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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G G Nov 27. 2023

권력의 맛을 알다.

권력에 초연해지기

요즘 생각하는 화두.


권력의 맛.


이게 뭐라고... 한 번 맛을 보면 묘하게 그 맛이 자꾸만 생각나 자꾸만 누리고 싶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는 것처럼 내려놓기란 정말 쉽지 않다. 진짜 작은 권력이라도.

요즘 들어 더욱 내려놓아야지 하고 마음먹곤 하는데 그럴수록 더 꼭 쥐고 싶은 갈망도 커지는 것 같다...



집 말고 학교라는 사회에서 내가 느끼는 권력에 대해 쓰려고 한다.

학교 권력의 핵심은 아무래도 관리자. 허나 요즘 관리자들은 옛날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쥐고 있지 않다. 여러 가지 시스템적으로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학교의 중요한 일들은 학교운영위원회라는 기구(교사위원, 학부모위원, 지역위원 비율이 정해져 있음)에서 심의해서 통과되어야 진행될 수 있고, 교육과정 관련된 일들 역시 교육과정위원회라는 기구에서 논의를 통해 결정되거나, 전체 회의를 통해서 결정한다. 모든 것이 회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교의 일이 아무리 함께 논의를 해서 결정된다 하더라도 교장, 교감 관리자 외에 같은 교사로서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부장이라는 위치가 있다. 정식 '부장'이 된다는 것은 같은 교사지만 업무의 크기가 다르고, 소소하지만 부장 수당이라는 것도 받는 등 막연한(막중한 X, 막연한 O) 책임이 부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관리자를 제외하면 같은 교사지만 권력을 갖는 집단이랄까..?


올해 우리 학교에선 부장티오가 한 명 늘면서 나도 새로운 부장에 합류하게 되었다.

확실히 부장이 되니 업무뿐 아니라 회의도 많고, 부장들과 관리자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진 것을 몸소 느낀다.

아무래도 관리자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되고, 논의할 일도 많다 보니 학교가 돌아가는 상황을 다른 일반 교사들보다 먼저 알게 되는 일이 많다. 부장회의를 하는 날이면 자연스레 저녁도 먹고, 그다음 이어지는 술자리. 그 자리에선 공식자리에서는 나오지 못하는 이야기들, 고급 정보도 오고 가고, 이런저런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곤 한다.

나는 학교 업무가 많은 것은 힘들었지만 부장끼리 모여하는 회의 시간은 즐거웠다. 어쩌다 하는 회식도 꼭 참석했다. 왜냐? 나는 그 자리가 좋았다. 업무의 연장선이긴 했지만 관리자께도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고 평소에 비치는 모습 말고 그냥 한 인간으로 나를 보여주고,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그런 점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그들과 좀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아니면 내가 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사람들이 권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맛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서서히 감미로운 그 맛에 중독되어 갔다.


그런 느낌은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뭔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부장 회의에서, 또는 부장 회의 후 있었던 회식자리에서 나누어진 이야기들은 많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개인의 사담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원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의사결정은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함구한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그런 이야기들은 틈을 비집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학교 수준에 맞는 고급(?) 정보를 쉽게 퍼 나르며 정보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사람도 있고, 부장단에서 나온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마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를 나누듯이 거리낌 없이 온갖 아는 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부장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은 모르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곤 한다.

나는 특히 그런 소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가 불편했다.


적어도 작은 학교의 부장이라면, 고급정보를 먼저 접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보를 어떻게 잘 전달할까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전체를 하나로 화합하는데 누구보다 더 힘써야 할 사람이 아니던가.

나는 손톱만 한 정의감인지 내 개인적 취향인지 모를 알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마음속에 계속 남아서 권력이라는 것을 온전히 즐기면서 누릴 수는 없었다. 눈 딱 감고 권력에 취해 즐기기만을 선택했더라면 마음은 편했을지 모른다.


권력이라는 맛이 달콤하다. 매혹적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누구나 쉽게 중독될 수 있다.

나도 한때 권력을 쥐지 못해 가슴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헛된 갈망이 사람을 얼마나 해치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중독되기 전에 초연해지고자 한다. 초연해지고 싶다.





권력에의 갈망 + 쓰리고 매운맛.


권력을 지독하게 갈망했던 적이 있다. 하나 썰을 풀어보겠다.

작년 2학기에 부장이셨던 어떤 선생님이 갑자기 다른 학교로 가게 되면서 그 자리가 비게 된 일이 있었다. 난 이제 내 차례구나.. 하며 기다렸다. 경력으로나, 업무 처리 능력으로나 누기 봐도 뭐로 봐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의 경력도 꽤 되지만 예전에도 경험이 있고, 이곳에서는 학년부장으로서 무탈하게 2년째 학년을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고 나름 인정받고 스스로도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 자신이 부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보다 전체 경력도 훨씬 짧고, 우리 학교 경력도 짧고, 심지어 내가 학년부장을 맡을 때 긴 복직을 마치고 갓들어온 우리 학년 소속이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의 말대로 진짜 그 사람이 빈자리 부장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멘붕이 왔다.  난 그 상황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했지만 뭐 따질 수도 없었다. 부장이 무슨 승진도 아니고, 무슨 객관적인 데이터나 점수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다면 그저 관리자의 판단, 본인의 선택이 전부일뿐이니. 관리자 눈에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적합하다고 할만한 근거가 대체 뭘까? 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더 답답하고 힘들었다. 솔직히 쪽팔리고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그 당시, 그렇게 결정되고 나서 교감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각각 나를 따로 찾아왔었다. 미안하다고.

본인들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는 왜 미안하다고 하신 건지.. 어떤 설명을 갖다 붙여도 정말 이해가 안 되었었다. 한동안 아무도 모르는 속앓이를 하느라고 협의실도 안 가고, 관리자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면서 교실에서만 은둔생활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면 권력을 가지지 못해 미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지..?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나도 똑같은 인간이었던 거지.. 나는 권력에 초월한 고귀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나~~ 중에 알게 된 후일담도 풀자면

그 당시 그 사람은 본인이 부장을 하겠다고 직접 관리자들을 찾아가 신청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것도 그 사람이 직접 말해준 것이니 정확한 얘기일 터다.

선착순~ 이런건 아니지만 먼저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그것도 능력이다. 나는 업무는 잘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런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그저 그 사람의 적극적인 성격이 부러웠다. 나처럼 그저 기다리는 답답한 성격 말고.

그리고 그때 왜 관리자들이 그런 모호한 말을 했었는지도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달콤하지만 매웠던 권력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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