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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순댕 Dec 15. 2020

[그빵사]44. 허브 '타임' 재배 기록일지

*매우 짧음 주의

[그냥 빵을 사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초보 홈 베이커의 빵 만들며 드는 생각들





[36화. 허브 '타임]에서 고민 끝에 구매한 씨앗이 배송되었다.


신나서 택배를 뜯고 나서 씨앗을 딱 보았는데 기쁨도 잠시 생각해보니 어디에 심을지 생각도 안 해보고 무작정 구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 사이트를 보니 작은 모종 포트나 지피 펠렛이라는 씨앗 파종용 흙에다가 한다고 하던데 알았으면 함께 주문할 텐데 씨앗만 사는 데 꽂혀서 이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 막막해서 엄마께 SOS 신청을 했더니 날이 추운데 무슨 씨앗을 샀냐며 엄마께 한 번 혼난 후 베란다 화단에다가 한 줄, 혹시 모르니 따뜻한 실내에서 조그맣게 솜 발아도 함께 해보기로 했다. (허브 타임은 내한성이 좋아서 겨울에 베란다 재배도 가능하다고 한다.) 솜 발아는 처음 해보는 거라 인터넷에서 블로그 사진만 보고 비슷하게 따라 했는데 마음 한 편으로는 싹을 틔우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갖고 있었다. 그냥 자라 있는 화분을 살걸 또 오버했다며 마음만 앞선 나를 탓하며 눈에 보이는 스티로폼에 화장솜을 물에 적셔 깔고 깨알보다 작은 씨앗들을 2~30개 정도 뿌려주고 그 위에 또다시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었다.


판매 사이트에서는 3~4주 이내에 발아한다고 해서 일주일간은 그냥 물만 마르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무려 4일 차 아침에 검은색 씨앗 사이로 노란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씨앗이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가 않아 처음엔 긴가민가 했다가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니 발아가 된 게 맞았다. 심지어 그날 밤에 본 씨앗은 그새 더 자라 있었다. (생명의 신비)


문득 지금까지 살면서 씨앗을 직접 발아시켜본 적이 있었나?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학교 숙제로 양파 키우기 말고 도무지 생각나 지가 않아 언니한테 물어봤더니 "있기야 있었겠지. 근데 엄마가 다 키우셨겠지."라는 명답이 돌아왔다. 확신은 안 들지만 왠지 방학 숙제로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뭐든 직접 해봐야 기억에 남는 법이다.


2주 동안 타임 씨앗은 키워서 베이킹 장식으로 사용하겠다는 나의 부푼 기대만큼이나 쑥쑥 자라주었다. 하나둘씩 발아하기 시작한 씨앗들은 금세 열댓 개 정도 발아가 되었다. 중간에 스티로폼에서 플라스틱 그릇으로 바꿔서 솜도 갈고 물도 듬뿍듬뿍 주었다. 그리고 바람과 햇빛을 많이 받으면 좋다고 해서 집에 콩 박혀있는 나보다 더 많이 햇빛을 쐬게 해 주려고 매일매일 밖에 있는 베란다에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바람을 쐬게 해 주었다. 그런데 3주째가 되었을 때 새싹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는데 그와 함께 갈색빛으로 시들해지는 것 같아서 이젠 화분으로 옮겨 주어야 할 때인가 하고 화분에 옮겨심기로 했다. 


베란다에 남는 화분 하나를 집어서 엄마의 화단에서 무단으로 흙을 퍼담았다. 그러고 나서 핀셋으로 하나하나씩 새싹들을 옮겨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허브 키우시는 분들이 본다면 뒷목을 잡으실 수도...) 어떤 건 솜에 뿌리를 꽉 내리고 있어서 옮기다가 뿌리가 잘린 것도 있고, 두 개밖에 없는 잎을 하나씩 뜯어먹은 것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매우 어설펐던 나의 첫 분갈이는 모든 새싹들을 화분에 옮겨 담자마자 스르륵 마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흙으로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눈물)


어떻게 이리도 형체도 없이 사라졌는지... 사진이라도 안 남겼으면 새싹이 돋았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정도로 사르르 솜사탕 녹듯이 사라졌다. 슬퍼할 자격도 없긴 한데 좀 더 영민한 주인한테 갔더라면 쭉쭉 자랐을 텐데 참으로 미안했다.


 제발... 제발... 사기 전에 알아보고 준비 좀 제대로 한 다음에 사면 좀 안 되겠니? 더 이상 우리 타임이 같은 피해자가 나오질 않길 바란다. (From Me To Me)




[사진으로 보는 허브 타임 재배 기록일지]

1. 허브 타임의 씨앗은 매우 매우 매우 작았다. 자칫하면 옷에 붙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2. 베란다와 솜 발아를 함께 했다. 베란다에 있는 씨앗은 결국 싹을 틔우지 못했다.

3. 4일 차가 되던 날 노란색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밤에 확대해보니 이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생명의 신비)

4. 나보다 햇빛을 많이 받는 타임이는 쑥쑥 자라난다. 쌍떡잎식물이구나!

5. 이제 더 많은 씨앗들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6. 좀 더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겨 주었다.

7. 옮기고 나서 더 많이 싹이 자란 느낌은 기분 탓인가.

8. 제법 많은 새싹들이 보인다. 보고 있으면 어찌나 귀여운지.

9. 새싹들이 갈색빛으로 변했다. 죽어가는 건가...


10. 화분에 옮겨 심어 주기로 했다. 이렇게 하나씩 옮기는 거 맞나? (아님)

11. 화분에 옮긴 바로 직후의 모습은 제법 괜찮았다. 쭉쭉 자라주길 기대했는데

12. 이내... 흙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새싹이 있었던 흔적조차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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