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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s Oct 03. 2019

프랑스의 요리, 육회와 홍어

Tartare와 Aile de raie

이번 파리 여행 동안 그다지 외식다운 외식을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날 만큼은 프랑스 전통 요리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주문한 것이 에스카르고, 탁타르, 노르망디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다.

와인도 한잔 곁들이고 싶었지만 내리쬐는 햇빛을 받고 돌아다니다 보니 시원한 맥주가 절실했다.


Tartare (탁타르, 프랑스식 육회 요리)

내장, 회, 각종 나물류까지 섭렵하는 한국 요리들 비교해,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식재료의 식상함을 느끼곤 한다. 물론 내가 그 나라의 음식을 잘 몰라 제한된 선택을 한 것도 있겠지만.

그런데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만큼은 오히려 "이런 것도 먹는다니"라는 생각 이따금 들곤 했었다.


프랑스식 육회인 탁타르가 그런 생각을 들게 했던 음식 중 하나다. 다진 것처럼 잘게 썰은 생소고기를 계란 노른자와 각종 소스와 무쳐내는 육회. 너무 한국적인 음식이라 생각해 다른 나라에 존재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다.


팔 년 전, 진과 내가 파리에서 생활할 때는 더 어렸다. 한국식 육회도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육회는 어른의 음식 아니던가?

생활비를 아끼려 항상 집에서 끼니를 먹거나 저렴한 케밥 등으로 외식하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날은 진의 생일 기념으로 프랑스 식당에 갔다. 프랑스어 메뉴를 한참 노려보다 bœuf(소고기)라는 단어를 발견한 진은 뭣도 모르고 탁타르, 프랑스 육회를 시켰다. 식 전 바게트를 먹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진의 음식을 받아본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 스테이크가 아니었구나.

진은 한입을 먹더니 나뭇잎 씹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맛없어?' 무난한 생선요리를 시킨 나는 진의 육회를 한 움큼 가져와 맛을 봤다.
'이거... 좀 낯선 맛이네'

그때의 탁타르 느낌은 이랬다. 육회란 모름지기 고소한 참기름에 짭조름하게 묻혀 안주 느낌으로 먹어야 하는데, 그걸 느끼한 마요네즈에 묻혀버린 느낌. 진은 결국 거의 입을 데지 못한 채 식사를 마쳤다.

가난한 학생 주머니로 큰 맘먹고 간 레스토랑에서 속상했던 진은, 집에서 구워 먹겠노라며 급기야 서버에게 좀 싸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서버는 난감 +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안된다고 했다.

8년이 지나 다시 파리에서 탁타르를 주문했다. 어렸을 때 맛봤을 때는 한국식 육회와 차이점에 주목했었다면 다시 맛본 탁타르에서는 오히려 공통점이 많이 느껴졌다.


계란 노른자를 넣는 것도 비슷하고, 참기름의 역할을 하는 올리브 오일과, 배 대신 식감을 살려주는 잘게 다진 오이 피클이나 양파도 느껴졌다. 탁타르가 한국식 육회와 다른 점은 레몬즙이나 머스터드를 가미해 상큼한 샐러드 느낌이 강하다는 점이다. 또 이것을 엄연히 하나의 식사 메뉴로 먹는다는 점도 우리와는 다르다.


8년 전 맛보았던 Tartare

오랜만에 진에게 연락을 했다. 이번에 파리에 가서 탁타르를 먹었다고. 이번엔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니, 진은 웃으며 자기는 다시 도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추억 삼아 그때 자기가 먹었던 탁타르 사진을 찾아 보내 주었다.



그러고보니 육회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 식재료인데, 프랑스에서 줄곧 먹었던 이 있다. 바로 홍어다.

한번 먹어본 뒤로 메뉴판에 프랑스 이름을 기억해 시키곤 했던 생선 메뉴,

이 것이 홍어인 줄 알았다면 오히려 선입견 때문에 애초에 도전을 안 했을 것 같다.


Aile de raie (프랑스식 홍어 요리)


흡사 같은 모양 뼈와 비슷한 연골이 촘촘히 있어서 먹기 번거롭긴 하지만, 버터 풍미에 짭조름하게 잘 졸여진 소스와 부드러운 조갯살 느낌의 살점이 매력적이었다. 암모니아 향 가득 품은 삭힌 홍어 때문에 잘 몰랐던 이 생선의 매력을 내가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식 홍어 요리조리법을 찾아보니, 이런 말이 쓰여있다.

잘 못 보관된 홍어 날개는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그럴 경우엔, 갖다 버려라.


마니아층이 두터운 삭힌 홍어는, 호기심에 두세 번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깊은 패배감을 안겨준 음식이다.

아, 내가 못 먹는 음식도 있구나.

그 맛이 뭔지 알며 즐기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또 모를 일이다.

8년 전 내게 탁타르가 낯설고 어색해 못 먹을 음식이었지만 자연스레 그 맛을 알게 된 것처럼, 다시 8년 뒤 쯤엔 삭힌 홍어의 매력을 알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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