살다 보니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항상 밝은 에너지인 그녀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어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 드라마 팬이라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고 남편 분도 카이스트에서 공부를 하신 적이 있어서 부부 모두 한국에 관심과 연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라볶이와 와인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했고 생각이 깊고 인성이 바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학교를 일찍 마친 아이들이 그녀의 집에서 즐겁게 노는 동안 나와 그녀는 집 근처의 카페에서 식사를 하며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했고 그 결과 우리는 친구 하기로 했다.
마마토모가 아닌 그냥 친구.
나와 그녀는 아이들끼리 친구로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 사이이지만 아마 개인적으로 알게 되어도 결국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
마마토모와 친구가 어떻게 다를까.
마마토모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인연이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
친구는 아이가 아니어도 언젠가 친구가 되었을 것 같은 사람.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인연을 자축하며 2024년의 마무리를 소중한 만남으로 마무리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