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 하는 이상한 태국여행 9

이상한 만족감

by Gray Monkey

파야오에서 3박을 하고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치앙마이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남은 1박은 치앙마이 님만 쪽에서 머물기로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치앙마이 대학교로 향했다.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 근처에서 도이 수텝 가는 썽태우를 탔다. 6명이 모이면 1인당 150바트를 내고 왕복으로 다녀올 수 있다. 치앙마이에 있던 둘째 날 도이 수텝 사원을 가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썽태우를 타고 갈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돌아갔었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동했다. 일몰 무렵이라 해가 지는 것과 야경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여러 나라의 말이 들렸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 각자의 언어로 야경에 감탄하며 대화하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혼자만 있을 땐 외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군중 속에 있을 땐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꽤나 의식하게 된다.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다.

혼자 여행을 오면 편한 점은 모든 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혼자 있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내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의식이 타인들에게로 흩어진다. 그런 환경에서 타인을 의식하는 나를 바라본다. 이럴 때 나는 외로움을 느끼는구나. 고독을 좋아하는 나지만 주변이 무리로 둘러싸여 있을 땐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는구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혼자 여행할 땐 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땐 원하는 구도의 사진이 잘 안 나올 때가 많고 여러 번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그냥 대충 찍고 만다.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자랑할 목적이 아니니 추억 저장용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치앙마이 마지막 날, 이제 한국으로 떠날 때가 다가왔다. 태국에 있으면서 항상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차갑고 건조한 한국이 그립기도 하고, 그러면서 먹을 땐 마냥 행복하고, 사소한 선택을 잘 못 했을 땐 잠깐 후회하고, 태국인들의 친절한 응대는 늘 반갑고, 이동을 할 때는 긴장되고, 해가 지려고 하는 저녁 무렵에 거리를 걸을 땐 평온한 기분이 들곤 했다. 여행을 하면서 이 여행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러 의미를 찾을까? 그냥 내가 여기 있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존재한다는 것이 다인데.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것뿐인데.


그 어느 때보다도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여행이었다. 카페에 앉아서 시를 쓰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말이 하고 싶을 땐 일기도 쓰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여행의 기록을 남겼다.

혼자만의 해외여행은 십 년 만이다. 낯선 곳에 나를 혼자 떨어뜨려 놓았다. 구글맵과 데이터만 있으면 여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아무 계획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그러나 MBTI로는 J형 인간이다). 갑자기 뭘 하겠다고 결심이 서서 일을 실행할 때 그 당시에는 그 일 자체에 꽂혀서 모르지만 그 일을 왜 하게 되었는지 나중에 가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 여행도 그런 걸까? 표면적으로는 과일과 비건 음식들을 마음껏 먹기 위해 태국에 왔다지만 여기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경험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친구가 부탁한 치약을 사러 마야몰 지하 1층 림핑마트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먹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파파야와 (적)용과도 샀다. 1204바트. 내가 가진 현금의 전부였는데 딱 맞게 현금을 다 털었다.

비건 옵션이 있는 밀크티 프랜차이즈인 차트라뮤, 치앙마이에서 유명한 블루커피에서 디카페인 피콜로를 마셨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결여된 뭔가를 채우려는 사람처럼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게 많았는데 집에 갈 때가 되니 이상한 만족감이 들면서 더 원하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만족감은 도대체 뭐지? 아쉬운 마음이야 있긴 하지만 난 또다시 태국에 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런 믿음이 있어서일까 여기서 먹은 것, 생각한 것, 몸으로 경험한 것들이 충분히 채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만족감이 ’내려놓음‘ 뒤에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 내려놓으십시오

선물할 것도 없고 한국에 가져가기 위해 쟁일 것도 없고,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꼭 먹어야겠다는 것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는 것뿐.

한국에 돌아가서 여기서 느낀 대로 여행하듯이 살아갈 것이다. 작은 자극에도 내 마음을 비추어 보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어떤 것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분명히 아는 삶.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혼자 하는 이상한 태국여행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