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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Apr 04. 2022

베터코드 첫 서비스 우여곡절 이야기

베터코드 이야기

<100개의 스타트업을 멘토링하며 깨달은 성공의 비밀>이란 글을 보는데 '올바른 아이디어의 검증'이라는 그래프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우리회사 버전도 하나 그려봤다.


베터코드 Youma 사업 아이디어 검증 곡선

일단 글을 쓰기 전에 그림을 먼저 그려봤다. 와~ 리얼하다!

먼저 그래프의 시작부 그러니까 Before Startup에 해당하는 부분이 어딜까? 그러니까 아마 시작점은 김이사님의 입사일인 2017년 1월 2일이거나 중국 SaaS 판매가 좌절된 후 대책 회의를 가진 2019년 5월 17일 둘 중 하나가 마땅할 듯하다. 


북경의념과기유한공사를 떠나던 때

2019년의 5월 17일로 기억하는 그 날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CTO였던 김이사님이 북경의념과기유한공사 경영진을 믿고 중국사업을 할 수가 없으니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평생 소프트웨어 개발(혹은 관련 컨설팅)만 해온 내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라고... 4시간만에 나는 설득되었다. 수락을 한 후 걱정은 하나였다.

아니, 중국법령도 못 읽는데 사업을 책임질 수 있나?


결정을 한 뒤에 회의실을 나오는데 회사 막내가 복도를 지나며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저희 워크숍 안가나요?

나는 정말 신기했다. 큰 결심을 했으니 백두산이라도 한번 올라가서 다짐을 하자고 생각하며 회의실을 나선 후에 가장 먼저 들은 말이 그의 질문이다. 백두산행이 대표의 지나친 욕심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바로 실천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워크숍

사진에 보이는 7명의 임직원 중에서 2명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고, 나를 포함한 5명은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갔다. 서울에서 온 두 명은 김이사님과 유영모님으로 지금까지 베터코드의 동료이다. 북경에서 출발한 임직원중에서 (나를 빼고) 지금 베터코드 동료인 사람은 없다. 백두산 워크숍에서 돌아온 2019년 7월, 2명은 베터코드 자체 업무를 했고, 나를 포함한 5명은 북경과기유한공사와 약속한 프로젝트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나는 2019년말까지 중국 일을 마무리 하고,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북경과 북경의념과기유한공사를 떠났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한 스타트업

베터코드가 개업한 시기는 2016년 2월인데, 북경에서 사업화를 하지 못한 뒤에 코로나 감염증 확산까지 겹치면서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의 처지(?)로 바뀐 시점은 2020년 2월경이다. 아직 코로나 격리가 시작되기 직전에 설을 보내려고 서울에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던 시기, 베터코드 공동 창업자가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해 투자를 약속한 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제히 투자 철회를 하는 회의가 있었다. 다섯 명이 회의테이블에 있었고, 무슨 사업인지 가장 모르는 나에게 의사결정권한이 주어졌다. 

내가 결정을 하기 위해 고려할 변수는 세 가지 뿐이었다.

창업자로 도전했던 외국인 친구가 불과 6개월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모두 빠졌다.

김이사님은 하고 싶다고 모든 것을 던질 기세다

사실 2019년 5월 17일날 모든 것은 결정된 상태였다. 김이사님이 진행을 희망하는 경우에 내가 결정할 것은 매몰비용에 대한 처리뿐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나는 아무 것도 안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보다 회의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젊은 도전자와 둘이서 대화를 했다. 대표를 하지 않아도 좋고, 베터코드가 월급을 줄테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지만, 그는 이미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돌아섰다. 나는 그 순간 하나는 배웠다.


그때가 스타트업으로 베터코드가 창업한 때다. 2020년 1월 19일로 기억하는데, 19일이 내가 비행기를 탄 날인지 아니면 회의를 한 날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두레이를 뒤지면 나오겠지만 딱히 알고 싶지는 않다. 창립기념일 행사를 하기로 하면 그때 찾아보자. 


현타를 겪는 1년의 시간

그리고 그해 10월즈음 나는 요즘 말로 현타를 겪는다. 지인을 통해 동대문에서 관련 사업을 하시는 잠재고객을 만났다. 영업을 하는 첫 자리는 매우 좋았다. 컨설팅 영업을 해보았지만 한번 미팅으로 일이 성사되는 일은 없다. 그런데 계속 만날 이유(?)가 생기지 않았다. 영업 실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편한 두 달이 지나고 연말이 되니 당연한 일이라고 벌어진 상황과 나의 무력감을 수용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한 공동 창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에 걸쳐 통화를 했고, 두 사람 생각이 일치되었다. 그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처음 들은 시점에서 출발해 대략 일년 반 정도가 지난 후에 나는 어떤 성격의 사업인지 처음으로 감을 잡았다.


그리고나서 정확히 1년이 더 흐른 작년 10월 김이사님이 전사 미팅을 소집했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참석했는데, 내가 작년에 느낀 감정을 김이사님이 느끼신 듯한 발표다. 나는 무력감에 의한 것이었는데,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김이사님이 무려 열달이 더 지나서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나아가는 시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현타가 주는 쓰지만 고마운 결과물이다.


서비스 운영의 시작

그리고 또 5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가 실수를 하여 김이사님이 어렵게 뽑은 인턴이 퇴사를 결정했다. 아마도 서비스의 최악의 저점은 그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약간의 시간이 흘러 지난 주 금요일 송도 본사에서 파트너사와 중요한 결정을 했다. 김이사님이 2년간 중국 직원과 둘이서 만든 프로그램의 새로운 버전을 기준으로 영업할 만반의 준비를 계획한 날이다. 우리의 파트너사는 무려 크로스보더 무역에 대해 7년이 넘는 시간을 시행착오중이었다. 드디어 서비스 운영의 준비가 시작된다. 

현타를 2년 가까이 맞다보니 이런 중요한 순간에 호탕하게 웃고 만다. 이렇게 둔감해지고 마는가? (그래야 살지) 여튼 글을 써보니 감회가 새롭다. 위해에 자회사를 설립하자 마자 아래 사진을 남기고 떠나간 도전자. 2년간 주인없는 자회사 운영 책임을 코로나 탓에 원격에서 해오는 일이 무엇보다 답답했는데, 오늘 2년간 못찾은 현장 운영자를 찾았다. 

이제 베터코드 홈페이지에 걸린 구호가 부끄럽지 않은 홍보가 되었다. 이제 다시 초심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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