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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yve Apr 12. 2024

그림, 공간 그리고 훈련

과거 언젠가, 포기하고 싶었던 나에게.

난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다. 

지금은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지만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도 제법 많이 받았다. 

어릴 적 나는 ‘그린다’는 행위를 좋아했다는 기억이 선명하다. 


단순히 ‘그림 그리기’와 ‘공간’의 계연성은 없을 수 있지만 생각나는 중요한 계기가 있다. 중학교 1학년, 

우연히 봤던 영어책(순전히 공부를 위해 봤던 책은 결코 아니었다)에서 봤던 ‘미국식 주택 그림‘을 보고 

홀린 듯이 따라 그려 보면서 ‘이런 집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직업은?‘ ’아!건축가?‘ 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막연히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들이 약간의 미술적 소질과 어우러져 실내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으로 발전했고 실내디자인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공간 디자인이 지금의 업으로 이어졌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단지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림에 대한 소질은 현업에서 생각을 시각화와 개연성, 의미와 스토리 등의 좋은 옷을 입혀 설득과 공감을 

얻어내는데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소질만'이 공간 디자이너로서의 행보를 꽃 길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내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수많은 기반 지식을 차츰차츰 쌓아가는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관련 학과의 디자인 개론에서부터 미술 / 조형 / 색체 등과 같은 이론적 배경지식과 제도판과 T자, 삼각자, 

선 두께 표현이 중요한 도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로트링 펜으로 수 없이 그려야 하는 작도, 재료와 물성에 

대한 이해, 관련 법규, 기본적인 적산, 디자인 툴의 숙달과 일정 수준의 결과물 도출, 공모전 출품을 통해 

주제와 의도를 파악하고 협업하는 등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고 나면 ‘내가 마침내 해냈다! 난 디자이너가 됐다!’ 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다시 훈련이 시작된다. 


4년의 시간 동안 열심한 훈련이 회사에 입사하면 또 다른 훈련을 해야만 한다. 


학생 때 익혔던 훈련들은 기초 훈련으로 실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까 잘할 수 있을 꺼야’ 또는 난 그림에 소질이 없어서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어렵겠지?’ 라는 고민은 내려놓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학과가 아니더라도 관련 학원, 복수전공, 전과, 전업 등 다양한 경로로 공간 디자이너로의 일이 시작된다. 


모두들 시작점은 다르지만 훈련의 시간 중 자신이 그토록 되고자 했고 원했던 이 일을 전공자, 비전공자라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하며, 또 이 보이지 않는 경계와 무관하게 많이들 포기하는 모습을 수 없이 봐 왔다. 

주위를 조금 넓게 둘러 보더라도 지금껏 훈련에서 살아 남아 이 일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나 또한 지금껏 셀 수 없이 훈련을 포기하고 싶었다. 


나 자신이 아닌 남 탓, 상황 탓, 환경 탓을 하며 도망치려고 했었다

삶에 정답이 없기에 도망쳐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정말 그만두겠다고 할 때마다 나에게 물었다.

너 지금 하는 그 일, 그 시점과 자리에서 진정 최선을 다 했어?’ 라고.

그렇게 자문자답하고 나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했고 부족함에 매번 부끄러웠다.


적당히, 시간 없으니까, 대충 때우자는 식의 마인드로 접근하는 일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 다음 훈련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마치 색칠하지 않은 밑그림과 같다고 할까?

그렸다 지웠다, 열심히 밑 그림만 그리고 연필을 내려놓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작은 완성으로 성공의 기쁨과 성장의 재미를 느껴보지 못하고 훈련을 그만두는 많은 이들의 모습이 과거의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보일 때면 안타깝게 생각될 때가 많다. 


의지와 인내가 꼭 필요하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가 되기 위한 담금질과 같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화에서 시작된 한 공간의 최종 여정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의 행위와 행태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끝이 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이 금방 끝나지 않기에 차근하고 묵묵하게 걸어야 한다. 


단시간 내에 높은 성과를 얻고자 한다면 훈련을 그만두고 그에 맞는 다른 훈련을 찾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며 그것에 더해 조금만 더 한다면 반드시 성장한다. 

그리고 잘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예쁜 색으로 색칠한 그림을 여러 번 완성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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