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
올해 나룰 울고 웃게 만들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의 이별을 하루 앞두고 있다.
2학기를 일찍 시작한 탓에 처음엔 하루하루가 더디 가는가 싶더니 12월이 되고, 중순이 지나자 시간이 쏜살처럼 빠르게 흐른 것 같다. 당시는 하루하루 빵빵 터지는 온갖 일들로 일분일초가 버티기 힘들 정도였는데…
거의 하루도 안 힘든 날은 없었다. 업무 따위야 아이들 생활지도에 비할 바도 못되지만… 암튼 끝은 왔다.
지나고 보니 언제 지났지? 생각도 든다.
지난주부터 아이들이 나 몰래 꿍꿍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밝혀지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큰 전지사이즈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롤링페이퍼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대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 너무 티가 났기 때문이다. 내가 버젓이 교실에 있는데도 교실 뒤에 두런두런 앉아 소곤거리면서 뭔가를 쓰고 있는 장면을 한두 번 목격한 게 아니다. ㅎㅎ
오늘 중간 쉬는 시간에 협의실에서 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어떤 선생님이 귀띔을 해줬다. 복사를 마치고 교실 앞까지 갔다가 교실에서 불까지 끄고 뭔가 샤부작거리는 모습 포착, 준비시간을 더 주려고 다시 협의실로 돌아왔다. 좀 뜸을 들인 뒤 들어갔더니 꽃가루 뿌려지고 015B의 이젠 안녕 노래도 나오고 추억의 초코파이 삼단케이크에(하리보 젤리까지 하나씩 얹힌 2023 버전) 칠판에는 아이들이 작성해 준 롤링페이퍼가 붙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한 마디씩 적어준 게 아닌가. 단짝 옆반샘뿐 아니라 교장 교감샘, 전교 선생님들 모두 물론이고 사서샘, 돌봄 교실 샘들까지… 나에게 한마디 써달라고 하기 위해 학교 건물 이곳저곳을 저 큰 종이를 들고 찾아헤맸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해왔다.
그간 나는 힘들다고만 했는데 정작 아이들이 주는 사랑이, 아이들의 마음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어 아이들에게도 몹시 미안했다.
이벤트는 괜히 낯간지러워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 아이들에게 받은 선물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교직인생의 책갈피 기록으로 남겨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봐야겠다.
덧.
롤링페이퍼를 자세히 보다가 웃긴 점을 하나 발견했다.
선생님들 칸은 꽉꽉 채워져 있는데 정작 아이들 칸은 많이 비워져 있었다는 것. 이건 누구의 롤링페이퍼인가. 선생님과 이별하는 아이들의 것인가
동료를 떠나보내는 선생님들의 것인가.
ㅋㅋ ㅋ
내 짐작건대
여자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벤트를 계획해서 꾸미고 진행해 나가며 남자아이들에게도 빈칸을 채우라 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 장난꾸러기들은 그 시간에 항상 밖에서 노느라 쓸 시간을 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롤링페이퍼는 쓰지도 않은 녀석이 그래놓고는
우리 내년에도 이거 하자고 하는데 왜케 웃긴지…ㅎㅎ
과연 우리 반답다. 아이들 칸까지 완벽했더라면 이질감이 느껴졌을 듯.
이래야 우리 반이지. 암.
삶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선물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