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스 찾는 게 공간의 첫 단일까?
디자인 분야에선 레퍼런스(Reference)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한 기초가 될 수 있는 참고 자료를 말하는데 공간 디자인에서는
주로 이미지(Image) 자료를 지칭한다.
레퍼런스는 디자이너가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이미 실존하거나 만들어진 결과물로,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소통과 설득, 공감을 높이는데 크게 작용한다.
이 또한 언어이다.
이런 레퍼런스를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한 가지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주거공간 중 30평의 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실질적인 공간 디자이너의 업무에 포커스를 맞춰서 보면, 정형화된 아파트의 구조와 절대적인(제거 후 새롭게 꾸밀 수 없는 벽, 바닥, 천장, 기본 건축 구조물 등) 제한 사항을 배제하고 실측도를 작성하고 나면 현관, 방 3 곳 주방, 화장실 2 곳, 거실, 발코니(흔히 말하는 베란다), 다용도실 정도의 공간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 기본 조건에서 디자이너는 홀로 또는 팀에 소속되어 업무를 진행이 일반적이다.
(번외적으로 조직의 규모와 예산에 따라 편차가 있기도 하다)
주니어 디자이너는 현관(Foyer)에 대한 워크스콥(workscope)을 배정받았다.
그럼 무엇부터 시작하게 될까?
이미지부터 긁어 모으면 될까?
멋지게 스케치?
바로 CAD 작업?
니즈를 숙지하고 나면 내부 회의를 통해 어렴풋하게 나마 정해진 방향성을 바탕으로 현관의 부분적이고 30평 전체를 아우르는 톤 앤 매너(Tone & manner)와 실용성, 요구사항, 디자이너 자신의 개념 등을 조합해서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현관의 기본 구조를 고려해서 레퍼런스를 찾게 된다.
바로 이때! 마냥 레퍼런스를 하염없이 찾고 있는가?
몇 가지 케이스가 있다.
혼자 일을 하고 있어서 회의 없이 그냥 찾고 있다.
하던 스타일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 없다
현관 레퍼런스를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찾곤 있지만 찾다 보니 뭘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전부터 그냥 찾으라고 하니 찾았고 어느덧 점심때가 됐다.
레퍼런스만 하루 종일 찾았는데 쓸 만한 게 한, 두 장 뿐이다.
다섯 가지는 대부분이 과거의 내 이야기다.
찾으라니까 찾고, 어떻게 디자인할 지 모르지만 일단 찾고, 찾다 보면 나오겠지 하며 찾고, 찾고 또 찾고..
아무 레퍼런스나 주워 담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을 듯 하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겨우 이거 찾았어?”
“뭐 했냐?”
“뭘 찾은 거야?”
“하.....”
듬뿍듬뿍 담다 보니 폴더는 마치 산타클로스 선물 보따리처럼 한 가득히 되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서 보고 할지 알 수 없게 돼 버린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미지 찾는 기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분명 현관에 대해 찾고 있었는데 폴더에는 거실 이미지, 주방 이미지에서부터 카페 이미지,
리테일 공간 이미지, 귀여운 강아지가 함께 있는 이미지까지 온갖 알 수 없는 폴더로 변신하게 된다.
의식의 흐름대로 폴더에 '110216_image'라는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고 바탕화면의 광활한 그리드의 어딘가 배치되면서 또 다른 의식의 흐름에 따라 신선한 마음가짐으로 ‘새 폴더’가 생성된다.
이런 상황의 연속으로 시간은 계속 흐른다.
선배나 대표의 눈에는 인내의 눈물이 흐른다.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도 공감되지 않지만 ‘일 머리’라는 것이 확립되기 전 나는 그랬다.
누구든 그럴 수 있고 현재 그런 상황인디자이너가 있을 수 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라며 그 놈의 ‘남 탓’을 했지만, 그건 솔직하게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아서’
라고 말하고 싶다.
정답도 없고,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현관 디자인’은 이미 정답에 가까운 ‘방향성’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순수 예술처럼, 머리를 쥐어짜며 그렇게 속절없는 시간을 많이 보내 봤다.
주니어든 시니어든 방향성 없이 이미지 레퍼런스를 찾는 기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선배나 대표라면 레퍼런스를 던져주고 “이렇게 똑같이 해!”라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작 소통을 위한 또 하나의 ’언어‘가 생각과 스토리, 핵심 보이스가 없는 공간을 찍어내기 바쁜 기계들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나도 그런 환경에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그런 지시가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언어의 정제나 응용 없이 이미지 대로
“그냥 해!" 라거나, "이거 이쁘네. 이렇게 해!"라고 하는 것보다,
등의 소통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디자이너들은 배운 대로 똑같이 또 다른 공간 찍어내는 기계들을 양산한다.
그렇게 하는 환경에 있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할 테지만 안타깝다.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곧바로 레퍼런스를 찾기부터 했다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촉박함에, 의미 없다는 이유로 제일 먼저 레퍼런스부터 긁어 모아왔다면 조금만 다르게 프로젝트에 접근해 보는 건 어떨까?
무작정 레퍼런스를 긁어 모아서 공간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사용자와 협력 업체를 상대로 본인도 헷갈리고
정리되지 않은 우기기는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