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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Sep 04. 2021

문장놀이

책과 대화하기 XXVII

지난 글에 이어 최봉영선생님의 책 <본과 보기 문화이론> 110쪽부터 읽고 쓰는 글이다.


문화의 기본 단위인 문장놀이

처음 들어 굉장히 낯선 표현이지만, 문장놀이가 문화 현상의 기본 단위라는 중요한 주장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문장놀이를 통해서 자연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문화(文化)'라고 불렀고, 문화로 일구어온 삶의 궤적을 '인문(人文)'이라 불렀다.

저자는 문장놀이가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세 가지 나눠 설명한다. 첫 번째는 시공을 초월(?)하는 일이다.

첫째, 인간은 문장놀이를 통해서 구체적 시공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정교한 방식으로 관계짓고 소통할 수 있다. <중략> 둘째, 인간은 문장놀이를 통해서 구체적 시공을 뛰어넘어 사물들을 정교한 방식으로 관계짓고 소통할 수 있다. <중략> 셋째, 인간은 문장놀이를 통해서 현존과 무관한 가공적 상황에서도 사물을 정교한 방식으로 관계짓고 소통할 수 있다.

시제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문법의 일부라고 알고 있던 시제에 대한 더욱 중요한 해석이다. 이 내용을 이해할 때는 2019년에 읽은 후발 하라리 <사피엔스>가 배경지식으로 작용했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가 다른 점이 바로 '허구'를 생산하는 능력이란 강렬한 주장.


그렇다. 우리는 시제와 같은 수단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섞을 수 있다. 사피엔스 고유의 능력인 허구를 활용해서


창조의 기본 단위인 문장놀이

저자의 글과 사피엔스 내용의 차이는 허구 생산의 방식이 문장놀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인간이 문장놀이를 통해서 가공적 상황을 그려낼 수 없다면 창조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문장놀이를 통해서 초월과 창조의 능력을 갖게 되어 물질세계와 대비되는 정신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 문장놀이일까? '문장'이 그렇게 중요한가? 저자는 이를 이해하는 단초로 을 설명한다.

욕망이 몸을 매개로 현실인 물질세계와 만나기 이전의 상태가 바로 '꿈'이다. 꿈은 아직 물질세계와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중략> 꿈이 몸을 매개로 물질세계와 만나 실천으로 진입하면서, 인간은 부자유 상태에 놓인다. 실천의 무대인 물질세계는 기계적 인과관계에 따라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 꿈은 허구와 삶의 매개체이다. 꿈과 허구라는 단어는 용례가 달라서인지 전자는 긍정적인 느낌을 주고, 후자는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사피엔스>를 읽은 전후로 허구에 대한 어감이 바뀌긴 하지만, 꿈과 허구라는 말에 똑같이 반응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집단적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문자

아래 문장을 보자마자 문자가 생기면서 꿈의 유통이 가능해짐을 깨닫는다.

인간은 문자라는 수단을 발명하여 문장놀이의 과정과 결과를 손쉽게 저장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이용해 집단적 창조가 가능해진다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초월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초월욕에 기초하여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당연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인간을 단순히 본능이나 욕구의 차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여기서 느낀 집단적 창조라는 영감은 173쪽의 내용과 연결할 수 있다.

문화는 글자 그대로 '문(文)의 화(化)', 즉 언어에 따른 삶의 변화를 뜻한다. 인간은 언어에 따른 삶의 변화를 통해서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이 된다.

문장놀이 설명 과정에서 믿을 신()자의 기원도 알게 되고,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묘사하거나 이웃사랑을 외치는 이유도 함께 연상할 수 있다.

문장놀이는 처음부터 소통을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문장놀이를 익히고 활용하는 것은 친애의 바탕한 신뢰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이런 까닭에 '인간이 문장놀이를 하는 것[人+言]'과 '믿음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信]'이 같은 의미를 갖는다. 즉, 신(信)을 인(人)과 언(言)으로 설명한 것[信=人+言]은 친애욕에 바탕하지 않으면 인간이 문장놀이를 정상적으로 <중략> 친애욕이 인간관계의 기본을 우리고 있는 까닭에


사냥과 생존 이상을 욕망하는 인간

초월욕을 설명하는 구절을 보면서 '사냥을 위한 도구 이상'을 꿈꾸는 행위가 초월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났다.

초월욕에 기초하여 다양한 창조활동을 전개한다. 인간이 초월욕에 기초하여 전개한 창조의 과정과 결과를 나타내는 것들이 바로 인문, 문물, 문자, 문예, 문화, 문명 등이다.

저자는 탐구하는 일을 넘어 실현하는 욕망을 말한다.

'나'라는 개체와 '우리'라는 전체의 정체를 탐구하고 실현하려는 욕망을 형성하게 되었다. <중략> 문장이 완전히 몸의 일부로 형성된 상태가 습관이나 버릇이다. <중략> 인간이 특정한 문장놀이를 반복함으로써 개인이나 집단이 획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을 세뇌라고 말한다.

박문호박사님 강의를 들으면 '배워서 써먹으려고 하지 말라'고 외친다. 탐구욕이다. 하지만, 개발자 출신인 내 주변에는 무언가 만들고자 욕망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도 탐구를 하지만, 탐구 자체를 욕망하지는 않는다. 탐구는 창작욕구나 성취욕의 부산물이다.


그런 창작 과정에서 허구를 구현하며 몸에 익힌 기술들이 바로 그러한 버릇의 예가 된다. 예를 들면, 코딩하는 버릇 말이다. 내가 글쓰는 습관도 딱 그러하다. 그냥 쓰고 싶어 쓰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인들을 보면 수천년 대를 이어오는 세뇌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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