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곧 학교를 옮긴다. 훗훗훗
오늘 아침에 아이들 데려다주는 출근길.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학교 옮겨서 제일 좋은 점이 뭔지 알아?"
"아니, 뭔데?"
"그건 바로... 늦은 시각까지 억지로 회식 안 해도 되는 거!"
전후상황을 따져보면 회식이 억지는 아니었는데 아이에게 내 심경을 전달하려다보니 그렇게 표현하고 말았다.
그랬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정말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 딴 세상 학교였다.
좋은 말로 말하자면 동료 교사들이 마치 친구처럼(?) 끈끈한 동료애가 넘치는 학교였다.
학교 규모도 원체 작기 때문에 솔까말. 넘의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서로 알고 있는 정도랄까?
다들 어디 숨어있다 나타난건지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서(다 우리 학교에 모여있는 듯) 한번 회식을 하게 되면 진짜 끝을 본다.
나도 속해있는 동안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관리자들과 허물없이(까진 아니었겠지만..) 농담 반 섞어가며 대화하고, 술을 주고받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관리자들도 웬만해서는 하극상을 용서해 주시는 관용적인 분이셨다. 많은 것이 허용되었다.
학교 분위기 좋은 걸로 치면 어느 다른 학교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처음 우리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는 (내가 여기에서 육아휴직을 했었기 때문에 벌써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감.) 혁신학교가 한창 물이 올라있던 때였다. 기존 학교 시스템보다 민주적이고, 따뜻하고, 적극적이었던 그런 시절. 1~2년쯤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며 근무하다가 육아휴직 3년을 쉬고 나왔는데 선생님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훈훈하고 민주적인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더 뜨거워 있었다고 할까?
그러다 올해가 되면서 그때의 선생님들은 진짜 다 가시고, 그때를 추억하는 사람은 나와 남은 두 세명이 전부가 되었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게 된다.
자연스레 선생님들이 바뀌게 되면 학교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게 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술자리에 흥이 생기면서 회식은 곧 2차, 3차, 4차까지 가는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즐거웠지만 새로 들어온 동료들은 많이 불편해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런 술문화가 있어? 하며 놀라곤 했다. 게다가 요즘 저렇게 회식하는 집단이 별로 없지 않나..? 특히 교사직군에서는 드물고 희귀한 분위기임은 확실했다.
회식... 시키는 사람도 없다. 강권하지도 않는다. 갑질도 아니다. 회식에 오지 않거나 적당히 참석했다가 중간에 나와도 되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눈치를 주거나 불이익도 없다. 말그대로 우리 학교의 회식은 순수하게 진짜 자기가 의지를 내서 가는 거였는데 나는 거의 끝까지 남았었다.
처음엔 나도 끼어서 (오랜만의 술자리에 흥이 넘쳐서) 꽤나 즐거웠는데 확실히 학교 생활이 고단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몸이 힘들게 되니 회식도 점점 그다지 즐겁지 않아 진 것 같다.
최근에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엔 회사의 횡령을 뒤집어쓰고 들어온 '고박사'라는 인물이 나온다. 고박사가 들어오기 전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박사의 모습들이 나와 꼭 닮아있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술을 다 마시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구토까지 하고 나와서는 술을 더 달라고 그러고,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상사와 동료에게 안부 문자까지 보낸다.
어쩜 그리 내가 했던 행동과 닮았을까. 누구 하나 그렇게 하라고 시키거나 권하는 사람 없었는데, 그럴 필요 없었는데.
나는 원래 무엇이든 열심인 편인데 회식도 항상 열정적으로, 다소 과하게 열심히 충성을 다했다고나 할까.
난 왜 그랬을까? 왜 혼자 남 눈치를 봤으며 남들에 맞춰 살았을까?
내가 보이는 모습보다 어떻게든 더 잘보이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한없이 바보같고 불쌍했다. 고박사도 나도.
얼마나 인정받고 싶었으면....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 같은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자마자 제일 먼저 든 안도감.
'이젠 학교 옮기면 나 저렇게까지 안 해도 돼… 저렇게 늦게까지 술 마시며 좋은 척 웃고 있지 않아도 돼….. 정말 다행이다.'
사실 여기에서도 회식이 힘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해도 되는데도 나는 굳이 학교를 옮기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아직은 여기에서 뒷모습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음을 인정한다…
암튼…
요즘엔 나 스스로 그동안 이 학교의 회식문화에 이 악물고 버텨왔던 것을 토닥이기도 하고, 이제 학교 옮기게 되면 늦게까지 피곤한 회식이 아닌 동료들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가 될 거라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학년말이라 학교 일이 바쁘고 정신없지만 기대와 희망을 한껏 안고 있는 시기이다.
아직 전출서류도 못썼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작성해야겠다.
다음 글에서는 버킷리스트를 써봐야지.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