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첫 번째 챕터는 '우정'에 관한 내용이다. '나이듦에는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라온다. 하지만 유머, 이해, 사랑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제공하는 것은 우정이다.'<p.62> 어디선가 이 문장을 접하고 빌린 책인데 생각만큼 잘 읽히진 않는다. 나이듦에는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라온다, 라.. 사실 장애에도 필연적으로 불행이 따라온다. 가족이 해체되거나 장애인 스스로 붕괴되는 등 불행은 피할 수 없다. 물론 매우 단단한 인간이라 스스로 붕괴되지 않고 가족 간의 유대감이 남달라 불행을 모르고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다 보면 장애로 인한 불행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진 그렇다.
'선의가 우정의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은 옳은 것 같다. 하지만 선의는 우정의 필수 요소인 신뢰보다 덜 흥미로운 개념이다. 선의는 어떤 친구를 도구나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신뢰는 강력한 가정이다. 어떤 친구와의 관계가 불행한 일을 겪고 나서도 지속되려면 신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p.68>'
연인이 직전에 발행한 글을 보더니 나의 장애감수성이 바닥인 이유는 주위에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들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듣고보니 꽤 일리있는 말이다. 일단 연인부터 장애고 뭐고 따지지 않는 사람이고 친구들도 인권감수성이 뛰어난 편이다. 서로를 '도구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선의와 신뢰로 맺어진 관계들이라 장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제법 근속한 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불편한 것이 있을뿐 내가 장애인이라 배척당하거나 차별당하지는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장애감수성은 차별을 당하거나 그런 사례들을 접했을 때에만 누적된다는 말이다. 나처럼 쾌적한 환경을 다른 장애인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쾌적함을 누리면 장애고 나발이고 모두 상관없이 본인의 삶을 온전히 영유할 수 있을텐데...
두번째 챕터에서는 나이들어가는 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라고 묻고 있는데 몇 년전 문영민 씨가 연구하고 발표했던 논문이 생각났다. 『여성연구』 제 101권 제 2호에 「노동시장 내 지체 및 뇌병변 장애여성의 건강변화 인식과 대처 전략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이다. 질적연구를 적용한 논문이고 나는 인터뷰이 중 1인 이었다. 장애가 있는 몸에 대처하고 있는 방식이 참여자별로 상이했는데 나는 일을 하면서 오히려 건강해진 사례였다. 실제로 나는 규칙적인 생활과 원거리 출퇴근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이 없어서 내 몸을 잘 관리하는 편이다.
노화로 인한 몸에 대처하는 것과 비슷하게 장애가 있는 몸도 항시 관리가 필요하다. 난 사고 후유증으로 약을 매일 복용하기 때문에 두달에 한번씩은 주치의를 만난다. 스몰토크를 곁들인 두달 동안의 건강상태를 보고하고 약을 처방받고 피검사를 하거나 링거를 맞는다 . 링거를 맞는 것은 작년부터인데 면역력에 좋은 아르긴산과 비타민B복합체가 처방된다. 코로나 감염 후 주치의가 내린 특단의 조치다. 하지만 주치의가 있는 3차 병원은 멀고 진료시간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인근에 내가 갈 수 있는 병원들을 셋팅해놨다.
휠체어진입여부, 진료시간(퇴근 후에 방문 가능해야 하니까), 의사의 성향등을 고려해 내과, 치과, 산부인과를 골랐다. 특히 산부인과를 셋팅해 놨던 것은 매우 다행이었다. 주치의가 있는 3차 병원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했었는데 퇴원 후 자가소독하는 기간이 일주일인가 있었다. 이게 집에서 해보려니까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었다. 감염이 무섭기도 하고.. 고민 끝에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소독을 해달라고 했다. 두번인가 가서 소독을 받고 수술한 병원에 가서 실밥을 풀었었다. 질염으로 가끔 방문하는 산부인과인데 알아두니 이렇게 편리했다.
인간이 노화를 마주하고 대처하는 방법은 지혜롭기도 하고 때론 '찌질'하다. 장애인이 지혜롭게 장애에 대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변에 장애인이 처했던 문제들을 미리 겪은 장애인이 없으면 장애에 대처하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나는 다행히도 주변에 긴 세월동안 장애에 대해 연구하고 투장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장애에 대처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들에게 많은 사례들을 들었고 나 또한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면서 많은 사례들을 접했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장애인들도 나와 같을까? 그렇지 않은 장애인도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이 정보를 접하고 활용할 수 있는 통로가 절실하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지역마다 있지만 그 센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을 다니고 평범한 삶을 사는 장애인들에게도 필요한 정보들이 있다. 그런 정보는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맨날 투쟁이나 한다고 하고.. 투쟁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정보를 적절하게 장애인당사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임무일텐데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이드는 것에 대해 말하다 여기까지 와버렸다. 의식의 흐름이네. 엉망이지만 발행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