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평전>을 읽고
어찌 됐건 한국에서
아들러심리학은 인기가 있다.
바로 몇 년 전 화재가 되었던
일본 아들러심리학 대가가 쓴
<미움받을용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미움받을용기>도
다시 한번 들춰보았다.
몇몇 문장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정말 쉽고 재밌게 잘 쓴 책인듯합니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듯 아들러심리학에서는
의미가 무척 중요하다.
한편 또 중요한 개념으로
열등감과 열등감을 극복해내는
용기를 들 수 있다
이런 아들러심리학은 확실히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뼈를 찌르는 듯한 교훈이 있다.
(누구보다 제가 그러하네요 ㅎㅎ)
자신의 과거, 즉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열등감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를 극복해내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
이렇듯 아들러심리학은
긍정심리학 의 시작 같기도 하고
자존감을 강조하는 요즘 트렌드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체
아들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평전을 읽으면서 나는 아들러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아들러와 달랐습니다 ㅋㅋ)
먼저, 알프레드아들러는
매우 긍정적이고 사교적이었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왠지 골방에서 혼자 심리학을
연구했을 것 같은데 의외 시네요...;;)
또한 느긋하고 친절한 태도의 소유자였으며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한다.
그리고 아들러의 유명세는 의외로?
성인보다 아동심리학 분야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로 치면
오은영 선생님만큼의 인기랄까.
그는 말년엔 특히 미국에 머물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육아와 교육을
어떻게 할 건지 물어봤다고 하며,
육아책도 많이 썼다 한다.
(이 부분이 참 의외였다..
알고 보니 육아의 대가셨음;;)
실제로 아들러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아들러 평전>은 아들러의
자녀들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자녀들은 모두 그를 헌신적인 아버지로 생각했다.
"우리가 자랄 때 아버지는
매우 바쁘셨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프거나 울면
언제나 함께 시간을 보내셨죠."
"아버지는 우리를 절대
때리지 않으셨어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부당한
모욕적인 말을 들었어요.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네 선생님은 바보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이 말은 학업적 자긍심에
큰 힘이 되었어요."
이 시기가 20세기 초반이라는 걸 가만하면
정말 깨인 아버지이자
가정적이며 친절한 아버지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요즘 시대에서도 이런 아버지는 흔치않다. ㅋㅋ)
이러한 알프레드아들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역시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일 것이다.
이 둘은 프로이트가 만든
수요심리학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런데 이 첫 만남부터
어떻게 이들이 만나게 되었는지
프로이트와 아들러,
양측 진영의 말이 다르다 한다.
(둘은 결국 엄청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ㅋㅋ)
아들러는 나의 정신분석을 숭배하던
수요심리학회의 초기 멤버였다.
그들이 나에게 정신분석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프로이트-
한마디로 아들러는
나의 문하생, 혹은 제자라는 것.
그렇다면 아들러 측은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가 프로이트에게 호감이 생겨
그에게 매주 모임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프로이트에게 초청장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아들러-
즉, 아들러는 친구 따라 강남 간,
정신분석에 관심 있는 사람이지
프로이트 제자나 추종자는 아니었다는 것.
이 중 뭐가 진실에 가까운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내 생각엔 아들러측이 더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프로이트는...좀 성격이 쪼잔하다. ㅋㅋㅋ)
사실 이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하지만 차이점도 많았다.
둘 다 유대인 출신이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인 걸 은근 자랑스러워했다.
한편, 아들러는 유대 혈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또한 가정배경도 비슷하다.
평범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둘 다 의사를 선택했다.
다만, 프로이트는 학습 면에서 뛰어났지만
아들러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한편 둘 모두 유대인 아내와 결혼하여
대가족을 이루었다.
하지만 프로이트 아내는 순종적이었지만
아들러의 아내는 급진적이었다.
(아들러 아내는 나중에 남편 상관하지 않고
정치 활동도 많이 하는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격 차이였던 것 같다.
프로이트는 연구를 좋아했다.
환자 치료는 주로 경제적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 아들러는 치료가 우선이었고
연구에 끌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치료뿐 아니라
강연하는 것도 즐겼다.
즉,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 차이 같기도 하다.
정치적 견해도 차이가 나서
프로이트는 귀족적 취향을 지녔고
노동자 계급에 대해 우월감을 느꼈다고 한다.
반면 아들러는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이렇게 뭔가 달라도
한참 달랐던 두 사람.
한편 아들러가 점점 명성을 얻어 가자
프로이트는 위험을 느낀다.
그러다 아들러가 그의 학설을 까면서
이 둘은 결국 결별하게 된다.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질환은
바로 '신경증'이다.
이러한 신경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 대해 둘은 견해를 달리하게 되고
결국 헤어진다.
성욕은 인간의 일상생활 모든 곳에서
은밀히 나타난다.
특히 이러한 성욕은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이트-
반면, 아들러는 성욕만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의 견해에 부정적이었다.
우리는 지배와 권력을 얻으려고 행동한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받았던
차별과 상처, 즉 열등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무의식에 남아
계속해서 삶의 목표가 된다.
-아들러-
요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열등감에
주목하는 것의 시초는
바로 아들러였던 것이다! ㅎㅎ
아무튼 이런 견해차로 결별한 두 사람.
프로이트는 그 후 아들러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다.
그가 '야망에 미쳤고' '편집증적'이며
'정상이 아니고 시기심과 야심이 병적'이라며
아들러의 모든 저술은 무가치하고
진정한 정신분석가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 선포했던 것.
(뭔 악담을 저렇게나 하는가.. 배운 사람이;;)
결국 프로이트의 이런 성격 때문에
그의 주변에 있던 정신분석가들도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게 되기도 한다.
인간은 쾌락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건강한 모든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아.. 이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가.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다.)
아들러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삶의 의미와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강조했다.
신경증 환자들은 삶에 대한 준비를
적절하게 갖추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항상 화가 나고 쉽게 짜증을 내죠.
세상에 충분히 참여하며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경증 환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감정을 익혀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양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인 것이다.
(물론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양육하는 것도 중요하고 말이다)
아들러 심리학이 궁금하다면,
특히 육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어린 시절과 노년도 리뷰하고 싶었는데
프로이트 이야기만 하다 끝났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