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방학, 그리고 개학.

사랑만이 답이라고...

by The G G

방학하고 첫 며칠 동안은 밤에 자다가도 우리 반 아이들 얼굴이 떠오르면 심장이 두근두근 하며 잠을 못 이뤘었던 나다. 1학기 말 생활지도가 그만큼 힘들었고, 여름 방학 전 연달아 있었던 교권추락 및 교사들의 사고 등 슬픈 소식들로 마음이 심란했던 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의 비슷했던 경험들이 떠오르곤 해서 마음이 무거웠던 방학이기도 했다. 비록 그 선생님들과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마치 가까웠던 내 동료가 사고를 겪은 것처럼 나도 함께 사고 후유증,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렸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비단 나뿐 아니라 우리 학교의 다른 선생님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교직 20여 년 차 방학 기간 동안 학교에서 가져온 짐들을 아예 손도 안 대고 방치해 두었다가 그대로 개학을 맞아 다시 학교로 가져가기는 처음이었다. 해마다 방학이면 방학이지만 학교에도 심심찮게 자주 들르고, 다음 학기 교육과정을 연구하는 게 늘 신나고 재미있었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함께 방학이었던 우리 집 아이들과 24시간 생활하는 것이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내 마음 자체가 생각도 하기 싫었다. 회피만 하고 싶었다. 무기력 그 자체였다.


어제는 개학 전 전체 직원 워크숍이 있었는데 오전까지는 오랜만에 다른 선생님들을 만난다는 기쁨에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는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서부터 째깍째깍 시간이 갈수록 내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졌었다.

우리 학교에는 본인만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가진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많은데 그중 독서지도(두꺼운 책 읽기)와 학급경영(SEC) 관련 연수를 들었다. 정말 우리 반에 적용하면 너무 재미있고, 아이들도 즐거울 것 같은, 그리고 아이들 인생에 중요한 거름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수였다. 하지만 이내 곧 우리 반 아이들을 떠올리자 그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게 아닌가...

1학기 내내 아이들 생활지도로 힘들어했었는데 나의 생각의 흐름이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들이 곧 나의 잘못된 지도 때문이었나?' 하는 죄책감으로 귀결이 되자 마음도 몹시 불안하고 두려웠다.

개학 준비를 마쳐놓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나의 무표정한 얼굴은 밝게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아이들 맞을 일이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오늘! 두둥!

새벽에 일찍 눈을 떴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갑자기 생긴 과민 대장 증후군. 이른 아침 청화, 청효를 학교에 내려주고 우리 학교로 가는 길에도 배가 계속 아파서 중간에 큰 일이라도 날까 봐 배를 움켜쥐고 간신히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나보다 먼저 교실에 들어와 있는 아이들. (원래는 8시 30분부터 교내로 들어오는 규정이 있는데 오늘은 그런 규정을 지키도록 안내해 주는 선생님이 안 계셨다....)

원래 내 계획은 1. 나는 학교에 일찍 도착한다. 2. 교실을 환하게 불 밝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3. 환기가 끝나면 에어컨을 미리 틀어 교실을 시원하게 만든다. 4. 앞문에 서서 들어오는 아이들을 웃으며 맞아주고 한 명 한 명 반가운 포옹을 해준다. 5. 조용시 조곤조곤 말하며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였는데....

아이들이 먼저 교실에 와있었고, 웃으며 눈인사는커녕 나는 배가 아파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야 했고, 볼일이 끝나 다시 교실에 와보니 아이들은 와글와글 떠들고 돌아다니느라 분주하기만 했다.

아. 뿔. 싸. 오늘 내 계획은 다 망했다.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ㅠㅠ


비록 시작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온갖 안 좋은 상상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것 자체를 무척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했던 것들이 실제 아이들을 만나자 눈 녹듯 사라져서 점심시간 즈음에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제 남아 교실을 정리하고 개학을 준비하면서 웃음기 없이 마음이 불편했지만 칠판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마지막 줄에 '사랑하는 선생님이'라고 쓰자 내 마음이 '살랑~'하고 조금 흔들린 것을 느꼈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늘 아이들을 직접 한 명 한 명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점점 가짜가 아닌 진짜 미소가 지어졌다. 사랑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 마음이 답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사랑만이 답이라고...


이제는 두려움과 무기력에서 조금 탈피한 것 같다.

아까는 옆 반 선생님과 다음 주 및 2학기 전반적인 교육과정을 어떻게 짤지 함께 논의를 하는데 무기력이 아니라 열심히 해보고픈 마음이 든다.

퇴근길에는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감도 떠올랐다. 내가 꾸려가는 교육과정 이야기를 이곳에 글로 풀어야겠다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두려움에 숨지 말고 두려움을 느껴서 두려움이 잠시 쉬었다가 떠날 수 있도록. 그리고 두려움이 떠난 그 자리는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