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장이라니까 덩달아 좋아하는 아이들.
#1.
나는 대장이다. 아니 학년부장이다.
어렸을 때 부장선생님 하면 뭔가 높은 직급인 것 같았는데 막상 내가 학교에서 부장될 경력이 되어 부장교사를 하고보니 부장이라는 직책은 결코 그런게 아니었다.타이틀이 '부장'이라 뭔가 의사결정권한이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개성 강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겨우 의견을 수렴하고 (내 의견을 밀고 나갈 수 조차 없음), 노동력이 필요할 땐 어디든 달려가고, 제일 좋은 것을 챙기는 커녕 뭐든 양보하고 희생하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는 3D 업무가 바로 일선 학교의 부장이라는 자리이다.
#2.
학교라는 공간은 다른 회사나 사무실에 비해 공간 보안이 굉장히 허술하다. 학교 현관이나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을 제외하면 각종 교실은 미닫이문에 자물쇠가 전부. (그 세 곳도 겨우 게이트맨 수준일 뿐이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교실 자물쇠를 다 통일하는 학교도 많다.
예전 학교도 자물쇠가 다 같은 거여서 어떤 열쇠를 가지고도 어디든 열 수 있었다. 심지어 지물쇠를 잠그고 열쇠는 문 옆 벽에 예쁘게 걸어두고 퇴근하곤 했다. ㅎㅎㅎ (누구나 다 잘 보이는 곳에 자물쇠를 걸어둘꺼면 문은 왜 잠그고 다니는지…)
지금의 학교는 그래도 전의 학교보다 사정이 조금 나았다. 교실마다 자물쇠는 다 달랐다. 하지만 모든 교실 뿐 아니라 특별실이나 공용 사용 공간의 교실들까지 열 수 있는 마스터키가 존재한다.
마스터키는 학년부장들에게만 하나씩 지급되었다. 마치 그것이 무슨 학년부장 자격이라도 되는 듯. 학년의 다른 선생님들이 특별실 문을 열려면 꼭 나에게 와서 마스터키를 받아가야한다.
나도 올해 전입와서 학년부장이라는 이유로 마스터키를 하나 받았는데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옆반 선생님들이 마스터키를 받아가는데 키를 주는 입장도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참… 쯧쯧쯧.
번거로움을 탈피하고자 애초에 마스터키를 3개 복사를 해두었는데 하나는 교실 자물쇠를 잃어버린 선생님 주는 용도, 또 하나는 연구실에 두고 누구나 갖다 쓰라고 놓을 용도, 마지막 하나는 분실을 대비해서 내가 가지고 다니는 용도였다.
열쇠 하나는 계획대로 잃어버린 선생님 하나 챙겨주었고, 연구실용 공용열쇠로 쓰려던 것은 연구실에 두었었는데 다들 바삐 쓰다보니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려 잃어버릴 뻔 하여 다시 내가 챙겼다. 또 하나는 우리반 교실 열쇠와 같이 매달아놓고 내 파우치에 항상 넣어다닌다.
그 와중에 작년도 학년부장이 나에게 열쇠 빌린 것을 이제야 돌려준다며 열쇠를 주었는데(나는 열쇠를 빌려준 기억이 없는데!) 그것을 연구실이 아니라 그냥 내 교실에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마스터키가 총 3개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마스터키를 받으러 오는 손길이 잦다. 선생님들이 받으러 오기도 하고, 담당 역할을 정해 아이들이 오기도 한다. 급하면 수업시간 쉬는시간 물불 안가린다.
오늘도 열쇠 두 개를 번갈아가며 주었다가 받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리반 한 녀석이 물었다.
“선생님은 왜케 열쇠가 많아요?”
“선생님이 부장이라 그래.”
“네?! 부장이요?”
“으응, 선생님들 중 대장같은 거야.”
대장이라는 소리에 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자기들이 대장이라도 된듯 무척이나 좋아했다.
ㅎㅎㅎ
학교에서 학년부장으로 산다는 건 승진이 아니라
봉사직이기도 하고 워낙 일이 고되고 많아 기피업무인데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대장이니 좋단다. 아이들이 좋아해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부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우리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가오좀 집아야겠다.
그저 대장이라고 좋아하던 웃음에 갑자기 힘이 나는 기분이다. 우리반 아이들로부터 부장으로서의 노곤했던 에너지를 다 치유받고 보상받은 것 같은.
우리 학교의 학년 부장으로 산다는 것은
1. 마스터키를 잘 지켜야 한다!
2. 아이들 앞에서 부장이라며 허세도 좀 부려야 한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