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들에게 '아들 방'을 마련해 주었다. 옷방과 서재를 합친 뒤 방 하나를 아들에게 주었는데, 문제는 '내 방'이 없어진 것이었다! 옷과 책을 합친 방은 너무나 가득 차서, 사람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탁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식탁에 책을 쌓아놓고 노트북을 켠 뒤 거기서 놀았다. 아아.
그런데 자기방이 있다가 없어지니
삶이 너무나 팍팍해진다.
뭔가 불안하고 고독해진다. 불편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김정운 작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나 보다. 그는 '공간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특히나 마음이 각박한 우리들에겐 '자기만의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하다. 클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탄생한 그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부터 바꿔야 한다
이 책은 김정운 작가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 공간의 이름은 '미역창고'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수의 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정말 최고다. 커다란 서재가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이 딸려 있다. 주변엔 정말 아무것도 없고 고독하다. 섬에 사는 이조차 몇 안 된다. 여수의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다라. 하아. 정말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너무 부럽다.
김정운 작가만의 공간, 미역창고의 탄생 과정
중년의 시간은 짧다. 50세가 되어 그 사실을 깨달은 김정운 작가는 교수직을 내려놓는다. 고민한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그는 진짜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 들으려면 '내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야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 즉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일' 혹은 '저녁마다 티브이 채널 돌리며 등장인물 욕하며 늙어가는 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나만의 공간'엔 좋아하는 물건도 쭉 늘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이 있어야'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긴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 특히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삶의 소소한 감탄을 위해,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독서의 특별함
이 책은 김정운 작가의 '취미 생활'에 대한 책이기도 하기에, '독서'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심지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책을 사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 그토록 치열하게 외국어를 배웠던 것도 이제는 고맙고. 덕분에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늘었다고 즐거워한다. (부럽다)
하지만 그의 두 아들들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요즘 시기에 왜 독서를 해야 할까? 책에만 지식과 정보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많이 억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매일 강박적으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책 한 톨도 안 읽는 그의 아들들이 훨씬 많이 안다. 나도 마찬가지다. 책 하나도 안 읽는 남편이 세상의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고 덧붙인다.
아니. 그것도 몰랐어?
사실 세상의 정보는 스마트폰에 다 있다.
그럼에도 왜 읽는가?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기 때문이다. 영상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흡수하는 일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다. 속기 쉽다는 이야기다! 책은 다르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다. 리뷰를 쓴다. 밑줄 긋고 빈 곳에 내 생각을 문자화하는 행위는 매우성찰적이다.
또한 책은 '의미'의 생성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인간의 의식은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그 사실들을 연결하는 것, 그것이 '의미 부여'이며 '편집'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관점,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럴려면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띄엄띄엄 골라서 읽으라고 목차도 있고, 색인도 있는 거다.'발췌독'이야말로 '의미 구성'이 가능해지는 주체적 독서법이다.
책은 진짜 재미있고,
정말 중요한 것만 끝까지 읽는 거다!
(옳소!!)
김정운 작가의 서재
그래서 나는 옷과 책을 조금씩 정리했다. 버리고 한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방에 딸려있는 작은 베란다를 개조해서 책장을 밖으로 뺐다. 책장을 하나 더 사서 책을 정리했다. 그렇게 작업을 하고 나니 아주 작은 책상과 의자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에 들어가 앉아본다. 비록 창문은 다 막혀있고 모든 벽은 옷과 책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그렇게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