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흔이 일주일 남았다.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마흔을 맞이할 줄은 미처 몰랐지만. 그래도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마흔의 문으로 나를 안내한다.
안녕. 어서 와.
그리고 축하해.
서른쯤 부터 마흔의 시간이 궁금했다. 그 나이 때는 다 그렇듯, 마흔이란 젊음의 끝. 그러니까 시들시들해져 죽음만 기다리는 허무한 시간으로 보였다. 아무것도 새로운 게 없을 거고, 삶에 찌들려 바싹 말라있는 생선 눈알처럼. 싱그러움과 생명력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빛바랜 시간일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깨달은 게 있다면,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삶의 법칙이란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때는 이렇게 생각했다.새싹이 자라나 찬란한 꽃을 피고, 이내 지고 마는 게 인생일 뿐이라고.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인생은 매 순간이 꽃이었다. 스무 살의 나도, 서른 살의 나도 그 나름의 향기를 품으며 소박한 꽃을 피운다. 매 순간은 오롯이 빛난다. 그리고 매번, 나는 그 꽃을 바라보며 설레고 사랑에 빠진다.
마흔, 우리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
<마흔에 관하여>는 작가 정여울 씨가 마흔을 맞이해 쓴 책이다. 그녀는 마흔이란, '20대처럼 서두르느라 불안하지도 않고, 60대처럼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아 마음만 앞서지도 않은' 아주 적당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라 말한다. '육체적 젊음'과 '영혼의 지혜'를 동시에 간직할 수 있는 시간. 이렇듯 마흔은 특별한 시간이다.
그녀는 결코, 절대로 20대나 30대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때는 영혼의 허기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삶의 숙제가 가득 쌓여 있어, 다 이루지 못하고 죽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
나는 재능 없는 엉터리는 아닐까?'
하는 질문들은 늘 나를 괴롭혔고 일에서도, 사랑과 결혼생활에서도 항상 흔들렸다. 도망치고 싶었다. 정여울 씨처럼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타고 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절대로, 결코 사랑할 수 없었다.
마흔, 화해의 시간
하지만 마흔 쯤 되니, 뭔가 새로운 것들이 내 안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삶의 경험치가 쌓여서일까. 이제는 안다. 나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방이 있다는 것을. 그 방엔 나이 지긋한 현자도 있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작은 어린아이도 있다.
나는 상처를 대면하는 일에 서툴렀다. 도망치기 바빴다. 상처는 마음의 다락방 속에 꼭꼭 숨겨놓고 그 아이가 뛰쳐 나올까봐 늘 불안해했다.
쉿! 조용히 해!
거기 가만히 있어!
강한 척, 쿨한 척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억지 미소를 보이기 일수였다.
<마흔에 관하여>에서 정여울 씨는 말한다. "마흔은 내게 내 안의 콤플렉스와 화해할 기회를 주었다." 그 콤플렉스는 예민함이기도 했고, 둔하고 서툰 사회생활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흔의 시간은 이러한 예민함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시기다.
"마흔의 문턱을 넘으며, 나는 내 예민함으로 삶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 그녀는 예민함으로 글을 쓴다. 마음을 깊이 울리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한가득 써서 담아낸다. 한편 나는 예민함으로 책을 읽는다. 그런 아름다운 문장들을 놓치지 않고 길어올려, 삶에 꼭 필요한 쉼표들을 만든다. 이렇듯 예민함이라는 건 작은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사소한 차이. 그 작은 틈새를 알아채는 것. 그것은 이 지루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힘이 된다.
마흔, 설레이고 기특하며 눈부신 시간
이왕 맞아버린 중년, 기왕 먹어버린 마흔.되도록 즐겁고 행복하게 맞이하고 싶다. 중년은 노년의 앞 페이지에 살짝 끼워진 부록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지혜롭게 삶을 바꿀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부유해지거나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새롭게 자신을 단련할 기회의 시간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마흔을 시작한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야말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니까. 이제껏 시간이 없다고 미뤄놨던 것들, 꼭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은 모조리 도전하는 그런 마흔이고 싶다.
정여울 씨는 '마흔의 문턱을 넘으며 가장 후회되는 것은?' 이란 질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느라 허비한 모든 시간이 아까웠다.'라고 말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엄마이고 직장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 몸 사리고 주저했던 모든 시간들. 그런 시간들은 뒤로 한 채, 이제는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