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맛, 미역국과 삼계탕
엄마의 빼어난 요리 실력에 의외의 수혜자가 있었으니, 바로 나의 남편이다. 남편은 우리 가족과 같은 교회에서 오랜 기간 알고 지낸 터라, 이미 엄마의 요리에 반한 지 오래다. 또 남편 주변 지인들도 나와의 결혼을 두고 큰 장점 중에 하나로 장모님의 요리 실력을 꼽았다고 한다. 워낙 먹성이 좋은 남편이지만 엄마의 요리를 더 오래, 더 자주 먹을 수 있다니 남편도 환호성을 질렀단다.
“어머니, 이거 좀 싸가도 돼요?”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요즘도 남편은 친정에서 식사하다 말고 질문이 쇄도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엄마의 레시피 좀 배우라는 핀잔도 빠뜨리지 않는다. 평소 요리에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엄마의 레시피는 인터넷에 나오는 레시피와 달리 계량을 눈대중으로 하는 게 전부인데, 내가 그 ‘황금 간’을 어떻게 찾아갈까 싶다. 내가 큰 마음을 먹고 요리할 때마다 “여보도 요리 잘하는데?” “엄마, 이거 맛있어요!”라고 칭찬을 듣긴 하지만 아직도 요리는 내게 그저 번거롭고, 힘든 일이다.
그나마 희망이 남아있는 것은 바로 내가 맛있는 엄마의 요리를 가장 많이 먹어보았고, 또 그 맛을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엄마의 맛을 쫓아 조금씩 간을 맞추다 보면 엄마의 손맛 그 어딘가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을 테다. 여태까지 엄마의 요리를 가장 다양하게 먹어본 사람으로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따라 하고 싶은 엄마의 음식들이 있다.
미역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음식, 미역국이다. 엄마의 미역국은 특별하다. 보통의 미역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두 가지가 엄마의 미역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바로 다진 마늘과 간장을 넣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가정집 혹은 음식점에서는 마늘 향이 강하거나 간장을 첨가해 옅은 갈색빛을 내는 미역국을 먹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맑은 미역국이 너무 간절하다. 엄마표 미역국의 간은 오로지 고품질의 미역과 신선한 소고기에서 우러나온 감칠맛 그리고 약간의 소금이 전부다. 그래서 미역국의 건더기는 미역과 소고기뿐이요, 그 빛깔 또한 아주 맑다. 동시에 아주 깊은 맛이 나는 미역국. 보글보글 끓여 따뜻하게 한 사발을 뜨면 주변으로 싱싱한 미역 내음이 퍼진다. 한 숟가락 가득 미역과 소고기 한 점을 얹어 먹으면 부드러운 미역과 구수한 국물이 입 속부터 목구멍까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미역국을 자주 먹어왔다. 대가족인 가족 구성원의 생일과 기념일에만 끓여도 자주 먹었는데, 각종 제사상에도 올리던 메뉴라 미역국은 우리 집의 단골 메뉴였다. 나는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엄마가 어마어마하게 큰 곰탕 솥 용량에 미역국을 끓여줘도 늘 맛있게 먹으며 힐링했던 기억이 있다.
삼계탕
엄마의 삼계탕도 미역국과 마찬가지로 국물이 뽀얗고 맑다. 뽀얀 삼계탕 국물의 비밀은 의외의 재료, 닭발에 있다. 엄마는 삼계탕을 끓일 때면 언제나 깨끗하게 세척한 육수용 닭발을 솥 바닥 가득 채워 넣었다. 곰탕을 끓일 때와 같은 이치일까? 비록 살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닭발이지만 닭발도 오랜 시간 끓이다 보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우러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닭발 위로 인삼, 황기, 대추, 마늘을 담은 육수 주머니를 넣는다. 삼계탕의 닭 안에는 30분 이상 불린 찹쌀과 옥수수알갱이를 함께 넣어 삼계죽을 먹을 때는 톡톡한 식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삼계탕에서 유일하게 지분을 차지하는 기술이 있었으니, 바로 삼계닭의 구멍 막기다. 대학교 시절 교양 수업으로 들었던 요리 수업에서 유일하게 남은 내 기술을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닭의 목은 반대로 비틀어 가슴살 아래 구멍으로 쏘옥 넣어주고, 다리는 힘줄 윗부분에 살짝 칼집을 내어 반대 다리를 넣어 예술적인 닭다리 꼬기를 완성한다. 이렇게 하면 닭 몸통의 위, 아래를 모두 잘 막을 수 있어 내용물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 엄마의 삼계탕은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맑은 국물에 두 다리를 곱게 꼬아 예쁜 자태를 뽐내는 삼계닭이 담겨 있다. 구수하고 깊은 육수와 부드러운 닭고기, 톡톡 씹히는 옥수수까지 완벽한 삼계탕이다.
이외에도 엄마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리들이 많다. 세상 어디에서도 엄마가 만든 음식과 똑같은 맛을 내는 음식을 찾을 수 없는 이유다. 엄마 음식을 많이 먹어본 나조차도 아무리 따라 만들고 싶어도 절대 재현해 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어느 새부터인가 엄마의 음식을 맛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왠지 가슴 한편이 시려온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음식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또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엄마의 음식들. 내가 사랑하는 엄마표 요리가 영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