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이제 십 년째다. 사실 이 정도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혼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당연하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사는데 오해와 다툼이 없다면 그건 이상한 거다. 대부분의 가정처럼 우리의 다툼도 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성실한 엄마가 되지 못해서 끊임없이 도망가고 싶어 했고, 남편은 책임을 묻고 싶어 했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아이의 돌봄은 결국 엄마의 책임이자 의무이기에. 다툼은 늘 일어난다.
그렇다고 정말 이혼을 하진 않았지만, 많은 부부들은 결국 '이혼'을 하기도 한다.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의외로 스토리는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깨닫는다'. 작은 균열이 생겨 점점 더 커진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동안 힘들게 만든 스웨터가 좀먹기 시작하는 것처럼. 별것 아닌 사건들이 쌓인다. 터진다.
아. 이제 더는 할 수 없어.
못 참겠어.
<사랑은 왜 끝나나>는 이런 결혼의 끝, 이혼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사회학적이라고 하면 좀 어려워 보이지만. 이건 이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모든 부분에서 '자본주의' 논리를 따른다.
돈이 최고다.
욕망을 자유롭게 소비해야 한다.
결혼과 이혼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사랑은 '섹시하다는 것', 즉 '성적'인 논리를 따른다. 그리고 이를 인터넷과 sns가 더 부추기고 있다.
자본주의 사랑
결혼에서 왜 '섹시하다는 것'이 중요할까?
저자는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여성의 성적 자유가 소비의 자유와 하나가 된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랑을 얻기 위해, '시장'에 상품이 된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찌 됐건 사랑은 '선택'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어야', 선택해 주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당연히 사회를 지배하는 시장 논리를 따른다. 경쟁이 붙고, 이러한 경쟁은 소비시장의 먹잇감이 된다.
주인공 캐리와 친구들은 예전 여성들과는 다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자유롭게 연애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적 자유가 오히려 사랑을 시장에서 사고팔도록 교묘하게 부추기기도 한다. 이제는 선택의 폭이 넓다. 여자들은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가꿔야 한다. 그래서 미용 산업과 패션, 다이어트가 유행한다. 그것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한다.
자유를 바랐는데,
오히려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건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들은 '핫'한 걸 추구한다면, 남자들은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 '돈'은 필수다. 물론 여자도 돈이 필요하고, 남자도 섹시함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로 가꾸는 건 여자는 섹시함, 남자는 돈이다. 이러한 우리는 시장의 상품으로 전시된다. 특히 sns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섹시함을 보다
우리는 '볼 때' 섹시함을 주로 느낀다. 이는 사람을 오로지 몸이라는 '이미지'로만 바라보게 된다. 이 이미지는 소비되면서 유지된다. 주로 sns를 통해서이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섹시함을 소비하는 건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보는 것은 빠르고 즉각적이다.
순식간에 '핫한지',
아닌지부터 판단한다.
손살같다. 위아래로 스크롤만 내리면 되니까.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이미지를 소비하고 공유하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여자들은 끊임없이 다이어트 압박에 시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자들 중 자기 몸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통계에 따르면, 오히려 날씬한 여성들이 자기 몸을 더 불만족스러워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의 압력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자아를 평가절하하게 된다. 스트레스다. 매력적인 외모가 이제는 하나의 자기 마케팅이 되어, 우리는 모두 자신을 연출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은 왜 끝나나
예전엔 주로 '중매' 결혼을 했다. 우리는 흔히 옛날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중매결혼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만났기 때문에, '부부로서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감정은 확실하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결혼은 다르다. 불확실하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믿는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랑한다'고 확신한 다음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
다들 알지만 얼마나 불안정한 감정인지.
사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감정은 불확실해진다. 왜 그럴까?
<사랑은 왜 끝나나>에선 이렇게 말한다. 사실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앞서 자신이 어떤 욕구를 가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선택을 함으로써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 우리 욕구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적인 힘, 즉 자본주의와 섹시해야 한다는 압력 등이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오히려 '결혼한다'를 선택한 다음 '사랑한다'는 감정이 드는 게 더 확실할지도 모른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깊이 들여다본 저자의 '사랑 3부작'의 끝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자본주의 세상의 사랑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저작을 따라가면서 쭉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사랑조차도 우리는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