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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16. 2020

[그빵사]45. 크리스마스트리 머랭 쿠키

이상과 현실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지난번 베이킹을 하고 남은 계란 흰자가 냉장고에 남아있었다.

이걸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있을 무렵 인스타그램에서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머랭 쿠키를 만든 피드를 우연히 보았다. 초록색 색소를 넣어 머랭을 만들어서 별 모양 깍지로 3단을 쌓아 올려 트리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다. 머랭 쿠키는 벚꽃 모양 혹은 키세스 모양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마카롱처럼 머랭 쿠키로 아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크리스마스를 대비해서 미리 초록색 색소를 사뒀는데 역시 사두면 어딘가에 쓸 때가 있다며 나의 장비병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이렇게 장비병은 심해져만 가고...) 깍지는 벚꽃 깍지밖에 없었지만 이번엔 연습이다 생각하고 크리스마스트리 머랭 쿠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베이킹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머랭 쿠키를 한 번 만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머랭은 잘 되었던 것 같았지만 오븐에서 덜 굽는 바람에 찐득찐득 거려 다시 넣고 돌렸더니 겉이 울퉁불퉁하게 되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노라고 다짐하고 계란 흰자를 스텐 볼에 담아 설탕을 천천히 넣어가며 핸드 믹서로 휘핑을 하기 시작했다. 하얀색의 거품으로 쫀쫀하게 뿔이 세워질 때 휘핑을 그만하고 새로 산 초록색 색소를 뜯어서 젓가락으로 콕 찍어서 머랭 위에 묻히듯이 바른 후 핸드믹서로 돌려주었더니 하얀 머랭이 빠르게 연두색으로 변했갔다. 원랜 초록색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파스텔 톤의 연두색이 너무 예뻐서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벚꽃 깎지를 짜는 주머니에 끼운 뒤 연두색 머랭을 반쯤 넣고 오븐 팬 위에 짜기 시작했는데 무슨 일인지 뾰족하게 나와야 할 머랭이 둥근 깍지를 끼운 듯이 둥글둥글하게 나왔다. 휘핑을 덜 친건지 온도가 높아 금방 녹은 건지 너무 묽은 머랭은 2단으로도 쌓아지지 않고 퍼졌다. (눈물) 머랭 치기부터 다시 하고 싶었지만 이번은 연습이니까 하면서 조금 타협하기로 했다.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굽기만 잘 구우면 되겠지!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처음에 했던 것보다 굽는 시간을 더 늘려서 1시간 30분 정도 지나 오븐에서 꺼내서 식혀주었는데 또다시 지난번처럼 겉면이 찐득했다. 30분이나 더 돌렸는데... 다시 오븐으로 넣고 돌렸지만 똑같이 겉면이 쭈글쭈글해져서 바로 꺼냈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실패한 게 이해가 됐지만 이번 판은 굽는 시간도, 머랭도 제대로 했던 것 같은데 잘 나오지 않아서 속상했다. 머랭 쿠키란 정말 쉬운 게 아니구나!  생각했던 건 초록색의 매끈한고 둥근 크리스마스트리였으나 현실은 포켓몬스터에서 나온 질퍽이같이 되었다. 이상과 현실은 이다지도 다르다.


맛은 지난번보다 괜찮았지만 먹자마자 이에 쫙쫙 달라붙는 바람에 가족들도 한두 번 먹고 손을 대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판은 연습이었지만 크리스마스 때 과연 제대로 된 트리 머랭 쿠키를 구울 수 있을 것인지 자신감이 조금 없어졌다. 음... 머랭 쿠키는 조금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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